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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47-5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47-51: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47-48: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모르실 리가 없다. 어른 옆에 어린아이를 세우면 누가 더 크냐? 어른이 더 크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그런데 어른은 다 컸기 때문에 키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성장이 멈췄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모든 면에서 계속 자라고 있다.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구원을, 하나님의 성품을 영접함이요, 영접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예수이름으로 들어온 것이다. 정신적으로 그 마음이 예수이름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예수이름으로 자기 속에 들어왔으면 자기 마음이 어린아이로 되어 있으니 그 사람의 마음은 낮아진다. 그 다음에 그 마음속에 들어있는 아이가 자라나게 된다. 누구 옆에 세운 아이처럼? 예수님 옆의 아이처럼. 이렇게 되면 서로 누가 크냐?’ 하는 그 소리가 나올까? 안 나온다.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그 정신 사상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이요, 예수님 영접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그 이가 큰 자라고 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면 은혜를 받은 사람이니 그 사람은 감사함으로 수종 듦이 나온다. 그리고 은혜 위에 은혜를 자꾸 받고 또 받게 된다. 그러니까 사람이 덕스럽고 존영스럽게 성장이 되고, 인격과 성품 면에서 내면적인 자기 마음이 풍부해진다. 그렇게 큰 자는 섬길 줄을 안다.

 

섬길 줄을 모르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요 사람을 키울 줄을 모른다.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이 사람을 가르친다고 하게 되면 사람을 강퍅하게, 어그러지고 패역 되게 마귀자식으로 키우게 된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을 안 해 주는데 자기 입으로 내가 크다하는 냄새를 풍기게 되면 그 사람을 다 싫어한다. 몰랐을 때는 서로가 내다 크다하는 경쟁을 했으나 이제는 깨닫고 보니 서로 나는 아이다하는 겸손의 경쟁이 된다. 낮아지는 경쟁이다. 그러면 실력자, 큰 자가 되려면 어떤 신앙사상과 정신을 가져야 하겠느냐?

 

어린아이는 배우면서 자라지만 어른들은 자랑을 잘 늘어놓는다. 이러면 예수님이 바라시는 큰 자가 될 수 있겠느냐? 안 된다. 젊은이도 자랑을 늘어놓으면 이건 다 컸구나. 그러나 어른이지만 자기의 부족성을 늘 생각하는 사람은 그 깨달음이 자꾸 커간다. 그리고 그게 교회 안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내가 다 컸소이다. 내가 어른이요하게 되면 순종이 안 되고, 이건 교만이다. 이러면 교회에서 누가 그런 사람을 알아주겠느냐? 다른 사람들은 다 겸손의 사람인데 누가 그런 교만자를 알아주겠느냐? 그게 금방 표시가 나는 건데?

 

세상적인 것 자랑, 감투 쓴 것 자랑, 이력 자랑, 업적 자랑을 하는 곳에는 무엇이 자라겠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있는 곳에서 배우고 듣고 순종하고, 말하자면 이건 주님 곁에서 자라는 것이라서 큰 자가 될 수가 있다.

 

교회 안에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지금 이렇게 다 같이 교회에 앉아있으니 전부 똑같이 보이지만 아니다. 마음은 키도 다르듯이 그 신앙의 형태가 다 다르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는 잘하는데 어느 한 가지는 못한다. 그런 게 상당히 많다. 말은 잘 하는데 인도를 못하는 사람이 있고, 힘자랑은 하는데 아무 쓸모없는 힘도 있다.

 

신앙사상을 유형적으로 보면 그 형태가 많다. 예를 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성격이 강퍅하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될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볼 때 뭐라고 할까? 미쳤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가둬야 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마음은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마음이 참 좋다고 해서 지혜로운 건 아니다. 지혜도 있고 마음이 좋은 사람은 분별이 들어가지만 지혜 없이 마음이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되기 쉽겠느냐? 실컷 이용당한다. 재산도 빼앗기도 몸도 빼앗기고 그리고 죽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의 눈을 가지고 깨달음을 전제하고 보면 세상에게, 거짓 종들에게 그만큼 이용당했으면 됐지 또 뭐가 있다고 다시 또 이용을 당하려고 하느냐? 남에게 이용당하면 억울하고 분하다. 그러나 제가 좋아서 했으면 어디에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런 상태가 많다.

 

그러면 자기는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데 순종을 안 한다면 이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내보내야 한다. 내보내서 직접 교회를 하게 하든지. 교회 안에서 열심히 배우면서 자기를 가르치는 목사를 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느냐? 이것은 마치 나는 우리 아버지가 싫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런 경우는 자기가 나가서 교회를 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 데를 가도 자기 마음에 맞는 교회는 없는 거다. 사회를 가던 교회를 가던 100% 자기 마음에 드는 곳은 없다.

 

그 사람의 입에서 구구절절이 옳은 이치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그 사상에서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안 좋게 보일지라도 아니다. 그 사람의 깨달음의 감화 감동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들 중에 누구든지 사람은 다 장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술 담배를 먹고 병이 들었다면 자식은 아버지의 그 결점을 알았으면 나는 그렇게 안 산다하고 어른이 돼서 술 담배를 안 먹으면 된다. 그런데 자기도 술 담배를 하고 있다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디를 가든지 어느 교회에 소속이 되려면 덕을 세우는 면에서 자기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가 나가야 한다. 둘러엎으려고 하지 말아라.

 

다 큰 어른은 자랑을 잘 늘어놓는다. 자랑을 하면 , 이 사람은 다 컸구나.’ 다 컸으니 순종은 안 된다. 그러니 어른행세를 하는 수밖에 없다. 나가서 어른행세를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큰 자가 있는 건데, 세상적인 것을 자랑, 세상적인 요소를 자랑하는 교회란다면 아무래도 못 자란 거다.

 

49-50: ‘누가 제일 크냐?’ 하고 변론을 하더니 이제는 또 이래라 저래라하는 남 간섭이 나온다. 일의 진행을 가만 보면 이런 게 나온다. 예수님의 큰 자가 되려면 낮은 자가 되라고 어린아이를 곁에 두고 말씀하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예수님께서 큰 자가 되라는 뜻을 잘 새겨들었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말씀이치를 깨닫는 면에 여념이 없을 텐데 할 짓 없어서 남 귀신 좇는 곳에 가서 간섭을 하느냐?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고 예수님의 교훈을 받지도 않는 자들이 예수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내어 쫓는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많이 있다. 그래서 그걸 요한이 하지 못하게 할까요?’ 하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은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예수님이 당신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다는 말인가? 그래서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하신 것인가?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그들과 제자들을 동등시 여겨서 그 자들을 교회에 끌어들여서 같이 손잡고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라는 말이냐?

 

그러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는 것과, 또 그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줘서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은 일도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면 이렇게 각각 귀신을 내쫓고 있는데 이게 같은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 다른가?

 

요한은 그들을 말리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요한은 말리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가만 둬라. 너희를 위한 거다라고 했으니 이건 무언의 허용성이 아닌가?

 

우리가 보면 그래, 잘한다. 잘한다. 네가 해야만 한다하며 허용이 되는 게 있고, 말은 안 하지만 내버려두는 무언의 허용성이 있다. 그 다음에 가만 내버려두지만 내버려둔다고 해서 그가 하는 게 예수님의 뜻대로 바로 되는 건 아닌 경우가 있다. 즉 예수님은 벌써 그 나중을 생각하고 놔두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이걸 키우면서 이 쪽 것을 어떻게 하고자 하기 위해서 내버려두는 게 있는 거다. 쉽게 예를 들면 이방인들을 부자로 살게 해 놓고 우리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면에서 키워주려는 게 있다. 키운 다음에 이방인들의 부요를 거둬가는 그런 게 있다. 좋아서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게는 무언으로 허용으로 된 귀신을 내쫓는 자들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의 허용성도 제자들을 위함이라고 했으니, 말하자면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지만 그 자신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그들은 귀신만 내어 쫓아주고 귀신 나간 사람을 잘 가르쳐 달라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보내준다는 뜻에서 유익? 만일 이럴 경우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 온 자가 말씀을 잘 받겠느냐? 안 받는다.

 

그리고 귀신을 쫓는 일이 얼마나 고생스러우냐? 그러니까 그들이 미리 귀신을 쫓아냈으니 이제는 제자들에게 귀신이 안 들어가게 해 주었기 때문에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이냐?

 

또는 그들이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으니 이제는 제자들이 전도가 잘된다는 말로서의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냐?

 

사실 예수님을 따르면서 교훈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교훈이 있지만 귀신만 내어 쫓는 자들은 주님을 닮는 구원이 없음을 알아라. 주님 닮는 구원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귀신이 쫓겨났어도 또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이 없는 산 아래의 신앙차원은 귀신을 내어 쫓고자 하는 면에 몰두를 하니까 주님을 볼 수 있는 변화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이치는 똑같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산 아래서 귀신을 내어 쫓는다고 한 제자들이나 예수는 안 믿으면서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자들이나 변화된 주님을 볼 수 없는 사람이요, 변화와는 상관없는 짓들이다 그 말이다.

 

51: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죽을 기한이 다 되어간다는 말은 하지만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또는 하는 말이 내 나이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하고, 또는 시한부 인생이면 죽을 날이 이제 며칠 안 남았구나.’ 또 막상 숨이 넘어가려고 하면 죽지 말라고 주사를 꽂고, 어떤 사람은 죽기 싫다. 살려달라고 한다.

 

죽을 때 이왕 죽는 거 웃으면서 죽을 수는 없는 건가? 죽는 것은 자기가 악을 쓴다고 악이 놀라서 죽음이 도망가는 게 아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람이 좋던 나쁘던, 순하던 고약하던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사람을 만든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당신의 입김을 불어 넣었으니 하나님이 그 입김을 빼가는 것이다. 계시적으로는 인간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김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인간은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에 불어넣은 것은 성령이다. 뭐다할 게 아니다.

 

성경에 보면 크게 말하는 게 있고, 콕 집어서 말하는 게 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상적으로 크게 말해주는 것도 있고, 그 사상이 자기 속에 들어와서 자기 속에서 그 사상이 커져서 나오면서 연관성으로 되어나가는 것도 있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사상은 크지만 도무지 연관을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거는 그 사상이 가슴으로 안 들어온 사람이다. 지식은 훤한데 가슴으로는 안 들어왔다. 말은 진리지식은 맞는데 가슴으로 안 들어온 게 있다. 그건 변화가 안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나이 때문이 아니라, 또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건강한 젊은이로서 죽을 기약이 차 가매가 아니라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라고 했다.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하는 이 말씀 속에는 당신의 계획대로 어떤 일을 마치고 간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다. ‘내가 다 마치고 이제 간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일반사람들과 달리 신령천국에 계셨던 분이 인간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은 영원 전서부터 설정되었던 일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했다하면 이성과 양심은 언제부터 생겼고? 그렇게 하지 말아라. 성령으로 태어났다 하면 그 안에 그런 게 다 포함된 말이다. 그러면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한다면 인간의 이성은 어디서 왔느냐? 마리아로부터 받은 거냐? 이처럼 남이 모르는 말을 했다고 해서 그걸 대단한 것처럼 보면 안 된다.

 

이치를 잘 깨닫고 이룰구원 건설구원 면에 연관관계 구원을 잘 이뤄가야지 그건 하나도 이루지 못하면서 아무리 구원을 말하면 뭘 하느냐? 아무리 구원을 말을 해도 관계성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면 열 가지 백 가지를 알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왜 알려고 하는 거냐? 바로 되려고 하는 거다. 목적은 그건 없이 이론만 알면 되느냐? 이론을 많이 알면 성령님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역사할 것 같으냐?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좋으나 왜 알려고 하는 거냐? 나 만들어지려고. 그게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달리 신령천국에 계셨던 분이다. 그리고 인간 되어 오신 분이다. 오셔서 하실 당신의 일이 있다. 영원 전서부터 설정된 그 일은 우리 인간이, 세상이 있기 전에, 지구 땅덩어리와 하늘과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설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성경이 아니면 우리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요, 처음 인간을 만들어 놓으실 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원인 동기 목적을 계시적으로 나타내신 것이고, 또 예수님 당신의 언행심사와 교훈과 이적기사 속에는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그게 다 들어있다. 당신의 언행심사로 자연만물과 그 법칙과 인간의 도덕이치로 이런 것을 다 감지하게 하신 것이고, 이제는 부활 승천으로 완전히 그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 당신이 부활 승천하면서 너희들을 나처럼하는 이 목적이 들어있는 걸 알려주었다.

 

창세 이후로 태어난 인간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은 없다. 다른 어떤 종교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는 없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그 어떤 인간에게도 해당되는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충분히 증거를 하고 가신 분이고, 지금도 보혜사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증거하고 계시는 분이다.

 

이 예수님을 인간 자기의 온전하고 완전한 기준을 삼아 자신을 예수님의 그 기준에 측정하며 맞추며 살 자가 과연 누구일까? 예수님이라는 기준을 놓고 자기를 측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를 기준 삼아 어떻게 하면 세상 누구처럼 최고의 부귀와 명예를 누리다 가느냐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 기준이 세상에 있다. ‘축구계의 왕은 누구냐? 누구처럼 축구계의 왕이 돼야지. 누구처럼 야구계의 왕이 돼야지. 누구처럼 권투계의 왕이 돼야지. 누구처럼 얼음 위의 왕이 돼야지한다.

 

정치계의 왕, 종교계 왕. 종교계의 왕은 누구냐? 신앙계의 왕은 누구냐? 우리의 왕은 누구냐?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만능의 능력자이기 때문에 못 할 게 없다. 이 세상에 기준이 많은데 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온전으로 자기 생애의 기준을 삼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예수께서 승천의 기약이 이르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굳게 결심했다. 그냥 가면 될 걸 왜 굳게? 굳게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승천의 기약이 차 갈 때까지, 출발에서부터 승천 때까지 빠뜨린 게 있느냐? 하늘나라에 가서 아차, 내가 그걸 안 하고 왔구나할 게 있느냐? 잊은 게 있을까? 다른 것을 하느라고 바빠서 못 한 것이 있을까? ‘아뿔싸하고 놓친 게 있을까? 무엇을 못했다고 후회할 게 있을까? ‘그 일을 왜 했던가하고 통곡할 일이 있을까?

 

우리는 생각을 해 보면 울고 싶은 일도 많고 가슴 칠 일도 많다. 다 후회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 살 일에 대해 실수 없이 가려면 과거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때 자기의 과거는 거울이다. 성경을 보는 것도 거울이다. 회고적 영감의 감화가 없으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로 갈 것이냐?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도덕성 기준에 맞춰서 걸어온 것이 생각이 나실까, 인간구원의 기준에 즉,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에 맞춰서 산 것이 생각이 나실까?

 

일반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의 목적을 전혀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교인된 자기는 알고 사느냐? 세상에 있는 불타고 썩어질 것을 구하고 있는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인간으로 만들었는지를 아느냐? 알면 왜 세상 것을 구하고 목적을 삼겠느냐?

 

우리는 이룰구원을 안다. 아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놓고 자기의 과거적인 삶이 어떤 삶을 산 것인지를 알고 있느냐?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안다고 해도 실천을 못하고 안 고치고, 안다고 해도 그 순간뿐이고, 좀 지나면 생각도 안 나고, 생각나면 또 놓쳤다고 한숨만 푹푹 쉰다.

 

그러면 예수님도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처럼 자라고 사시며 복음운동을 하셨는데 우리처럼 후회거리가 많겠느냐, 조금만 있겠느냐? 승천의 기약이 차 가면서 빈틈없이, 허점 없이, 빠짐없이, 얼렁뚱땅이 없이, 병 안에 공기 없이 물이 그대로 차 올라오듯이 기약이 다 차 갔을까? 우리처럼 적당주의로 살지 않고 하루하루 마무리를 잘 했을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을 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다는 거기에는 당신의 33년의 삶의 하루하루가 마무리가 잘 돼 들어간 결과가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덩어리만 크게 해 놓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얼렁뚱땅 예수를 믿는다면 이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다.

 

예수님께서 33년의 삶 동안에 빈틈없이 허점 없이 구원으로 살아온 그 정신 그 마음 그 감화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결심과 각오가 나오고 있는 거다. 몰론 오심 자체부터가 골고다 산상에서 우리를 위해 죽는 게 들어있는 거지만, 그런데 그 역사적인 장면을 보여주심은, 그리고 오셔서 아이였을 때 지혜가 자라가고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뭘 보여주는 것이냐? 예수님을 믿는 그날부터 빈틈없이 차곡차곡 허점 없이 자랐다는 자람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죄를 하나도 안 지었다는 그 말속에는 허점 없이 빈틈없이 자랐다는 그 면이 알곡처럼 들어있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생애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의 구원에 대한 각오와 결심이다. 그러면 우리의 생애의 목적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생애의 목적은 우리를 위한 구원이고, 우리의 생애목적은? 내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각오와 결심이다. 이게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으니 나도 주님의 그 정신을 받아 당신처럼 되어지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런 것은 다 내버려두고 뭘 할 거냐? 너 하나 똑바로 만들어져라. 네가 주님의 일을 하려느냐? 주님의 일을 사역목적에 두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주님처럼 닮는 자기 구원이다. 이러면 꼭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아니다. 그 말 한 마디 속에는 연관성이 말씀대로 들어가 있는 삶이 되는 거다. 그게 믿음생활이다. 그게 없이 사람과 차단시켜 놓고, 원수를 만들어 놓고 살면 그게 어떻게 구원이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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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8 누가복음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눅10:4-6  김경형목사  2021-05-26 191
17107 골로새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교회) 골1;24-29  전원준목사  2021-05-22 257
17106 누가복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도다. 눅9:57-10:3  김경형목사  2021-05-19 208
17105 마태복음 더하여 주시는 은혜 마6:33  김기성 목사  2021-05-17 659
17104 골로새서 위대한 구원자 그리스도 골1;14-18  전원준목사  2021-05-15 267
17103 요한일서 하나님의 증거 요일5:9-13  강승호목사  2021-05-13 226
17102 누가복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눅9:56-61  김경형목사  2021-05-12 504
17101 창세기 어머니 마음으로 살자 창27;5-14  전원준목사  2021-05-08 514
17100 사도행전 고넬료의 순종 행10:44-48  강승호목사  2021-05-05 418
17099 누가복음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눅9:51-58  김경형목사  2021-05-05 105
17098 골로새서 멈추지 않는 기도 골1;9-12  전원준목사  2021-05-01 630
» 누가복음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눅9:47-51  김경형목사  2021-04-27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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