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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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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지금 잘 하고 있어
신학과를 다니다 휴학을 하고, 아예 전공변경을 선택한 친구가 있다. 신앙적 이유는 털 끝만큼도 없다. 그의 삶의 목적과 방향은 변한게 없다. 그 전에도 돈 안된다는 것 알면서도 신학전공하려 했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환경아래 사회 속 그리스도인으로 있는게 낫다는 판단이 들어 그리 결정한 것이다. 위치만 바뀌었지 방향은 그대로다. 그러나 그게 공론화 되며 면담한 교수님들, 혹은 주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얘기한다.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었으나 뭔가 탈락자를 보는 듯한 날선 시선을 느끼기도 했다고. 어떤 이가 많았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기억에 더 남는 것은 써늘한이겠지. 그러면서 묻는다. ‘혹시 정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것인가?’
아니.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은 그들이다. 한 개인의 삶의 맥락을 파악하지도 않고 내적 단죄를 실천한 이들. 하나님의 일을 ‘교회 사역’이라는데 가두어놓고 해석하는 아집쟁이들. 그리고 과거시대 향수에 젖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해석을 게을리한 게으름뱅이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말 그대로 전통적 의미의 개인적 소명의 부재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칭찬해주어야하는것 아닐까? 소명이 없어서 다른 길을 간다는것은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니. 신학교 때 나와 친하게 어울렸던 이들 중 아무도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좋다. 자기가 이 길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발산한 이들이기에.
또한 그가 묻는다. ‘과거 선배들 정말 그리 대단했던 것인가요?’ 그런 시선을 계속 겪고 훈장질 당하다보니, 그들 앞에 쭈구리처럼 느껴졌나보다. 사실 한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무 뿌리 뽑으며 기도했다던 선배들의 이야기. 목숨걸고 선교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갔던 무용담들. 늘 죄송하고 비교되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정주영 이병철 신화가 더이상 우리 사회에 없는 것. 왜일까?
나는 과거 선배들에 비해 이 시대 사역자들의 개인신앙이 약화되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앙의 정의가 달라진 바도 있고, 당시의 집단무의식과 현재의 집단무의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건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 속 인간상일 뿐이다. 그 어떤 이도 사회와 괴리되어있지 않고, 그 저변에 깔린 집단무의식과 궤를 같이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그 때는 “할 수 있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집단무의식이 생성되어있었고 이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세대들의 의식구조에는 ‘내’가 앞서는 바도 있지만, 들인노력에 대한 보상의식이 부재하다. 그 정도 하면 이 정도 얻게되는 구조가 아님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또한 지금과 차원이 다른 부정부패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깃발 꽂으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고, 교인들 역시 이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솔직히 얻어먹을게 있었다. 그 가운데는 분명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적 욕망과 개인적 욕망 역시 동참했다. 또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어느정도 허용되었다. 우리시대를 옹호하고자 과거를 까내려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부흥한 세대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놓았는지 그 결과가 증명하지 않는가? 훌륭한 이들도 있으나, 솔직히 자기 나라를 세운 경우들도 허다하다. 그러나 그게 허용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선배들에 비해 분명 믿음의 차이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그들은 더 많이 봤고, 더 많이 경험했다) 그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죄송하지만, 너무 쉽게 꼰대질 할 사안은 아니다. 나는 이런 고민하며 삶 속의 신앙에 고뇌하는 이 친구가 분위기에 편승되어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다수보다 훨씬 귀하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희망을 본다. 집단무의식에서 벗어나 겸허히 현실을 보고 사명을 본다는 얘기이기에. 정형화된 ‘사역’의 형태로부터 벗어나 정말 사람이 귀한줄 알아갈 수 있기에. 그렇게 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물론 다행인 동시에 불안이다. 그래서 보다 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재도전의 기회는 잘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새로운 사역을 시도하거나 개척하는 나같은 멍청이들도 있다. 다른소리 말고, 이들을 그저 격려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교회가 좋고 교회를 꿈꾼다.
손성찬 목사(이름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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