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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도 잠든 성도는 건드리지 않는다.
마귀도 이제는 불신자들은 먹이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불신자들이 죄를 짓든 말든 내버려 두어도 어차피 지옥 갈 인생임을 똑똑한 마귀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상대로 공격을 하는 것은 소모전이라 판단한 듯하다. 마치 맹수들이 죽은 고기는 사냥하지 않듯이 마귀도 우는 사자같이 깨어있는 성도만을 집중공격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기도의 사람에 대한 공격>이다. 이 공격은 기독교 역사 이래로 가장 치열한 전쟁에 속한다.
<기도의 사람>이란 상투적이고 타성적으로 보편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을 말함이 아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기도를 일순위로 설정해 놓고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강력한 기도는 아무나 할수 없기 때문이며, 날마다 매달리는 기도는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의지나 감정이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도는 성령님이 임해야 가능하다. 누가 기도에 대한 부담이나 의무감이 없을까? 그러면서도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는가?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며 능력이 임하는 통로이며 마귀를 궤멸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을 마귀가 모를 리 없다.
그러므로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방해한다. 그 대신에 다른 일은 잘 풀리도록 도와준다.
훈련프로그램에 참석한다든지 세미나를 간다든지 성경공부에만 매진한다든지, 간절한 기도 없이 봉사에만 전념한다든지, 성가대에서 헌신한다든지,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일은 너무도 열심히 그리고 완벽하게 감당하면서도 정작 기도에는 인색하고 아예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 물론 그들도 간헐적으로는 기도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편적인 기도 말고, 통절한 기도 은밀한 기도 맹렬한 기도를 하는 성도는 점점 희귀하다. 물론, 목회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기도를 정석대로 할 수만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지금도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과 동역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를 결사반대,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려고 하면 하늘에서 귀신들이 별과같이 떨어져 기도의 무릎을 꿇지 못하게 방해할 것이다.
다른 일은 노력 안 해도 쉽다.
독서를 한다든지,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한다든지, 쇼핑을 한다든지, 드라이브를 즐긴다든지, 성가대 연습을 한다든지, 식당 봉사를 한다든지, 누구나 할 수 있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기도는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성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마귀의 작전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귀가 숨통을 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대가로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계산된 고도의 전략이다. 다른 일 할 시간은 있어도 <쭈그리고 엎드려 기도할 시간은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화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로 동일하시다.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아직까지도 기도시간을 대체하고 대신할 그 무엇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가 열리고 뚫리고 살면, <내가 살고 내 안에 주님이 산다.>는 진리는 영원불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기도는 아무리 해도 부작용이 없으며, 늘 부족한 것이다. 당신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이다. 누구든 숨 쉬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호흡이다>는 단순한 진리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짜 영성이 아닐까?
고재봉 목사
기쁨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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