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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17 추천 수 0 2021.06.30 09: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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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0:17-1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17-18: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귀신이 어떻게 나갔느냐?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안수를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니까 나갔느냐? 그래서 제자들이 귀신 쫓아낸다고 옆구리에 경찰봉을 하나씩 차고 다녔느냐?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이다. 그런데 이 귀신이 사람의 성격과 성질 성분, 말하자면 인간 자기가 평소에 이방 불신자들처럼 선악과 먹은 그 차원으로 있으면 귀신이 들기 쉽다.

 

그런데 귀신이 귀신 제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갈까? 제자들이 천국복음을 전할 때 귀신들린 사람만 찾아다닌 것이냐? 그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귀신들린 사람만 찾아다닌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선악과 따먹은 그 전체를 생각을 하며 전한 것이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생명과 따먹고 진리 길 생명 길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안 믿는 사람들의 정신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세상의 사고방식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그 정신 속에 얼마든지 귀신의 장난이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로써 교인들의 그러한 이방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을 떨쳐내줘야 한다. 인간 편에서 보면 그렇고, 사람 속에 그런 정신이 들어있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 아니면 못 나간다. 안 떨쳐진다. 아무리 교회 다니며 주여하고 악을 써도 그거는 안 나간다.

 

성경은 계시다. 눈에 안 보이지 않는 심각한 것을,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귀신, 귀신하니까 자꾸 길에서 옷이나 찢고 밤낮 돌아다니는 사람으로만 알기 쉽다. 예수 믿으면서도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방 종교적인들처럼 믿는 사고방식의 질이 교인들 속에 너무나도 많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소원 목적이 넓은 길, 세상 길, 사망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길로 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극 귀신들린 걸로 보이지를 않고 그 대세의 흐름이 진짜처럼 보인다.

 

생명 길로 가는 길은 협착하고 험난해서 그 길로 가는 자가 적다. 그렇지만 이 길이 세상 창조 이후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가는 길이니 비록 이 길로 가는 사람들이 적더라도 그 길로 가야 한다. 이 길이 참 예수 믿는 원 길이다.

 

그러면 넓은 길로 가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좁은 길로, 하나님의 의사와 뜻대로 갈 수가 있느냐? 못 간다. 그럼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이게 느낌적으로 진하게 와 닿지를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도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일반사람들과 같으니까 그만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니 그게 예수 믿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예수 믿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세상 편하게 살고 싶은 그런 욕망으로 가득 들어있게 되는 거다.

 

이 사고방식은 넓은 길이다. 이건 우리에게 원 참 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라서 영 느끼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귀신을 쫓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글자 그대로 가지고 와서 귀신들린 사람을 데려와서 자꾸 귀신이 나가라고 한다. 성경에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있었듯이 그런 것이 교회 안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그렇게 되니 교회에서는 진리의 사람이 돼야 할 것인데 그건 안 되고 그냥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귀신들린 사람만 찾고 있다.

 

생명과 먹은 주님의 입장에서 제자들을 보면 그 당시에 제자들은 귀신이 안 들렸으나 그대로 내버려두면 죄 아래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귀신이 들리던 안 들리던 생명과를 먹지 않으면 죄 아래서 고통 속에서 그냥 사망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차원을 봐라.

 

우리교회가 타 교회처럼 그냥 모여서 가는 것 같으냐, 생명 길을 가는 것 같으냐? 타 교회와 비교할 때 우리교회가 생명 길로 간다는 긍지가 있느냐? 그렇다면 말씀을 들으면서 귀신의 장난이나 마귀의 시험에 들 수 있는 요소성을 자기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지식 속에서 빨리 하나님이 것으로 바꿔라. 천국복음과 같지 않은 것은 빨리 빨리 하나님의 것으로 바꿔 넣어라. ‘평생을 바꿔 넣느냐, 그대로 두느냐하는 이게 바로 네 세상살이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귀신이 나가는 것으로 보였는데 주님이 그것을 봤을 때는 사단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으로 봤다. 떨어졌으면 주우러 가면 거기 있느냐? 사단이 하늘로부터 떨어졌다는 것은 성도들을 대적하는, 진리를 대적하는 사고방식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높은 차원으로 점령을 했다는 뜻이다.

 

그런 세력들은 혹시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면으로 또 올라가서 있다. 그것도 정복을 해야 한다. 완전히 정복을 해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는 오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온다. 그것도 정령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면 점령이 안 된다.

 

성경에 보면 백마를 탄 그 분이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긴다고 했으니 이건 연속적인 싸움이다. 즉 생명의 말씀, 주님의 생명적인 것은 최고의 고차원적인 것이니 예수 믿기 전의 사고방식, 예수 믿기 전에 배운 학문, 세상의 철학, 세상의 이해타산 그 평가는 주님의 고차원적인 생명적인 것에 비하면 저 밑이다. 같은 질로서의 밑이 아니라 바탕과 근원이 전혀 다른 주님의 것은 생명적인 것이요, 세상의 것은 사망적인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넘어진다. 밑이다 그 말이다. 넘어졌느냐? 그 다음에 하는 일은 썩는 일 뿐이다. 죽으면 썩는 일뿐이다. 고차원적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에서 떨어져 버리면 너는 죽는 것밖에 없다. 썩는 일밖에 없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가 살아있는 말씀이다. 생명의 복음이다. 이 말씀에 의해서 자기가 분해되고 이건 버려야 되겠다. 이건 고쳐야 되겠다빨리 빨리 해야 한다. 살아야 하니까. 안 그러면 세상에서는 얼마나 잘 먹고 잘 마시고 얼마나 편하게 살다 갈 런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너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데 사람들이 이 결과성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현재를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느냐하는 면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예수 믿는 너도 이방인들처럼 그렇게 들어가 있지는 않느냐?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어 살아도 아침저녁 밥은 다 먹는다.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아침밥이 없어지고, 두 개를 바꾸면 점심이 없어지고, 세 개를 바꾸면 하루 종일 굶고 그런 법은 없다.

 

우리는 생명과, 생명적 양식을 먹고 산다. 그래서 생식하는 걸 보면 좋은 점도 있으나 우리는 늘 삶고 죽이고 태우고 해야 하기 때문에 생식이 잘 안 맞는다. 그러나 짐승들은 거의가 생식을 한다. 인간은 죄에 물든 세상에 살기 때문에 그만큼 약해진 고로 삶고 굽고 익히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만물에서 우두머리다. 지키고 다스리고 하는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하는 것은 일반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성경에서 은연중에 다 나온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독을 마실지라도 죽지 않는다고 했고, ‘독사에게 물려도 안 죽는다고 했는데 이것을 그냥 이적으로만 볼 것 아니라 우리에게 한두 가지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런 차원을 네가 알라는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다.

 

쉬운 예를 들면 예수님이 쥐약을 먹으면 죽을까? 안 죽는다. 왜 안 죽느냐? 예수님에게는 쥐약에 감염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실은 마귀의 시험이다.

 

독약은 물질이요 불도 물질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속에서도 안 타져 죽는다. 이걸 보통 이적 기사라고 하는데 그게 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틀림이 없다. 또 신28:을 읽으면서 그걸 영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는 것과 육적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인데도 성경을 육적으로 보고 육적으로 좋으면 좋은 줄로만 안다. 그렇게 사고하는 게 문제다. 육적으로 좋은 건 좋은 건데 그런데 육적으로 좋다하는 이 좋음이 말하자면 영적으로 좋다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이니 그 면으로 먼저 이해타산이 바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고 육적으로 좋다하는 기준으로 들어가니 그게 문제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았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실 때는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의 질이 세상에서 복 받아라그런 거냐? 그게 아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봤고, 주님의 입장에서는 사단이 위에서 사정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구나.

 

오늘날 안 믿는 사람들이 귀신 쫓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본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간다는 것만 알지 자기도 귀신이 들 수 있는 요소로 돼 있다는 것을 아느냐? 모른다.

 

귀신은 사람의 성격 성질과 관계가 있는 건데, 그 이유는? 귀신이 들린 사람은 그 사람이 일반적으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귀신이 그냥 제 마음대로 그 사람에게 확 들어온 거냐? 아니다. 사람의 성격 성질이 나쁘면 눈알이 빠개지면서 사람을 해코자하는 게 나온다. 그런 성격 성질이 들어 있었는데 마귀가 그런 사람에게 들어가면 더 발작을 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어딘지 모르게 심통이 일어나는 게 있다. 바로 그걸 말하는 거다.

 

하늘로서.’ 이건 천국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하는 것은 차원적으로 진리차원이 아닌 것은 진리 앞에서 저 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차원적으로 사단 마귀나 귀신 악령 등 때문에 우리가 떨 필요는 없는 거다. 성경에 보니 귀신도 사람을 보고 벌벌 떤다. 귀신이 떨도록 살아야지 귀신이 인간 자기만 보면 친구야, 놀자하고 달라붙도록 살 것이냐?

 

정신적 이성적 철학적으로 높은 차원이라도 천국의 것이 아닌, 신령천국과 근거가 없는, 인간의 구원과 근거가 없는 그런 세계를 신앙처럼 추구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우리 기독자들의 삶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원인 동기 목적은 나의 구원이다. 거기에는 결과적으로 영능의 실력적 행복적 최고로 기뻐 누릴 수 있는 것인데 이걸 다 구원이라고 한다. 이런 영능의 실력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자라가고, 그 면에 욕심 품어야 할 텐데 교회에 다니는 것을 하나의 종교생활로 믿으면 되겠느냐?

 

일반교회는 종교생활을 좋아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이다. 믿음생활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르치는 게 이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온전과 상관이 없는 학설들로 아무리 떠들어도 이거는 바탕이 없는 것이다.

 

바탕이 없는 그릇이 어떤 거냐? 시루나 화분은 바탕이 없다. 여기에는 채울 수가 없다. 채울 수 없는 것은 바탕이 없다. 바탕이 없으면 채울 수가 없다. 바탕이 있어야 채워진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바탕이 있다. 무슨 바탕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그 분이 우리를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구원해 줬다. 영을 중생시켜 주었다. 이 정신 사상 이 감화가 지식적 지혜적으로 바탕이 돼 있고, 여기에서 이룰구원으로 질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설교로 가르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거다. 이건 공중에 떠 있는 것과 같아서 근거도 없고 바탕도 없다. 그러니 허망한 정신이로구나.

 

그러니 그렇게 사는 것은 목적의식이 없는 거다. 무슨 목적? 부자로 사는 거? 구원목적이 없다. 그 면을 기준을 해서 그 면을 의식을 하면서 늘 사람을 대하고 사람을 봐라. 그러면 사람의 중심과 생각이 다 드러난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신다. 이 말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죄가 몇 개가 있다그런 의미가 아니다. 죄 아래 사는 인간인데 죄가 몇 개가 있는 거냐? 인간은 통째로 죄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 사람이 바로 서는 면을 전문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인도하고 세울 수가 있다. 하나의 종교인이 돼서 아무 교회나 가서 사람 끌어 모아놓고 그룹운동이나 하고 취미운동이나 하는 건 안 된다. 교회라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번개 같이 떨어진다했는데 번개가 하늘공간에서 큰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겁을 잔뜩 먹는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땅으로 떨어지면 이내 조용해진다. 이것을 인간에게 대고 생각을 해 보면 높은 세상 직위의 사람이 우뢰소리 같은 큰 음성을 내면 그 밑의 사람들은 엎드린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직위가 땅으로 떨어지면 조용해진다. 그런 상태를 염두에 두고 생각을 해 보면 어떤 사람이 큰소리를 치며 살다가 옳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에 케오 당하면 이내 조용해진다.

 

이런 사람을 혹 봤느냐? 예수님을 전하다 보면 특히 안 믿는 사람은 아예 모르기 때문에 반박을 잘 안하지만 믿는 사람 중에 처음에는 큰소리를 하지만 그러나 탁탁 이치를 대며 들어가면 처음에 큰소리치던 입을 딱 다문다. 조용해진다. 말하자면 그런 것과 같다.

 

귀신이 번개 같이 떨어진다는 것은 제자들이 전도를 할 때 사람 속에 들어간 귀신이 그 사람을 통해 이치도 아닌 말로 얼마나 떠들었을까? 제자들이 예수이름으로 전할 때 그 교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정확한 교훈이라면 그게 능력이요 권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말씀에 케오 당하고 떠나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일반적으로 그냥 사람만 보지 말고 저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서 힘을 쓰고 있느냐하는 게 있는 거다. 돈 힘도 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은 큰소리 치고 남을 무시한다. 그러나 돈이 싹 없어지면 그 사람은 그만 팍 수그러진다. 얼굴도 못 든다. 그 사람은 돈 힘으로 산 것이다. 또 정치인들 같으면 정치권의 힘으로 산다. 아무 것도 모르지만 배지 하나 달면 상당히 고자세로 나오는 그 힘.

 

그러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사느냐? 자기 힘이 뭐냐? 아무 것도 없는 거냐? 돈 힘도 없고, 재산의 힘도 없고, 예수를 믿어도 예수 힘도 없다면 그냥 배짱이냐? ‘죽일 테면 죽여라? 말하자면 남의 돈을 떼먹고 돈 내놔라하면 내 배 째라하는 거냐? 그게 참 힘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 인간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밝혀주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지옥 가느냐, 천국 가느냐그것 가지고 씨름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밝혀주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오신 목적도 그러하고, 성령님의 역사도 그러하다. 이것을 전하는 전도자의 말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영웅성 허풍성들이 무너지게 돼 있다. 이건 세상공부를 많이 한 것과는 다르다.

 

세상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거냐? 그건 아니다 세상공부는 전부가 해 아래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해 위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 사상 소원 목적 가치판단 평가성을 뚫어보고 말씀을 하신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훤히 보고 계시듯이 당신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말씀은 사람 속을 전부 해부하고 들어간다.

 

그러면 주님이 뭘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보시겠느냐? 망원경으로 보겠느냐? 뭘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보시겠느냐?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 그것을 가지고 보시고, 그것을 가지고 고치시고, 그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신다. 그 능력 그 실력은 천국의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 이방정신 사상을 가지고 사단 마귀의 조종을 받는 허망한 가르침들이 많다. 얼마나 많으냐? 엄청나게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근거가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는 없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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