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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일본보다 약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일제강점시대에 동성상업고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한 번은 (학기말?)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시험 문제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일본 천황 폐하의 백성이 된 소감을 적으시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내용에서 시험 문제가 나오지 않은데다, 평소 독립 운동 등에 관심이 있었던 고등학생 김수환은 부아가 치밀어 이렇게 답을 적어냈다고 한다.
1.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다.
2. 그러므로 아무 소감이 없다.
답안지를 내고 나서 김수환은 당연히 퇴학을 당할 것으로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학교는 그 답안지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징계 위원회의 책임자 격인 교감 선생님이 김수환에게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오라'고 해서 그는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후일 그는 일본 유학 중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 복판에서 마주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신부의 소명을 받아들인다.)
20세기 초에 우리 민족은 힘과 지략이 없어 일본의 먹잇감이 되어 참혹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후 광복을 되찾았지만 이내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채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이 난 세월을 보냈고, 또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권과 자유를 상당 기간 억압당한 채 살아야 했다.
다행히 비슷한 처지에 있던 수많은 나라들과 달리 우리 민족은 경제 개발에 성공했고 이어서 민주화와 정보화까지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시민 의식과 더불어 인공지능 시대에 앞서가기 위해 산업 전 분야에서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을 앞서거나 또는 일본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일본을 두려워하거나 동경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태도가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차이라고 믿는다. 이제 겨우 50대 중반인 나만 해도 '과연 우리가 살아 생전에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던 세대다. 그런 내가 볼 때 지금 대한민국이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현상은 실로 상전벽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한쪽에는 여전히 대한민국이 황국 신민의 일원인 것처럼, 따라서 지금도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일본의 비위를 맞춰야 하며, 일본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이 국체를 보전하고 백성의 안위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다수 있다.
그들 중 특히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복해서 일본의 이해관계를 대한민국 사회에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교묘한 논리와 괴변을 앞세워 온갖 수작을 버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나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선도해야 할 학계와 언론계에서 그런 수작을 벌이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접할 때면 실로 기가 막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김수환 추기경의 버전을 응용하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1. 우리는 더 이상 일본보다 약한 나라가 아니다.
2. 그러므로 일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언젠가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하나의 경제-안보 공동체를 이루는 날이 진짜 오게 된다면 그때 세계는 정말 한반도에서 '범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김요한
도서출판 새물결플러스 &새물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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