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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시편 한 편씩 묵상하기(2)]
“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버리자’ 하는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내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시2:2-4).
근대 무신론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즉 신은 인간이 투사한 산물이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신을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려는 존재기도 하다. 인간이 신이 되려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 타락의 시발점이며, 역사는 바로 이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한다.
역사 내내 수많은 제국, 황제, 영웅호걸들은 자신을 신의 아들 내지 체현으로 내세우는 식으로 신격화를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도 초강대국과 국제적 규모의 다국적 기업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창조하며 세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세계의 운명을 기획, 설계, 통제하려고 모든 가용한 자원을 동원한다. 역사를 설계하고 주관할 수 있다는 신념과 구호야말로, 정확히 신의 몫이 아니던가!
초강대국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의 자원을 임의로 독(과)점, 분배, 편취하며, 인간의 가치를 쓰임새에 따라 특정한 질서 안에 편입시키거나 배치한다. 이렇게 그것들은 신의 소유를 도둑질하며 그분의 섭리를 스스로 대행하려는 방식으로, 신의 보좌에 등극한다. 확실히 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며, 그들의 시대는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이 땅 위에는 그들에 필적할만한 존재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 위에서’ 그 모든 것들을 ‘내려다 보시며’ 그들의 위력과 자랑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헛됨, 덧없음, 모자람, 유약함을 비웃으신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위대한 성취와 업적도 창조주 편에서는 한참을 내려다 봐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11장에 묘사된 바벨탑(지구라트)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인간들은 자신들의 모든 기술, 지식, 욕망, 의지를 총동원해서 하늘에 닿을 듯한 건축물을 세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한참 내려오셔야만 했다. 이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소위 ‘질적 차이’란 것이다.
따라서 초강대국과 그것의 수장들, 또한 그들을 호위하고 숭앙하며 충성하는 심복들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기 위해 밀실에서 온갖 음모와 계교를 꾸미고, 그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어떻게든 끌어모아 무력시위를 벌이지만, 그리고 자신들이 보유한 ‘힘’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비웃으신다. 인류 역사에서 어떤 제국도 영원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또 그들이 ‘굽힌’ 역사가 반드시 ‘바로잡히기’를 되풀이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역사와 세계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이다.
거대 기업의 오너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종종 자본의 허세를 앞세워 자신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신인 양 행동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들의 최후는 병원 중환자실, 교도소, 혹은 어둡고 쓸쓸한 방에서 맞이한다. 이따금씩 그들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혈육들이 병상을 에워쌀지라도, 그러나 그 피붙이들의 진짜 속내는 재산분배를 둘러싼 암투로 가득할 뿐이다. 그러니 이 블랙 코미디를 보면서 어찌 웃프지 않단 말인가!
막강한 국가, 정부의 수장, 다국적 기업도 이럴 운명일진대 우리 개인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갖고 있으면 이름 앞에 신을 뜻하는 ‘갓’자를 접두어로 붙이거나, 이름 뒤에 접미어로 ‘느님’을 붙여 칭송하는 현상이 유행하는데, 실상 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인간? 별 것 없다. 살아 보면 안다. 누구나 젊은 날의 성취와 영광은 쉬이 사그라들고 결국은 늙고 병들며 죽는다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주제에, 하찮은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고 호들갑을 떨다가 마침내 창조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찍이 ‘테스’ 형님께서는 뭇 인간들을 향해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했다. 너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너와 나는 땅에 있고,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지구라는 행성에 먼지처럼 붙어 있는 우리와, 저 광활한 우주 너머에 계신 창조주 사이의 ‘간격’을 헤아리는 것, 그것이 지혜이자 믿음의 요체다. 그리고 그 지혜와 믿음이야말로 우리네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견고한 두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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