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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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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에 정치적 상대편을 가장 손쉽게 제거하는 길은 단 하나였다.
즉 정적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다.
정말 그 시절에는 빨갱이라는 딱지 하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
그 맛에 군사정권은 정치적 라이벌들에게 간첩 혹은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사회와 영구 격리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니면서도 빨갱이 취급을 받아 패가망신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실종 처리되길 일쑤였다.
우리 현대사에 분명 그런 참혹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그 당시 기독교계 안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가톨릭의 경우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에 맞서는 분위기가 강했고, 개신교의 경우 진보 교단을 중심으로 반 독재투쟁에 헌신한 그룹과 보수 교단을 중심으로 독재정권에 협력 내지 부역한 그룹으로 선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군사정권에 굴종하고 협력한 개신교 보수교단조차도 정치적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무작정 빨갱이 취급하는 데는 약간 조심하는 태도를 취했다.
오히려 겉으로는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교를 하면서도 실제 속마음 한쪽에는 불의한 정권에 굽신거리는 자신들의 용기 없음을 부끄러워하는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었다.
헌데 2천 년 초반에 이르러 김진홍, 서경석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뉴라이트 운동이 출범하고 그것의 수혜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던 무렵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극우-보수 정권이라고 해서 무작정 정적을 향해 빨갱이 딱지를 붙여서 제거하는 일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들 나름의 지켜야 할 '선'이 그어진 것이었다. 또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신교 쪽에서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빨갱이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신교 목사와 신도들이 보수적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빨갱이 낙인을 찍고 혐오와 증오를 발산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서지 않으면 대한민국 사회가 당장에라도 공산화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역시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 정권의 꼭두각시 내지 앞잡이라면서 조만간에 적화통일이 될 것처럼 떠들었다.
지난 문재인 정권 4년 반의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극우 개신교인들 상당수가 현 정권을 빨갱이 정권으로 규정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머잖은 시기에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할 것처럼 믿고 있다.
많은 목사들이 강단에서 그런 내용으로 설교를 하며, 소위 기도빨이 있다고 하는 기독교 무당들이 예언기도를 빙자해서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그들이 말에 따르면, 지난 4년의 세월은 청와대에 어둠의 영들이 가득한, 붉은 영이 날뛰고 있는 세월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지키기 위해서 총궐기하여 광장을 점령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헌데 참 이상한 일이다.
북한 공산 정권의 앞잡이로서 당장에라도 남한을 빨간 색으로 물들여 북쪽에 헌납할 것처럼 간주되는 문재인 정권 하에서, 시간이 갈수록 북한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4년 동안 남한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을 군사-경제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더욱이 당장에라도 망할 것 같은 설교와 예언 기도가 난무하는 데도 현실은 정 반대다.
대한민국의 수출은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있으며 무역 흑자 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가 격상되었고, 코로나19 사태 와중에서도 꽤 잘 선방한 국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이 나라가 당장에 망하거나 적화통일 될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내부적으로 몇몇 심각한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사회가 굴러가는 데 이상이 없다.
자, 이쯤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심각한 '고민'을 할 것이다.
분명 우리 목사님은 주일마다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설교를 했는데 왜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지? 왜 기도 많이 한다는 아무개 권사님은 기도 중에 문재인이 김정은한테 나라를 갖다 바치는 환상을 받다고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
그렇다면 혹시 우리 목사님이 틀린 게 아닐까? 우리 권사님이 기도 중에 보았다는 환상이 가짜가 아닐까?
그들이 이념의 노예가 되어 망상에 빠져 있거나, 그런 말을 곧이 듣고 그동안 우리 교회가 집단 환각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냉정하게 '자기 성찰'을 시도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지적-사회적-영적 회심을 결단할 것이다.
아 그동안 내가 교회에서 보고 들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내가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겠구나,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해야겠구나 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입장을 선회할 것이다.
그게 멀쩡한 사람이 해야 할 마땅한 반응이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개신교인인 내가 볼 때 너무 마음 아프고 비통하게도- 여전히 한국 개신교 안에는 이런 집단 착란 증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윤석열, 최재형 같은 사람의 열렬한 지지세력인 것이다.
나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로 전락한 것이 너무 속상하고 슬프다. 그리고 부끄럽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박정희가 꿈꾸던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며 선거운동을 하는 최재형 장로 같은 사람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사람이 좋으면 뭐하나? 전도의 문을 가로막고, 한국사회의 진보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데 말이다.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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