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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잊지 않을게요]
1. 오늘은 한동안 미뤄두었던 숙제 하나를 해치웠다. 아침 9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하여 지방 모 도시를 다녀왔다.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비가 많이 와서 고속도로가 밀렸다.
어느 나이 지긋한 권사님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고민이 많기에, 오늘 일부러 찾아뵙고, 식사 대접도 하고, 함께 근사한 산속 카페에 가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헤어지기 직전에는 같이 기도도 했다.
권사님이 헤어지면서 내게 한 마디 했다.
"목사님, 그동안 받은 은혜 절대 안 잊을게요."
나는 '은혜는 무슨?"이라고 답하려다 살짝 말을 바꿨다.
"권사님, 진짜로 절대 잊으시면 안 되요!"라고.
2. 오늘 연세가 지긋한 여자 집사님 한 분이 새물결플러스 정기독자 신청을 하셨다고 한다. 과거에 정기독자를 하시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중간에 끊었는데 오늘 다시 재개하셨다고 한다.
이 분의 직업은 모 공공기관에서 청소 일을 하신다.
평신도가 청소 일을 하시면서 버는 돈의 일부를 한국교회를 위해 더 좋은 신학책을 내는 일에 써달라고 정기독자를 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내는 정기독자 몫은 어느 젊은 목사에게 매달 꼬박꼬박 전달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회사 정기독자의 약 70% 이상은 전부 소위 평신도들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도 아니다. 이분들이 한국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 쌈짓돈을 모아 출판을 돕는 것이다.
반면 큰 교회 목사들 중에는 정기독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아니 목사들 숫자 자체가 많지 않다. 내가 속으로 목사들을 같잖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다. 어디 신학책뿐인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헌신은 가난한 성도가 도맡아 하고, 생색은 목사가 독점하는 게 한국교회 생리다. 거기에 장로들도 덩달아 숟가락 얹으려고 하고.
나는 새물결플러스 정기독자 한 분 한 분을 절대 안 잊는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가운데서도 미자립 교회나 농어촌 교회 몫으로 정기독자 후원을 해주시는 한 분 한 분 성도님들의 이름과 사연을 절대로 안 잊는다. 죽을 때까지 안 잊을 것이다.
3. 1년 6개월 후에 출판계를 떠나겠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많은 분들이 나보고 '얼마나 힘들면 그런 결정을 다 내렸냐'면서 걱정을 해주신다. 감사하긴 한데 꼭 힘들어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사실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문제였다.
향후 출판계를 떠나기로 결정한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은 내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고 충만하게 살고 싶어서다. 지금처럼 주어와 서술어도 못 맞추는 문장을 하나하나 고쳐주면서 삶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등을 위해서 말이다.
이제는 남의 이야기를 고쳐주는 일이 아닌 내 이야기를 직접 삶의 도화지 위에 그리고 싶다. 구체적으로 더 깊은 기도의 세계에 몰입하고 싶고, 성경을 많이 사랑하며 읽고 싶다. 책도 몇 권 더 쓸 계획이다.
둘째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한국 개신교에 몸담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꼭 개신교만 그런 것은 아니고 거의 모든 한국 종교들이 비슷한 현상을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개신교는 '종교 시장' 현상이 심각하다.
신학자와 목사들은 종교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신자들은 그중 기호와 구미에 맞는 것을 소비하기 바쁘다. 그렇게 생산과 소비가 정밀하게 맞물려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을 신앙 혹은 영성이라고 착각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시장의 일원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다른 길을 찾고 싶다.
따라서 내가 출판계를 떠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쫒겨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내 자의에 의해 기쁘게 내린 결정이다.
요즘 나는 지난 15년의 세월 중 가장 홀가분하고 평화롭다.
그러니 너무 안쓰러워하지 않으셔도 된다.
그래도 정 안쓰러우시면 정기독자 한 구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물론 그 사랑은 절대 안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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