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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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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 장로, 집사란 말은 우리말로는 다 다르지만 신약성서의 원어인 그리스어로는 같은 말이다. 그 뜻은 '섬기는 자'다. 구체적으로 '식탁 봉사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로 따지면 웨이터 정도?
2. 어제 법무부 직원이 우중에 무릎을 꿇고 법무부 차관의 우산을 받쳐준 사진 한 장 때문에 결국 해당 차관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본래는 직원이 차관 뒤에 서서 우산을 받치고 있었는데 기자들이 사진에 차관 모습만 나올 수 있도록 직원보고 비켜달라고 해서 그 직원이 우산을 든 채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 기자들이 무릎을 꿇은 직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당연히 언론에 보도된 사진만 본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일색이었고, 법무차관은 결국 사과를 했고, 아마 모르긴 해도 그 직원도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여부 때문에 엄청 마음이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법무부 직원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친 사진을 내보낸 언론사만 득을 본 셈이다.
기사 클릭수가 엄청났을 테니까.
세상 일이 이렇다.
3. 암튼 직원이 상사를 위해서 우산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옛날 장면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2010년 가을이었다. 당시 나와 같은 노회 소속이었던 목사 하나가 교회 헌금을 수십억 횡령한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 목사를 면직시켜달라는 청원을 총회에 해놓고, 총회장소에 직접 찾아가 총대들을 일일이 만나 긴급청원 서명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결국 정치 목사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실패했다.)
그때 총회 장소에 갑자기 비가 왔는데, 점심 식사를 하러 총회장소를 나와 식당으로 향하는 총대 목사 장로들(약 1.500명)이 모두 제 손에 우산 하나씩 받쳐들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딱 한 사람 만이 우산을 들지 않았다. 대신에 옆에서 부목사 하나가 공손하게 우산을 받치고 그 문제의 담임목사를 정중히 보필해서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봤다. 그 부목사는 제 몸은 비로 흠뻑 젖었으면서도 자기 담임목사에게는 빗방울이 한 방울도 튀지 않게 하려고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옆에서 우산을 받치고 수종드는 부목사가 비를 맞든지 말든지 전혀 신경을 안 쓰고, 그 문제의 목사는 뒷짐을 진 모습으로 거만하게 걸어갔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참 희안해보였다. 마치 별천지의 장면 같았다고나 할까.
그때 그 목사가 누구냐면, 바로 서울 서초동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을 했다는 사람이다.
4. 공무원 사회는 유독 질서와 의전이 강조되는 집단이다. 특히 국방부, 법무부 등이 그렇다. 나는 법무부는 경험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국방부의 경우 별 하나(준장)와 무궁화 셋인 대령 사이의 의전 차이가 100개란 말이 있다. 계급 하나 차이인데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면 의전이 100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군인회관에 가서 목욕할 때 쓰는 타올조차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었다.
공직사회나 기업에서 의전과 질서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전통은 살리되, 그러나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의전을 간소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6. 종교계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계는 사제가 신자를, 선배가 후배를, 원로가 신참을 섬기는 곳이라는 점에서 세속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종교계는 어느 집단 보다 소위 상하간 위계질서가 더 강조되는 경우가 흔했다.
갑질 문화와 꼰대 문화가 가장 뿌리 깊은 곳 중 하나가 종교계다. 개신교, 가톨릭, 불교 모두 똑같다.
이런 구태를 과감히 청산하지 못하는 한, 특히 젊은 세대는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외면하는 종교는 결국 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 교회 안에 유독 젊은 세대가 없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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