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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성례전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예배를 설명할 때, 말씀의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서 봉독과 설교다. 말씀의 빛은 신앙의 신비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공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시간에 설교자의 만담이나 개인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고, 그날그날 변하는 목사의 감정에 좌우되어 뽑기식으로 분문이 선택돼도 안 된다.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언제나 교회의 본질인 복음,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에 집중돼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전례 교회에서 공예배의 성서 봉독과 설교는 반드시 복음서 중 한 본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교회력을 사용하는 오늘의 교회에선 시편과 함께 세 본문(구약-서간-복음서)을 읽지만, 성서 봉독엔 다양한 전통이 있다. 서(西) 시리아 계열 예배에선 회당 관습을 그대로 수용해서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하나씩 읽은 다음, 신약의 서간문과 복음서, 총 네 개의 본문을 읽었다. 야고보 전례에선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세 개씩, 총 여섯 본문을 읽었다.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는 전통은 분명히 동방교회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교회력을 사용하는 교회에서 부활 절기에 구약대신 사도행전을 봉독하는 건 서방교회 전통인 갈리아 예전(4~8세기)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교회력 성서 본문처럼 연속읽기(lectio continua)가 그때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각주)
성서 본문 앞뒤에 기도나 찬송이 연속적으로 따라붙는 비잔틴 계열 예배에서 성서 봉독은 독립된 순서로 보기 어렵다. 이에 비해 로마 전례가 주류가 된 서방교회에선 말씀 봉독 순서가 도드라지게 분리되어 있다.
독특한 건, 서방교회 예배에서 시편의 위치이다. 성서 봉독에 시편을 포함하지 않지만, 시편은 늘 성서봉독 시간에 나머지 세 본문과 함께 낭독되거나 노래로 불린다. 예배 때 시편에 가락을 붙여 사용한 건 이미 기독교 초기부터 시작되었지만, 보통은 입당송으로 사용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시편이 로마계열 예배에서 성서 봉독과 연결된 건 6세기 즈음이다.(각주) 원래 초세기만 해도 예배가 시작되면 시편 가사로 만든 찬송을 부른 후 성서 말씀을 읽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순서가 시편과 성서 봉독(복음서) 사이에 들어왔다. 모두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된 이후 예배가 점차 화려해지면서부터 생겨난 일이다.
글로만 보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유럽의 오래된 교회에 가보면, 회중석 중간 오른쪽이나 왼쪽 벽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설교대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걸 독서대 또는 암보(Ambo)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강대(Pulpit)라고도 하는 암보는 마이크가 없던 시대에 회중에게 봉독자의 음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위치에 있다.
암보는 헬라어 ‘암본’(ἄμβων)을 음역한 건데, “높은 자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름대로 교회의 암보는 사실 성서 봉독이나 설교와 상관이 없고, 원래 귀족이나 황제를 위한 VIP 특별좌석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집 안에 귀족을 높이는 자리만 있는 게 뻘쭘했는지 다른 한쪽엔 또 하나의 암보를 만들어 교회 안에 두 개의 암보가 마련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교황권이 강화되면서 교회 안에 하나의 암보만 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설교대’ 또는 복음서를 봉독하는 ‘독서대’인 암보이다.
2~3세기만 하더라도 설교는 곧 복음서를 또박또박 잘 읽어주는 것이었다가 나중에 성서 본문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시간이 된다. 결국, 알고 보면, 성서 봉독이든 설교든 같은 자리에서 하게 되는데, 그래서 암보를 설교대 또는 복음서를 낭독하는 독서대라고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6세기로 돌아가자.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의 자유는 예배서 안에 글자로 갇히기 시작하고, 그 방법도 점차 세밀해지고 예배는 경건한 듯 화려하게 변해갔다.
6세기 어느 일요일 아침 로마 시내 한 교회에 들어가 보자.
예배 시간에 늦었는지 벌써 입당송부터 영광송 모음기도까지 다 끝났다. 이제 말씀의 예전이 시작된다. 말씀 봉독의 시간이 되자 봉독자가 구약의 말씀을 낭독한다. 저 뒤편에서 잘 훈련받은 솔리스트가 두툼하지만 고풍스럽게 장식된 예식서(cantatorium)를 들고 나와 멋진 목소리로 시편 두 소절에 가락을 붙여 노래한다.
이제 성가대(Schola Cantorum) 차례다. 독창자의 선창에 이어 다음 두 소절의 시편을 아름답게 이어 부른다. 독창자와 성가대의 교창이 교회당 안에 아름답게 채워질 때, 봉독자는 서서히 암보로 올라간다. 그런데 바로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첫 번째 계단 위에 올라서자 노래는 멈춘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흐르면, 그때 봉독자는 두 번째 성서 본문(사도서간)을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한다. 성서 봉독이 끝나자 성가대에서 다시 시편 가사로 된 찬송이 울려 퍼진다. 계단에 있을 때 부른다고해서 이 찬송을 ‘층계송’(Graduale)이라고 한다(각주).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봉독자는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올라 독서대 앞에 복음서를 펼치고 낭독을 준비한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성가대에서 ‘알렐루야’ 찬송이 퍼지면, 그때 복음서를 봉독하고, 다 끝나면 모든 회중이 함께 ‘찬미가’로 복음을 환호한다.....
최주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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