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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본다. 분단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한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 특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내적 힘이 있었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는 기력이 쇠하여 참으로 무력했다. 의식 수준과 교육수준은 거의 바닥이었으며 3.1운동의 실패, 일제의 강한 억압 등으로 우리는 정말 힘도 없고 소망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해방이 되고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그 불로 인하여 잠에서 깨어났다. 흐린 눈동자에는 핏발이 서고 느릿했던 행동은 빛처럼 빨라졌다.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다. 순간의 선택으로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상황에서 머릿속은 슈퍼컴퓨터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살기 위한 열정이 생긴 것이다.
이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신분제도가 붕괴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 신분차별이 철폐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하여 또 다른 신분의 차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높은 부와 지위를 누린 이들은 친일파들이었기에 백성들은 그들을 경멸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전쟁을 거치면서 신분의 장벽은 완전히 사라졌다.
신분의 장벽이 허물어진 상태이기에 신분상승의 길이 열렸다. 모두가 자녀교육에 열을 올렸다. 조금이라도 뜻이 있는 이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녀교육에 매달렸다.
과도한 교육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많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우리나라를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대장장이 기술로는 결코 특수강을 제련할 수 없고 자동차 엔진을 만들 수 없다. 목수기술로는 고층빌딩을 올릴 수 없고 석수장이 기술로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감당할 수가 없다. 뜨거운 교육열로 선진문물을 열정적으로 배우고 모방하고 연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교육열이 뜨거운 만큼 교육정책은 국민들의 큰 관심사이다. 교육정책가들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해도 국민들은 만족하기가 어렵다. 뜨거운 교육열에 어린 학생들의 학창시절이 참으로 고달프다. 자녀들의 학업을 뒷받침하느라 학부모들의 고통이 또한 막대하다.
이제는 고급인력이 남는다. 수급의 불균형으로 애써 공부한 만큼 대가가 뒤따르지를 못한다. 옛날에는 대학을“牛骨塔(우골탑)”이라고 했으나 오늘날 대학을 “講骨塔(강골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남아도는 고급인력들이 저임금 시간강사로 채용되어 학교를 유지시킨다. 그 자리도 얻지 못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사교육으로 먹고산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국가가 제공하고 요구하는 교육은 그 목적이 분명하다. “그 시대에 필요한 인재양성”이다.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필요한 양질의 부속품이 필요하다. 산업사회에서는 거기에 맞는 인재가 필요했고 정보화시대에는 역시 거기에 맞는 인재가 필요하다. “인격”, “가치관”, “행복”, “자아실현” 등의 용어들은 교육프로그램에 없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가르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 수없이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보완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문제점 투성이다. 그러나 우리교육에 장점도 많다. 그 장점들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우리교육에 대해서 바람이 있다.
우리 자녀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려하니 아이들이 고생이 많다. 제도화된 경쟁 속에서 피가 마른다. 아이들이야말로 행복해야 되는데 그 행복을 어른들이 가혹하게 빼앗았다.
또 하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정답이 분명한 교육을 받으니 그것이 불만이다. 정답이 분명한 교육을 받고 정답이 분명한 시험을 치른다. 그런데 실제 인간사회에서는 정답이 분명한 경우가 많지 않다. 정답이 분명한 교육은 생각과 행동을 억압한다. 내가 옳다면 남은 틀린 것이다.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한다. 정답이 분명한 교육은 매우 유치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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