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눅11:2-3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2절-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절: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에게 임하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 마음바탕은 세상 물질적 부자 되는 욕심, 돈 욕심, 편하려는 욕심으로 가득 들어있는데 그런 마음 성격 성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깨닫지를 못한 것이고, 그 속 중심이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거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어떤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는 거룩한 나라, 의로운 나라, 아가페의 나라, 생명의 나라, 선의 나라, 진실의 나라다. 이 나라가 자기 마음바탕에 임하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그러면 자기 마음속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자기 마음속에 누구를 모셔야 하느냐? 주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쉽게 말을 하면 부모를 공경하려면 누구를 마음속에 모셔야 하느냐? 부모님을 자기 마음속에 모시면 부모공경이 나오는 거다. 부모공경이 안 되는 것은 부모가 자기 마음에 안중에도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치를 몰라서 욕을 먹고, 안 믿는 사람처럼 취급을 당하고, 하나님으로 얻어맞고 저주를 받고 한다.
욕심스런 자기 마음대로 해주면 그걸 천국처럼 생각을 하느냐? 사람이 안됐는데 그 사람의 집에 비단이불을 깔아주면 원망불평이 없겠느냐? 사람이 안됐기 때문에 어떤 집에 살아도 원망불평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그게 나왔다. 옳은 것을 가르쳐 주면 옳은 이치를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이 끝이 날 때 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문에서는 마지막 세상 끝 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예수 믿으면서 심령천국을 말한다. 그러니까 한 가정에서 식구들마다 자기 속에 심령천국이 되어 있으면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옳은 말씀으로 다스려지고 하기 때문에 그 가족은 심령천국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심령천국을 이뤄야 하는 건데 예수 믿으면서 세상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 필경 현재에 원망불평이 나온다. 이런 사람은 현재라는 현재가 자기 좋도록 되어 있으면 ‘이렇게 영원히 살았으면’ 하며 기분이 좋고, 그 환경이 쓱 바뀌면 또 죽을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세상욕심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가 잘못된 것은 전부가 남 원망으로 돌아간다. 이게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세상이 있는 거다.
자기 마음 가운데 세상이 들어 있다는 것은 영의 눈으로 보면 그 사람 마음 가운데 마귀가 왕으로 딱 앉아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련한 사람은 옳은 것을 가르쳐 줘도 자기 마음속에 사단 마귀를 왕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귀신들린 사람처럼 행동을 하게 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돈을 좋아하고 돈의 지배를 받고 하면 돈도 세상이니 자기에게 돈이 들어온다고 하면 신앙은 뒷전이고 그리로 쫓아가게 된다. 그런 마음을 뜯어 고쳐라. 그런 자기를 누군가가 용상에 앉혀준들 네가 며칠이나 살겠느냐? 용상에 앉는 그 날부터 너는 죽는다. 그래서 용상에 안 앉히는 것이다. 왕이 되려면 왕의 지혜지식의 옳은 것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옳은 게 없으니까 왕이 된들 부하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게 되면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의 말씀이 자기 속에 가득 깨달음으로 차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좋은 것으로 다 들어가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원망불평이 안 나온다.
진리진실로 거룩한 성도는 그 소원과 목적이 불탈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고, 항상 이룰구원으로 산다. 그래서 장사를 하던, 직장을 다니던, 농사를 짓던, 무엇을 하던 이룰구원으로 산다. 이런 사람은 일은 하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고, 물건을 만드는 마음이 남을 이롭도록 하려고 한다. 이게 구원의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이롭도록이 아니라 물건을 설설설렁 대충 만들어서 빨리빨리 망가져서 자기 회사의 물건을 많이 팔려는 마음은 구원의 일이 아니다. 이건 사람을 해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장사가 안 되게 머리를 쓰는 격이다. 망하는 일이다. 한 회사가 있으면 사장이 회사 직원들을 늘 이롭게 하면 그 회사 사람들은 그 회사를 위해서 물건을 잘 만든다. 그러면 잘 팔린다. 그러면 그 회사가 잘 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기의 소원 목적이 세상에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거룩히 여김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이 자기 마음 가운데 들어 있으면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이 되느냐? 안 된다. 왜 안 되는가 하니 세상의 이해타산만 따지고 있으니 그 사람이 고상하게 안 보이고 저질적으로 보이고 몹쓸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또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이상한 귀신 잡밥 먹이는 소리나 듣고 예언 방언이나 한다고 하면 사람이 어찌 되겠느냐? 아무 짝에도 못 쓰는 사람이 된다. 일반 세상에서도 못 쓰고, 교회에서도 못 쓰는 사람이 돼버린다.
물건도 못 쓰는 게 있다. 못 쓰게 되면 부수든지 가루로 만들어서 다시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녹인 다음에 다시 틀 속에 넣어서 물건을 다시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도 안 되면 흙속에서 썩어지는 수밖에 없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첫 마디에 깨달아서 고치지만 미련한 사람은 자기 고집만 부리다가 실컷 얻어맞고 평생을 그렇게 산다. 예수 믿는 사람의 중심사상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마귀가 좋아하는 것으로 들어 있으면 되겠느냐? 그게 하나님의 나라이겠느냐?
어느 교회에 가도 목사나 교인들의 기도가 세상과 세상 안의 것을 구하고 있다면 거기에서 탈출을 하라. 거기에 있으면 네 신앙 믿음은 죽는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왕과 같은 곳에 왜 있겠느냐? 하나님의 백성이 왜 바로 왕의 밑에 있겠느냐? 바로 왕 밑에서 열심 충성봉사 해봐야 애굽건설이다. 그렇게 되면 수고는 네가 하고 이름은 바로 왕이 날리게 된다.
옛날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를 지어놓은 게 아무리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 밑에서 지은 거다. 그거 짓느라고 몇 사람이나 죽어 나갔겠으며, 얼마나 얻어맞았겠으며, 얼마나 곪았겠으며,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을까? 그게 성경에 나오지 않느냐? 그 속에서 자기의 모습도 찾아봐라. 있는 거다.
자식을 낳거들랑 부지런히 바로 왕 밑에 바쳐라. 그게 애굽(세상)을 위한 제물이다. 주일날 교회에 가는 거 까먹고, ‘세상에서 일등 일등’ 부지런히 하라. 그건 우상의 제물이다. 대학을 졸업했어도 사람이 못 돼 놓으면 이도 저도 아무 데도 갈 데도 없고 못 쓴다. 대학을 안 갔으면 아예 ‘나 같은 사람은 노동이나 해서 먹고 살자’ 하겠지만 대학을 갔다 나오면 노동판에서 일하기가 부끄럽거든. 펜대 잡고 깔짝거리면서 돈 많은 데로 가려고 하니 이게 속이 돼 먹은 거냐? 세상이 자기 마음에 맞는 곳이 어디 있느냐? 사람이 못 돼 먹었다.
성도라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예수 믿는 자기 속에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줄 수 있도록 믿어야지 내 쪽에서 하나님을 백 날 붙잡아봐야 ‘나는 너를 모른다. 네가 언제 내 말을 들었느냐? 네 편한대로 살았지? 그러니 네 말 안 들어준다’ 하게 된다. 이게 인격자의 세계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더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의 마음을 왜 모르시겠느냐?
3절: 믿는 사람이고 안 믿는 사람이고 간에 일용할 양식은 하루 세끼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날마다 하루 세 끼를 달라고 기도를 하니까 주느냐, 그런 기도 안 해도 세 끼를 먹기는 먹느냐? 가만 보면 중간 중간에 다른 걸 자꾸 먹으니까 세 끼도 안 먹는 사람도 있다. 또는 몸을 생각해서, 또는 살이 너무 쪄서 살 빼느라고 하루 한 끼만 먹는 사람도 있다.
일용할 양식이란 세 끼를 먹는 건데, 사람이 하루 세 끼를 안 먹으면 비정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하루 세 끼를 먹도록 만들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한 네 시간이 지나서 소화가 잘 돼서 내려가면 점심 때 점심을 먹고.
이방인들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을 하고, 예수 믿는 성도는 신령한 양식을 위해 일을 한다. 즉 인간은 육신을 가졌으니 인간이라면 물질을 먹어야 하고, 또 영육 결합체로 영을 가졌으니 신령한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 지혜적으로 눈에 안 보이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그 지식이 자기의 기준이 되듯이 하나님의 바른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영적인 면이 잘 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의 육신을 움직여 나가면 그게 믿음생활이라. 그리고 자기의 믿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물질의 양식도 먹어야 한다.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몸 신체를 잘 다스리면 건강하듯이 역시 영인성장 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그 주격으로 자기의 몸을 움직여 나가면 자기의 영이 성장을 한다. 이렇게 살아야 나도 괴롭지 않고 다른 사람도 괴롭지 않다.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나도 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을 준다.
천국에서 누리려면 세상에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느냐? 그게 아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한다. 안 믿는 사람처럼 살아놓고 천국의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은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영육 간에 건강해서 이룰구원을 잘 이뤄서 궁극적 결과에 가서 신령천국에서 그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짐승에게는 구원이 있고 자기는 구원이 없이 지어졌다면 어찌 되었겠느냐? 짐승들의 세계는 인간 자기와는 달리 구원이 없이 지어졌다. 그러니까 짐승보다 인간 자기가 훨씬 낫다. 구원이 있는 자기가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리고 예수님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로 닮아가는 자기가 구원이 없는 짐승처럼 인격이 없는 것처럼 살아서야 되겠느냐? 짐승처럼 살아서야 되겠느냐? 사람이 짐승은 아니잖느냐?
안 믿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을 한다. 우리는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질로 닮아서 머지않아 천국에서 살 자기인데 어떻게 사람을 동물 식으로 생각을 하느냐?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동물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을 ‘이성의 동물이다. 감정의 동물이다’ 하는데 이는 사람의 몸과 짐승의 몸을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까 같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니다. 인간 자기는 변화 부활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기를 짐승과는 다르게 지었다. 그러니 사람을 동물시 하지 말아라. 사람을 동물시 하는 용어를 쓰게 되면 너도 그 생각이 들어 있다는 증거다. 우리를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 정말 좋고 감사한 일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살았느냐?
사람을 지으신 후에 먼저 생명과를 먹도록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생명과를 먹는 게 우리의 주 양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지키고 다스리고 지배하고 땅에 편만하라는 축복이 된다. 계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참 양식이 돼야 한다. 그런데 그런 면은 생각을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처럼 물질의 양식만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정령 죽는다. 그런데 먹지 말라는 것을 먹으면 이는 불순종이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불순종의 사고방식을 먹은 것이다. 그러면 뭐가 불순종이냐?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쳐다보니 그게 자기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탐스럽게 보인다. 즉 그 정신 사상,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 인간기준 위주라 그 말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주가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그걸 보는 거다.
사람은 육신의 눈을 가졌지만 이 육신의 눈은 불완전하다.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육신의 눈으로 보고 좋다고 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꼬부라지고 썩고 죽는다. 그러니까 육신의 눈은 완전한 게 아니다. 그러니 사람이 일단 보기는 봐야하겠지만 문제는 속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겉이 있는 것이니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생명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런데 여자가 뱀의 꾀임을 받아서 선악과를 먹었다. 그래서 보면 ‘여자가 나쁘다’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여자의 마음이 약한 모양이다. 어딘지 모르게 그런 면이 있다. 진리에 마음이 약해져서 세상에 안 넘어지는 깡아리가 속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세상 쪽으로 약해져서 잘 넘어진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눈물과 고통과 걱정과 근심과 병과 질병 흉년 살인 기근 전쟁 죽음 등을 인간 세상에 불러오고 말았다. 그러니까 자기 기준, 인간기준으로 하지 말아라. 눈으로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달음을 받아서 눈으로 보이는 것을 구원 쪽으로 활용하고 이용을 하고 가야지 못 깨달으면 자동적으로 세상 쪽으로 넘어져서 그와 같은 재앙을 가져오고 만다.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게 안 고쳐지고 잘 안 벗겨진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 주관성에 맞추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러니 자기 속에서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밝아서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이용 활용이 되고, 이용 활용되는 그것이 자타에게 구원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의 주관성에 의해서 그게 안 되고 자기 마음 안 든다고 다 잘라놓으면 어떻게 살겠느냐?
세상은 세상대로의 실력이 있다. 선악과를 잘 따먹는 것도 잘 따먹는다는 면에서 실력인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런 사람을 능가해야 되겠는데 능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도 못한 채 자기 현실을 자꾸 천국처럼 만들어 달라고 하니 이게 참으로 큰일 났구나. 그러니 자기 속에 마귀가 왕으로 들어앉아서 마귀의 졸병노릇을 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병과 질고를 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럴 때마다 영적인 면에서 하나하나 깨달아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정신을 고치고 마음을 고쳐야 한다. 마음을 고치려면 옳은 지식부터 먼저 받아야 한다. 옳은 지식은 안 받고 ‘나는 안 그러련다’ 해서는 안 된다. 옳은 지식이 있어야 바로 돼 들어가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은 중생이 됐지만 영인성장 면에서, 신앙 믿음의 성장 면에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기 전의 사고방식과 지식이 잘 안 바뀐다. 그리고 악한 습성과 습관도 잘 안 바뀐다. 또한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신앙 믿음이 성장하기가 참 어렵고 힘든 일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지 않고 어떻게 세상정신의 주격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이러면 믿음의 사람도 안 되고, 그런 식으로 믿다가는 ‘네가 예수 믿는 사람이냐?’ 하고 얼굴이 똥 되는 날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다고 해서 세상에서 잘 살 것 같으냐? 또 잘 산들 뭐 할 거냐? 왜 그런 면을 마음속에서 생각을 못할까?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