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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사람

민수기 김기석 목사............... 조회 수 334 추천 수 0 2021.10.29 2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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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24:1-7 
설교자 : 김기석 목사 
참고 : 2021/02/14 청파감리교회 http://www.chungpa.or.kr 

눈을 뜬 사람
민24:1-7
(2021/02/14, 산상변화주일)

[발람은 자기가 이스라엘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주님의 눈에 좋게 보였다는 것을 알고는, 매번 으레 하던 것처럼 마술을 쓰려 하지 않고, 대신 광야 쪽으로 얼굴만 돌렸다. 발람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진을 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그 때에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다. 그는 예언을 선포하였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다. 눈을 뜬 사람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말이다. 환상으로 전능자를 뵙고 넘어졌으나, 오히려 두 눈을 밝히 뜬 사람의 말이다.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이스라엘아, 너의 사는 곳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계곡처럼 뻗었구나.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목 같구나. 냇가의 백향목 같구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뿌린 씨는 물을 흠뻑 먹을 것이다. 그들의 임금은 아각을 누르고, 그들의 나라는 널리 위세를 떨칠 것이다.]

∙마음의 행장 꾸리기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설 명절을 따뜻하게 지내셨는지요? 이제는 도처에서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우수 절기가 다가오니 그럴 만도 합니다. 사순절을 앞둔 주일인 오늘은 주님의 산상변화주일입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우리는 사순절 순례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40일의 기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산상변화주일은 고난의 광야 길에 접어들기 전 행장을 정비하는 시간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희게 변화된 사건은 복음서의 돌쩌귀와 같습니다. 그 사건을 경계로 하여 주님의 갈릴리 활동과 예루살렘 활동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실 때 그것을 영광의 여정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상, 곧 메시야의 시대가 열릴 거라는 기대가 그들을 온통 사로잡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자들이 쫓겨나고, 솔로몬 시대와 같은 황금시대가 열릴 거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런 꿈은 순수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악의 뿌리는 깊고, 그 뿌리는 서로 얽혀 있어 끊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새로운 세상은 늘 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조금씩 열리게 마련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일어난 장소가 중요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신전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고, 체제 선전을 위한 극장이 성업 중이었고, 로마 황제가 신적 존재로 추앙받던 그곳에서 베드로는 황제가 아니라 나사렛 출신의 목수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구원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실로 장엄한 고백입니다. 힘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던 세상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유포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세상에서 서러움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세심하게 돌보는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고백을 들은 주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밝힙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섣부른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스승을 바싹 잡아당기며 항의합니다. 그런 말씀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좋은 제자였지만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주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 희생 제물이 되려 하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두려운 침묵이 제자단을 사로잡았습니다. 며칠 후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주님의 모습이 새하얗게 빛나는 것과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주님과 말씀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탕자의 마음으로
이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요한계시록의 배열에서 그 힌트를 찾고 싶습니다. 계시록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천사의 메시지를 전한 후에 4장과 5장에서 하늘 보좌를 보여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흰옷을 입은 스물네 명의 장로들과 앞 뒤에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들이 각각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 있었습니다.

그 천상의 장면은 궁극적 완성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계시록 기자는 역사가 마침내 당도해야 할 오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것은 옛 세계가 무너지면서 세상이 겪게 될 재난과 파국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혼란입니다. 성도들도 그 현실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러한 재난을 파국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기 위한 산고의 과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7장과 14장에서도 하늘 장면을 보여줌으로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그 메시지는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계14:12)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하여 살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넘실거리는 바다 가운데도 길을 내시고,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하게(사35:1) 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눈을 뜨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눈을 뜬 사람이 신비가입니다. 구상 시인은 ‘한 알의 사과 속에는’이라는 시에서 사과 한 알 속에 ‘구름이 놀고, 대지가 숨쉬고, 강이 흐르고, 태양이 불타고, 달과 별이 속삭이고, 땀과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고 노래합니다.

구상 시인은 ‘신령한 소유所有’라는 시에서 “이제사 나는 탕아蕩兒가 아버지 품에/되돌아온 심회心懷로/세상만물을 바라본다“고 노래합니다. 그는 “저 창밖으로 보이는/6월의 젖빛 하늘도/싱그러운 신록 위에 튀는 햇발도/지절대며 날으는 참새 떼들도/베란다 화분에 흐드러진 페츄니아도/새롭고 놀랍고 신기하기 그지없다.“고 고백합니다. 늘 심드렁하게 보던 것들이 이렇게 새롭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되돌아온 탕자의 심회로 세상만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늘 뭔가 부족한 것처럼 느끼는 것은 집을 지키고 있던 맏아들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우리 삶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저주하고 투덜거리고 원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오늘은 저주를 위해 부름을 받았으나 축복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도 출애굽 공동체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곳에 터잡고 살던 유목민들의 억압까지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길이 막힐 때마다 그들은 먼 길을 우회해야 했고, 그때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소?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되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민20:5) 가까스로 위기를 넘겨도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 여정 가운데 모세와 백성 사이에 서서 중재 역할을 하던 미리암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론 또한 에돔 땅 경계 부근인 호르 산 부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출애굽 공동체는 요단 강 건너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옵니다. 자기 땅을 침범당한 모압 왕 발락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약탈자devastator’라는 이름의 뜻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변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지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술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명망 있는 마술사인 발람은 브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브돌은 장소 이름이지만 ‘마술사, 예언자’라는 뜻입니다. 발람이 있기에 적절한 장소라 하겠습니다. 발락은 사신들을 보내며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며 자기에게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이는 복을 받고, 그대가 저주하는 이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민22:6d)

청을 들은 발람은 즉각 응답하지 않고 계시를 기다립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현몽하셔서 “너는 그 사신들과 함께 가지 말아라. 이집트에서 나온 그 백성은 복을 받은 백성이니 저주하지도 말아라”(민22:12) 이르십니다. 발람은 주님께서 동행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며 사신들을 돌려보냅니다. 다급했던 발락은 고위급 사신들을 다시 보내 후한 보상에 대한 약속하며 자기에게 와달라 청합니다. 발람은 그 밤에도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렸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발람은 그들과 동행하되 당신이 하는 말만 전하라는 엄중한 지시를 받고 길을 떠납니다.

성경 이야기에 익숙한 분들은 그들의 행로 가운데서 벌어진 일을 잘 아실 겁니다.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발람 앞을 천사가 칼을 빼들고 막아섭니다. 발람은 그를 보지 못합니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나귀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갑니다. 발람은 나귀를 때려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그러나 나귀는 좁은 길 한쪽을 막아선 천사를 보고 벽 쪽으로 붙어 발람의 발이 긁히게 합니다. 발람은 또 다시 나귀를 때려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이번에는 천사가 아예 길을 막자 나귀는 주인을 태운 채로 주저앉습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지팡이로 나귀를 때립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자, 나귀가 발람에게 왜 때리냐고 항의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어른께 버릇없이 굴거나 잘못한 일이 없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문답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여시자 비로소 그는 칼을 빼들고 서 있는 천사를 봅니다. 이 이야기 속에 담긴 풍자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민수기 기자는 미래를 예지하는 신통력으로 유명한 사람, 축복과 저주의 능력으로 왕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눈이 어두운 사람인지를 넌지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귀도 보는 것을 그는 보지 못했습니다. 발락이 보낸 고관들 역시 길에서 벌어진 그 사건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에 대한 통렬한 풍자입니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날 때
발람은 두려웠지만 그들과 동행하라는 주님의 지시를 따라 발락에게로 갑니다. 발락은 그를 바알 신당으로 데려가 모압 평지에 진을 친 이스라엘 진영을 보게 합니다. 하지만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주하며, 주님께서 꾸짖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꾸짖으랴!“(민23:8)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당황한 발락은 장소를 옮겨가며 저주를 청탁합니다. 비스가 봉우리에 섰을 때도, 브올 산 꼭대기에 섰을 때도 발람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의 말만 전합니다. 그는 어떤 압도적인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야곱에 맞설 마술은 없다. 이스라엘에 맞설 술법도 없다“(민23:23a). 자기 한계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찬미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십니다. 발람은 광야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그는 자기를 두 가지로 규정합니다. ‘눈을 뜬 사람’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인근의 누구보다 눈이 밝은 사람으로 존숭 받았습니다. 단순한 마술사가 아니라 역사의 추세를 가장 예민하게 자각하는 지식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분과 만나 넘어졌습니다. 자신이 눈이 어두운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발람의 모습과 다마스커스로 예수 믿는 이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환한 빛과 만났을 때 그 동안 ‘나는 안다‘, ‘나는 옳다’ 했던 사울의 자부심은 무너졌습니다. 그의 눈에 드리웠던 비늘은 그의 실존이 어둠이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발람도 넘어졌다가 눈을 떴습니다. 그런 후에 고된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을 한껏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러합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눈을 뜨고 살고 있습니까? 눈을 뜬 줄 알고 있지만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비늘이 덮여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까? 마치 일었다가 스러지는 물거품 같은 정보의 바다를 떠다니느라 정말 들어야 할 하늘의 소리는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세상을 달리 보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일희일비하며 널뛰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련이 다가온다 해도 하나님의 꿈을 우리 꿈으로 삼고 산다면 우리는 결국 이겨낼 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설 땅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를 괴롭히는 어둠이 스러질 것입니다. 높은 산에서 희게 변화되신 주님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품을 때 우리는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 앞길을 비춰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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