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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밑을 흐르는 새 개혁의 복류천이 마침내 지상으로 솟구치도록!
뉴스로기도 Navi Choi............... 조회 수 62 추천 수 0 2021.10.31 06:48:47
루터와 로욜라
오늘은 루터가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95항의 항의문을 개시한 지 꼭 50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일이관지하던 세상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위험천만 한 일이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은 교회의 권위와 엄포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불에 타 숨지면서까지 자신의 신앙과 양심의 정결을 고집하였습니다. 놀란 것은 교회였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념과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에 적잖게 당황하였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로마가톨릭교회는 처음에는 애써 무시하려고 하였고 회유하기도 하였으며 힘으로 누르려고 하였지만 개혁자들의 결기는 드세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제후들이 슈말칼덴동맹(1531)을 맺고 황제 카를 5세에게 항의(프로테스탄트)하였고 마침내 아우구스부르크 화의(1555) 를 통하여 자기 영지에서 종교 선택의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이 무렵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이냐시오 로욜라가 등장하여 교회 정화와 선교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예수회를 통하여 교회 개혁에 매진하였습니다. 루터와 칼뱅 등의 개혁에 대응하는 반동종교개혁입니다. 유럽과 신대륙에 선교사를 보내고 신학교를 세우며 개혁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만일 로욜라가 없었다면 로마가톨릭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루터와 로욜라는 같은 ‘개혁’을 하면서도 그 결은 달랐습니다. 문제의식은 유사했지만, 해결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앞서 개혁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얀 후스나 존 위클리프 같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역사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오랫동안 땅 밑을 흐르던 복류천이 마침내 지상으로 솟구친 것입니다. 그 정신을 이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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