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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12 추천 수 0 2021.12.01 09: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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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2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만 구하는 악한 세대인 너희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천지 창조주시요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주님이 표적만 구하는 그들에게, 요행만 이적기사만 구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의 세상 일에 대한 요행만 바라는 그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고 하신다.

 

불순종한 요나에게 하늘로부터 온 표적이 무엇이더냐?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전도를 하라. 40일만 있으면 성이 무너진다고 하라.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고 하라. 그런 심부름 좀 하고 오너라하니까 요나가 왜 내가 원수 된 그 나라에 가서 전해야 합니까?’ 하며 슬그머니 일어난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도망을 가려고 일어난 것이다.

 

교회에 가자고 하니까 도망을 가려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 오늘 바쁜 일이 있다하는 게 도망가는 마음이다. 그리고 너에 대한 구원을 좀 이루라하는 뜻으로 전도도 하고 심방도 좀 갔다 오너라하면 마음이 딴 데로 도망을 간다. ‘선약이 있는 데요하면서. 생각을 해 봐라. 하나님의 말씀순종을 제쳐놓고 뭐가 그렇게 크냐?

 

성경 구절적으로 보니까 그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일 텐데 그 사람이 아버지의 장례부터 치르고 온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까지 말렸다. ‘가지 말아라.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치우게 하라했다. 이걸 그대로 알아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의 의중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해석을 해 버리고 주님을 떠나갈 것이다. 구원을 떠나갈 것이다.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한 그 정신 사상을 다 떠나갈 것이다.

 

그런 변명을 할진대 기독교는 사람구원인데, 죽은 사람을 구원이냐,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이냐? 죽어가는 사람을 죽지 않게 살리는 구원이다.(-성화구원 면에서) 이 말을 영 주격으로 들으면서 육도 함께 따라 생각을 해야지 영직인 면은 내버리고 육의 것만 생각하면 성경해석은 틀려진다. 예수 믿는 값어치가 없어진다.

 

아닌 말로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나서 국가에서 자기를 다른 나라에 대사로 보내면서 이 소식을 전하라하니까 그 대사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죽어서 장사를 하고 오겠습니다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나라 안에 살아있는 모든 자기의 백성 형제들이 어떻게 되는 거냐? 다 죽는 것이다.

 

일단 죽은 것을 치우는 것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 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기 집 아이가 아파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죽은 시체를 치우는 게 먼저인지,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먼저인지? 아이를 병원부터 데리고 가야지 송장이 어디로 도망을 가겠느냐? 그런데 이해타산적으로 따지는 게 굉장히 어둡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는 거다.

 

사람이 어리석으면 고통을 겪고 죽는다. 살아생전에는 계속 고통 중에 살게 된다. 그건 왜 그러냐? 사람이 이해타산을 따질 줄 몰라서 그렇다. 자기 생각 마음 자기 감정대로 하니까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충성봉사만 하라고 하고 주님 좋도록만 하라는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 좋도록이 아닌 우리 좋도록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일 모레 오늘 밤 당장 자기 코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 자기는 모른다. 자기 생명을 누가 주관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욕심대로 기분대로 해 달라고 한다. 기도하는 것은 자기 뜻대로 해달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사와 뜻에 맞춰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세지말에 주님의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그 말씀 중에 자기도 들어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면 그걸 남 주겠느냐?

 

요나가 도망을 가려고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시스로 갔다. 다시스는 보물이 많은 곳이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곳에 가면 고생 안 하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이왕 도망갈 바에야 부요자가 될 수 있는 그 쪽으로 마음이 일어나서, 그 목적으로 마음이 일어나서 그리로 간다. 그러니까 도망을 가서 있으면 세월이 흐르면 하나님이 자기를 잊어버릴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인간 자기처럼 생각을 하는 거다.

 

거기 있다가 와야지하고 일어나서 바닷가로 가니까 바다가 잔잔하거든. 바람도 조용하게 그 쪽을 향해서 적당히 부니까 기분이 좋다. 그러니까 배를 타고 가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가는 중에 바람도 잘 불고 바람도 잔잔하다. 뱃사람들이 이 바람에 맞춰서 가면 다른 때보다도 몇 시간을 빨리 가겠구나하는 소리를 요나가 들을 때 소원 성취한 것 같다.

 

이 마음을 하나님이 모르실까? 다 아신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도망가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인간 너를 지었다. 그러니 왜 네 마음을 모르겠느냐? 너 한 사람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마음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시성으로 다 아신다.

 

알고 보면 이게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 자기 생각대로 사고방식대로 가고 있는데도 뭔가가 일이 잘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다. 얼마 못 가서 나 좀 살려주시오하는 소리가 나오게 돼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말을 하는데 그들의 말이 예수 믿는 자기 마음에 좋게 말을 하면 그만 안심이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말이 자기에게는 안심이 된다.

 

어쨌든 요나가 배 위에 있으면 새파란 하늘이 보이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보시는 것 같은 양심이 되니 배 밑창에 들어가서 누웠다. 얼마 동안 잠이 들었을까? 배가 흔들리기 시작을 하는데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살펴보니까 하늘은 먹물을 뿌린 것 같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파도는 그 배를 삼킬 듯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고 있다.

 

바람과 파도와 하늘의 구름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늘의 것만 그러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허락 하에 들어 있느냐? 그런데 이게 안 믿어지고 자기 눈앞의 임시적인 것만 믿어지고, 그 생각만 하고, 자기 살 생각만 들어있지 저 넘어 사건을 하나님께서 1, 2, 3차로 하고자 하시는 것은 인간들은 모른다. ‘왜 성경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느냐?’ 하는 감이라도 잡고 살아야 하는데 그걸 모른다.

 

풍랑 파도가 막 일어나니까 이제 배 안의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별의 별 생각들이 다 지나간다.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복합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간다고 한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우는 사람, 배가 흔들리니까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처박히는 사람, 정신을 잃은 사람, 또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신에게 기도를 하고, 또 멀미를 해서 토하는 사람. 누구 때문에 이렇게 다 죽게 생겼느냐? 성경은 요나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 집에서 여러 가지 일어나는 일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나 때문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성경을 염두에 두고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일괄적으로 하달되는 것은 사람구원을 위한 것이다. 일반 세상적으로 보면 자기 집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어른의 명령이 일괄적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그 명령을 거스르게 되면 가정에 문제가 온다. 교회 같으면 교회에 문제가 오기 시작한다. 사화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방세상 안 믿는 세상도 먼저 우선적으로 사람을 깨닫게 해야 한다. 깨닫지를 못하고 연장을 휘두르게 되면 다 죽는다. 사회적 이치나 국가적 이치나 가정적 이치나 교회적 이치나 이걸 알아야 한다.

 

성경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지키고 다스리고 통지하라고 하는 것은 생명과를 먹은 자에게 하는 말이요, 생명과를 먹고 그 일을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선악과 따먹은 지식의 기준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사회를 다스리고 국가를 다스리면 고통만 커진다. 원리가 그렇다. 모든 명령하달은 머리로부터 나간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깨닫고 말씀대로 바로 되는 게 예수를 바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의 이치는 못 깨닫고 교회에 다니면서 굴속에서 자꾸 벽에 붙어서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으려고 하니 사람이 안 고쳐진다. 근본적으로 자기를 고치지 못하면 평생을 너는 그 머리를 가지고 고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뱃사람들은 선원이고 선장들이니 평생을 바다에서 배를 몰고 살았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이 일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이냐? 요나 때문이다.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걸렸다.

 

가정적으로나 사회 국가적으로나 이걸 잘 봐라. 세상에는 안 믿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안 믿는 사람이 많아도 예수 믿는 사람을 주축으로 하고 모든 일들이 돼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성경에 많이 있다. 소돔 고모라를 멸할 때도 의인 몇 명만 있으면 쓸어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거기서 의인이 누구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의인들이다. ‘등불을 켜들고 예루살렘을 활보하면서 돌아봐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쓸어버리지 않겠다하는 것은 그 사람이 주축 주격자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있고, 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닌 말로 우리 궁극교회가 바로 서 있다면 빛이 있는 곳에는 주변이 그 빛의 여파를 받는다. 빛이 하나 있으면 그 쪽으로 다 따라간다. 빛은 밝힌다. ‘이건 뭐다. 이건 뭐다구별을 하고 제 자리에 놓여지는 위치를 알게 한다. 빛이 있어야 구별이 돼서 제 자리에 놓여지는 정돈 정립이 들어간다.

 

감기 균은 내 몸 밖에서 살아야 하는데 자기 몸 안에 들어와서 자기 몸을 막 찌른다. 자기가 자기 몸 안으로 이사 와서 살라고 감기 균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몸만이 아니고 자기의 사고방식에서 생각도 영의 생각이 있고 육의 생각이 있다. 영적 차원으로 생각을 하면 사람이 민감해지고 지혜롭고 슬기 있고 눈치 있고 똑똑해지고 하겠는데 늘 세상 누림성에 돈만 있으면 제일이다하고 자꾸 그리로 가면 그 머리통이 어떻게 되겠느냐?

 

요나가 제비뽑기에 걸리니까 내가 지금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가는 중이니 나를 물속에 빠뜨려 달라고 한다. 뱃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지만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지기가 부담스러워서 배를 자꾸 육지 쪽으로 몰지만 바람이 배를 자꾸 바다 쪽으로 밀어 넣는다.

 

요나가 나를 물에 던져야 바다가 잔잔해진다하는 걸 보면 그래도 요나 마음속에는 신앙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나가 나를 바다에 빠뜨리라는 말뜻은 뱃사람을 살리겠다는 뜻이냐, 아니면 내가 물에 빠져죽어도 회개를 안 하겠다그 말이냐? 뱃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살아야 한다. 이래야 좋겠는데 뱃사람들이 의논을 해서 요나를 물속에 집어던지면서 죽어도 우리를 원망하지 말아라한다.

 

요나가 물속에 떨어지자마자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다가 빠졌겠느냐, 그대로 빠졌겠느냐? 바로 빠졌을 것이다. 요나의 신앙을 볼 때 그렇다.

 

영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이라고 하는 물에 빠지는 신앙사상과, 물에 안 빠지는 신앙사상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빠지는 신앙사상과 안 빠지는 신앙사상, 믿는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사건에 빠지고, 환경에 빠지고, 사람의 말에 쉽게 빠진다.

 

파도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헤엄을 쳐서 살아나오는데 자기는 자꾸 빠져 들어간다면 나는 왜 자꾸 물에 빠질까? 옳지. 살을 빼야지하고 살을 빼면 물에 안 빠지는 거냐? 수영을 배우면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살릴 수도 있다.

 

요나가 물속에 자꾸 빠져 내려가는데 물을 먹고 눈앞이 희미해진다. 그 때 바다 속의 물고기가 요나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꼴뚜기나 멸치나 꽁치나 해삼이나 말미잘이나 모든 물고기들은 하나님의 지으심이다. 사람이 바닷물 속에서 죽으면 그런 것들이 뜯어먹게 돼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요나요, 지키고 다스리라는 뜻이 들어있는 요나인데 그런 그가 물속에 빠지니 그런 물고기들이 얼마나 비웃을까?

 

예수 믿는 자기가 사건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안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을까? ‘저게 예수 믿는 사람이란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맞았다느니하면서. 그래서 사람이 살다보면 안 아플 수는 없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자꾸 아파서 늘 병원에서 살고, 그러면서 병원에서 다른 아픈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 그게 먹힐까? 내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최소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반법칙도 지키고, 자기 건강도 자기가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가 병이 들면 유전이니하지만 믿는 우리는 유전에 붙이기보다는 예수님의 유전을 받으면 된다. 안 믿는 사람들의 지식은 그대로 적용이 되는 거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유전을 타고 받으면 안 되느냐? 예수 믿는다는 게 뭐냐? 예수님의 사고방식, 예수님의 지식, 예수님의 지혜, 예수님의 지식을 타고 나야지. 그게 예수 믿는 거지.

 

가능하면 우리가 신체적 유전도 예수님을 닮았으면 하는 거지만 그러나 그거는 마지막 날 부활 때 변화 부활로 되는 거고, 그런데 영적인 면에서 신앙지식적인 면에서 왜 자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은 그 사상적 유전을 받느냐?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걸 끊는 것이다. 법궤를 가지고 들어서니 끊어지더라. 그래서 생명적 유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적인 유전을 받아야 한다. 그런 유전을 받고, 그런 유전을 전해주고, 그 소식을 전해주고. 이게 천국복음이다. 그런데 세상의 인구가 몇 십억 명인데 이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정말 찾기 힘들겠구나. 명칭상 호칭상 목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신 사상은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는 그걸 가져라. 그 안에는 내 것이 다 들어 있다. 딴 짓하지 말아라.

 

목회를 해도 일반적인 목회상을 갖지 말아라. 그건 틀려먹었다. 일반적인 목회상은 네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남이 다 할 수 있다. 너는 그런 측에 속하지 않는다면 특수성을 가져라. 우리교회가 예수 믿는 것을 일반교인처럼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래도 세상 것이 있어야 하거든 딴 교회로 가도 된다. 심지어 이 말씀에 순종이 안 되는 자가 있다면 그냥 두면 안 된다. 그래서 온 교회 교인들에게 물이 들겠다하면 내보내기도 한다. 목사를 무서워하지 말고 말씀의 뜻을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이 물속에 빠져서 큰 고기 뱃속에서 밤낮 사흘을 있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사흘 동안 살 수가 있느냐? 워낙 물고기가 크다보니 그 안에서 운동도 하고 그랬겠느냐? 큰 고기가 새우도 삼키고 다른 고기도 삼켰을 테니까 그 뱃속에서 이런 거 저런 거 주워 먹었겠느냐? 그 큰 고기가 이따금씩 하품을 하면 하늘이 보일 테니 밥통 속에서 밖을 내다볼 수도 있었겠느냐? 또 목욕을 하고 싶으면 큰 고기가 새우를 먹으려고 바닷물을 들이마시면 요나가 그 안에서 수영도 하고 목욕도 했겠느냐? 물고기 뱃속이 따뜻할까, 차가울까? 사람의 뱃속은 따뜻한데 물고기 뱃속은 차가운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보면 참으로 신비롭다.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속에서도 안 죽는 생물도 있다고 하니 참 신비롭다. 죽 늘어뜨려서 보면 유황불 속에서도 안 죽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온다.

 

사람이 큰 고기 뱃속에서 살아서 삼일 동안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도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느냐? 그 장면 그대로 보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런데 큰 고기 뱃속은 캄캄하고 끈적거리고 고기 썩는 냄새가 나고 할 텐데 이걸 영의 눈으로 보면 고통스러운 큰 사건을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교인의 입장에서 그런 큰 사건에서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큰 사건을 만났을 때 기도를 해 봤느냐? 대부분 보면 작은 사건을 만났을 때도 자기 뜻대로 기도를 한다. 빨리 지나가게 해 달란다든지, 해결해 달란다거나 그럴 거다. 그런데 워낙 사건이 크면 해결해 달라고 하겠느냐. 하나님 앞에 막 나가겠느냐? 지금 밥이나 하루 세 끼 먹고 어김없이 배출을 하니까 그렇지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면 자기 신앙 같으면 막가파로 나가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찾겠느냐?

 

요나가 고기뱃속에서 그 고기가 삼킨 고기를 먹으면서 기도했겠느냐? 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한 것이냐? 그런데 알고 보면 이 큰 고기가 요나를 집어 삼킨 후에 제대로 먹었을까? 못 먹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 요나를 집어삼킨 후에 고기가 뱃속이 쓰리고 따갑고 하다. 왜 그럴까 상상을 해 봐라. 요나가 회개기도를 한다고 얼마나 손톱으로 고기뱃속을 긁었을까? 그러니 속이 뒤집어졌으니 고기가 먹을 수가 있겠느냐?

 

고기가 왜 이렇게 생고생을 하느냐? 누구 때문에? 요나 때문에. 요나가 참 문제다. 우리 모두 각자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각자 요나입장에서 생각을 해 봐라. ‘내가 문제로구나그렇게 들어가야 그게 회개다. 남 탓으로 돌리면 언제 그 사건 그 환경을 벗어나고 빛을 볼 수 있을까? 해를 볼 수 있을까?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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