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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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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잠깐의 틈이 주어지면 그 시간을 산책에 쓰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걷기를 통해서 기본적인 건강을 챙기게 된다.
또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무엇보다 걷는 내내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
내게 걷기는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훌륭한 수단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매주 꼭 한 번씩 북한산을 등반했다.
월요일 새벽 기도를 마치고 우이동에서 출발하여 구파발로 내려오면 아침 9시쯤 되었다.
그것이 나의 한 주간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산을 좋아했다.
산에만 가면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군생활을 북한산 자락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산이 싫은지,
북한산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ㅎㅎ
산을 자주 못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40줄에 접어들면서부터 무릎 건강이 나빠지면서부터였다.
애석하게도 고작 나이 40에 무릎이 약해진 것이다.
원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해왔던 것 때문이었다.
수십 년 간 하루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 연골이 약해진 것이었다.
20대 신학생 시절,
고대 수도사들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40대에 모두 무릎 관절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었는데 비로소 왜 그랬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처지가 되니까,
그때부터 나는 소위 '영성'과 '무릎'을 바꿨다는 말을 반 농담조로 하곤 했다.
경사진 곳을 오르고 내리는 것,
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불편해지니까 평지를 걷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부터 시간을 내서 한강 혹은 한강과 연계된 하천변을 걷는다.
걸으면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찰한다.
그 역도 동일하게 성립한다.
내게는 걷기가 영성의 모판인 셈이다.
매일 밤마다 회사 사무실에서 (여전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를 하지만,
해가 떠 있는 동안 발걸음을 옮기면서 드리는 기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걷는 내내 정신을 초집중해서 기도를 하는 것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인은,
눈앞에 '사진'을 찍을 만한 '장면'이 펼쳐졌을 때다.
선천적으로 워낙 '시각', 말 그대로 눈의 감각이 발달한 덕에,
손꼽만큼이라도 예쁜 장면이 펼쳐진 것은 감각적으로 놓치는 법이 없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내 기도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엊그제도 그랬다.
오후 늦게 강변북로 쪽 한강대교에서 동작대교쪽으로 걷다 보니 한 무리의 참새들이 노을을 배경으로 나무를 꽉 채우고 있었다.
마치 앙상한 가지에 애잔하게 남아 있는 겨울 잎새들 같은 형태였다.
기도를 멈추고,
사랑스런 눈길로 그 장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혹여 참새가 눈치채고 날아갈까봐 살포시 핸드폰을 꺼내 찰칵 한 장 찍었다.
(마음으로 카메라를 안 챙겨 나온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하며)
비록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이어서
사진이 밋밋하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한 장 간직했다.
노을,
참새,
해질녘 차가운 강바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어느 젊은 여성,
그리고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노을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한 분.
정겨운 풍경의 추억이
이 사진과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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