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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경본문 : | 요1: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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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들꽃교회 |
하나님의 자녀 (child of God)
요1:10-18
2022.1.2 들꽃교회 주일예배
전한이 최용우
1.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2.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
3.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구약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4.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신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했다.
5.예수님에게 나타난 영광은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6.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7.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1.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그러니까 ‘그의 이름을 믿는 자’는 한마디로 예수와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제 아내와 만난지 4개월만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맺은 이후 28년이나 함께 살았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뜻입니다. 작은딸이 다녔던 고등학교에 장관의 ‘딸’이 같이 다녔었는데,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그녀가 장관은 아닌데도 그녀를 항상 ‘장관’처럼 대하더라는 것입니다. 사극을 보면 왕의 아들은 왕자답게, 공주는 공주답게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냉소적으로 비칠만한 일들이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언론뉴스를 통해 재벌 자녀들의 일탈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벌 자녀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2.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요1:12) 먼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하나님’이라는 조물주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요? 대부분 다른 종교에서도 ‘절대자’의 존재를 믿습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정한수 떠 놓고 절대자인 ‘천지신명’께 빕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떤 형체가 없기에 하나님을 알고 싶어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생각과 말도 교파마다 교단마다 개인마다 다 다릅니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져보고 말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듯 말 듯 모호합니다.
대체적으로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heart), 영혼(mind), 양심(conscience), 그리고 육체, 육신(flesh) 그리고 지정의(知情意)로 알아가는 것을 ‘전인격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18)라고 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에 대해 전(도)해야 그것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앎)이 생겨서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지식’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구약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구약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약 성경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다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도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수건으로 눈을 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기록한 고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이 곧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고 여긴 겁니다. 이런 점에서 유대교의 특징은 일종의 율법 패러다임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삶 가운데 잘 적용하여 실천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안티하는 이유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성경’으로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똑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특징은 일종의 성경 패러다임입니다.
유대교인들이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이기 때문에 선택한 ‘율법 준수’는 엄청나게 철저합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구원받는다는 ‘구속사’진영의 사람들이 선택한 ‘말씀 준수’는 부끄러울 정도로 허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방법으로 선택한 ‘율법 준수’를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또 아무리 성경 말씀을 따라 철저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4.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신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신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생각을 완전히 바꿔서 유대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성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있고 ‘성경을 믿는 기독교’가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는 예수님도 성경을 믿어야 진짜 예수라고 할 만큼 성경에 집착합니다.
우리는 이성의 눈이나, 이해력의 눈이나, 지혜의 눈이나, 성경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주 안에 드러나 있는 지혜를 바탕으로 일종의 추론을 통해서 그것을 만드신 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물체에서 눈이 보는 것은 그것을 만든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솜씨를 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조계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만든 창조주가 아니라 그분의 지혜를 보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들에게 회자된 것은 당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세례 요한의 공이 큽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1:15)그 순간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에게로 쏠렸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14:9)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5.예수님에게 나타난 영광은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개정개역 성경은 번역이 좀 애매모호하지요?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알 수 없지만,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나 그 당시의 사람들은 직접 예수님을 보면서 “아이고, 진짜 저 사람이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이다. 저분을 보니 하나님을 뵈온 것 같다”라고 할 만큼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능력은 사랑이기도 하고 대자대비이기도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똑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본성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을 알려주셨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자신 있게 증언한 것입니다.(요1:12) 그리고 지난 2천년간 수 많은 사람들이, 또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그것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보았던 ‘하나님의 실존’을 오늘날 우리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역사하여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6.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것을 본 것입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은혜란 신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방법이다. 즉, 은혜란 단지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은총일 뿐 아니라 신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적이며 지속적인 거룩한 영향력을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은혜는 한번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고 성숙시키는 방법이며 수단으로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나 금이 비싼 이유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도 그 성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인 이유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에게서 그것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공약(公約)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진리’라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라고 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경험했던 ‘은혜와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을 오늘날 우리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은혜와 진리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7.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특권, 권위, 능력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앞세운 채 거들먹거려도 되나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허풍을 떨어도 되나요? 심지어 부자가 되었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정말 다 그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인생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권세, 특권이란 무엇일까요?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만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쁜 세상사에 산만해질대로 산만해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만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그저 막연합니다. 목회자들도 분주한 목회 일정에 치여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합니다.
서해안에 있는 어느 ‘천주교 성지’에 간 적이 있었는데, 12시가 되자 어디선가 나타나 성소 안에서 홀로 오랫동안 기도를 하던 늙은 수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관광지라서 한 바퀴 다 돌고 올 때까지도 같은 자세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참 거룩해 보이고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영적 촉수를 맞출 때만 나오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참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동(會同)하셔서 만나주시는 삶을 간절히 사모하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권세를 올해는 꼭 경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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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정용섭 2022년 1월2일 설교<하나님을 본 사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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