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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요한복음 10:22~42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오롯이 살아내기 위하여 애쓰는 하늘 백성 위에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수전절(하누카)입니다. 구약성경에 없는 절기입니다. 수전절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난 후 헬라제국의 하나였던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동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주전 164년에 유다 마카비가 군대를 일으켜 시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였습니다(외경 마카비상 4:52~59, 마카비하 10:5). 이때가 유대력으로 9월(11~12월)인데 유대인들은 이날을 기려 여드레 동안 가지가 여덟인 촛대에 하루에 하나씩 불을 밝혀 그 의미를 기념하였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절기를 ‘빛의 절기’로 불렀습니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드로스는 소아시아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 서부와 이집트까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거대한 왕국으로 확장하면서도 그는 정복지의 문화와 종교를 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문화에 오리엔트 문명이 융합하여 헬레니즘의 융성을 가져와 세계 문명의 중심축이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땅에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만들어 헬레니즘의 구심점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난 후 나라는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와 이집트로 나뉘었습니다. 특히 시리아의 셀레우코스왕조는 소아시아 중남부와 시리아와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유대에 이르는 큰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그들은 헬레니즘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앞서 고대 근동을 다스렸던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와는 달리 문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피지배 민족과 충돌이 잦았습니다. 특히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에 헬라 문화를 강제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욕보였습니다. 이에 분개한 유대인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우므로 유대 지배력을 상실하였고 결국 소왕국으로 전락하여 주후 1세기에 로마에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에 수도를 정하고 이집트 신전을 건축하고, 왕은 고대 파라오의 복식과 근친혼을 하는 등 이집트 원주민과 친밀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시리아와의 잦은 전쟁, 그리고 이집트 원주민과의 부조화를 이룬 정치, 쇠락해가는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은 계속 번성하여 로마 시대까지 이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인류 문화사에 커다란 일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구약성경의 헬라어역인 <칠십인경>이 완성되었습니다. 헬레니즘의 품에서 히브리즘이 부화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역사상 최대의 도서관 무세이온(Musaeon)이 세워졌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사해동포사상이 실현되는 도시였습니다.
하나님, 세속문화를 맹목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취할 것과 극복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있기를 간구합니다.
댓글 '1'
Ki-deok Nam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보고 시대를 보고 역사를 보는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봅니다.
김용규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 공부를 해야하는가?'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아리우스 논쟁으로 만들어진 니케아 신조가 기독교 신학이 시대의 인문학인 플라톤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어떻게 해소했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여기서 분명히 하는것은 신약성서의 정경화, 신앙고백의 확정, 교회 제도의 확립 등 정통 신학이 흔들리지 않는 초석을 다진 초기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기독교 신학은 시대마다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는 인문학을 배척하기보다 끌어안아 거기서 생기는 부작용은 부단히 극복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성장해왔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이 지닌 강점이다. 신학은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할 뿐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도 교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수천년전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뜻했는가 하는것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줄수록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시대의 인문학을 도외시하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나비님의 글은 늘 생각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좋습니다.
김용규는 그의 책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 공부를 해야하는가?'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아리우스 논쟁으로 만들어진 니케아 신조가 기독교 신학이 시대의 인문학인 플라톤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어떻게 해소했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여기서 분명히 하는것은 신약성서의 정경화, 신앙고백의 확정, 교회 제도의 확립 등 정통 신학이 흔들리지 않는 초석을 다진 초기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기독교 신학은 시대마다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는 인문학을 배척하기보다 끌어안아 거기서 생기는 부작용은 부단히 극복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며 성장해왔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이 지닌 강점이다. 신학은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할 뿐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도 교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수천년전 가나안 땅에서 무엇을 뜻했는가 하는것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줄수록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시대의 인문학을 도외시하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나비님의 글은 늘 생각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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