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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낯섬]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기복 신앙
- 번영 신학
- 냉전 이데올로기, 혐오와 배제의 문화
- 신분제 질서
등등
많은 것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50년이 넘게 한국 개신교 안에서 생활해오면서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익숙하다.
익숙한 만큼 그 실체를 잘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들과 계속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그것들을 극복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의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55년 째 한국 개신교의 일원으로 살면서 시간이 갈수록 나를 더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 개신교 안에 널리 똬리를 틀고 있는 '추상화' 혹은 '관념화' 현상이다.
소위 은혜로운 말, 감동적인 글을 빙자해서 마치 구름 위 비단길을 걷는 듯한 추상적인 말들의 잔치에, 시간이 갈수록 신물을 느끼고, 절망하며, 분노하는 것이 요즘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소위 한국교회의 설교 잘 한다는 이들의 말을 도저히 못 듣겠다.
글 잘 쓴다는 신학자들의 글에 헛구역질이 난다.
책 좀 읽고, 책 좀 쓴다는 이들의 페북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교양 있는 척,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을 의도로 내놓는 말과 글의 밥상에서 정작 나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을 찾지 못하겠다.
갈수록 한쪽에서는 저질화 되어 가는 한국 개신교와,
다른 한쪽에서는 갈수록 추상화-관념화 되어 가는 한국 개신교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고 암담하다.
이런 개신교의 모습이, 나는 낯설기 그지 없다.
기복과 번영의 옷을 입고 저질화 된 개신교의 오래 된 모습은 그렇다 쳐도,
왜 한국 개신교는 갈수록 추상화-관념화 되어 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상상하고 따져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현실의 '악'과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악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데 반해, 그 악을 피해 도망쳐야 하고 그 악의 피해자가 되고는 싶지 않고, 그렇다고 비겁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보니 자기들 만의 추상적 세계로 도피하고 그곳에서 교양 있는 척 하며 자기 안위를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개신교는 자기들만의 영지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영지주의적 한국 개신교가 나는 너무 낯설고, 슬프고, 절망스럽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 오셔서, 구체적으로 아픈 사람을 고쳐주시고, 구체적으로 귀신들린 사람을 깨끗게 해주셨고, 구체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구체적인 악을 통렬하게 꾸짖으셨는데, 왜 우리는 그 구체성(물질성, 역사성)을 상실하고 구름 위로 도망하고 있는 것일까?
왜, 왜?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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