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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2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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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20-02-10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
2020-02-10
나는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노라
-박옥경.신락선 장로의 은퇴에-
요4:27-38
오늘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막 대화를 마친 다음부터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 스승만 계시게 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서 돌아와 보니 낯선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이면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사마리아인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묻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급히 돌아가고 제자들과 예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됩니다.
스승이 시장한 것을 알고 음식을 구하러 간 제자들이기에 당연히 예수님이 자기들이 구해온 음식을 잡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스승님 이것 좀 드세요” 그랬더니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이러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나보다고 서로 말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아까 그 사마리아 여인을 연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방금 자신의 말에 대해 “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34)이라고 풀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승과 제자들의 대화치고는 동문서답 꼴이 된 이 상황은 무엇을 제시하는 걸까요? 예수님은 과연 여기서 뭘 말 하시려는가 하는 거죠. 사실 복음서를 읽으면 제자들은 스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비유를 듣고서 그 설명을 따로 청해서 들으려 합니다. 예수는 여러 번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스승과 어긋나 있는 것은 그들의 의식이 아직 스승을 따라오지 못한 까닭입니다. 베드로가 “당신은 그리스도십니다”라는 멋진 고백을 하긴 했지만, 그가 말한 ‘그리스도’의 의미는 십자가에 고난을 받다가 죽는 그런 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되는 의미의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것인데,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이 꾸짖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베드로를 꾸짖자 베드로도 마치 스승처럼 예수님을 꾸짖습니다. 그건 자기가 원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수난 행진 속에서 누가 높으냐고 다투고, 요한과 야고보는 권력의 자리를 청탁했으니 말입니다. 가롯 유다는 스승을 은 30에 팔고, 베드로는 닭 울기 전 3번이나 스승을 부인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 곁에는 그렇게 충성을 고백하며 열렬하게 따르던 제자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만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2천 년의 교회 역사도 제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긴 설명 대신에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작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 형 이반이 동생 알료사에게 자작 극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제는 대심문관 입니다. 때는 15세기, 세비아 광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00명의 이단자들이 화형을 당합니다. 국왕, 추기경, 각료,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한꺼번에 화형을 당합니다. 바로 그 이튿날 15세기 전 3년간 땅에서 사신 때의 인간 모습으로 예수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는 살그머니 나타났으나 민중은 그분이 누구인지를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는 15세기 전처럼 민중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중과는 달리 90세의 대 심문관인 추기경이 예수를 체포합니다. 아이러니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추기경이 예수를 심문합니다. 추기경이 예수에게 한 말을 잘 들어 보세요.
“도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방해하러 왔소? 우리의 친구는 당신이 아니라 악마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버리고 악마와 한패가 되었소. 옛날에 당신이 거부했던 것을 우리는 그 악마로부터 받았소.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일을 방해하러 왔기에 나는 당신을 내일 화형에 처할 것이오.”
소설 속에서 대 심문관이 예수를 화형에 처형하려는 것처럼, 놀랍게도 그동안 교회가 예수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자행했다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와 상관없는 종교적 행위들이 예수와 복음의 이름으로 자행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때로 비 복음적(예수와 상관없는)인 것일수록 더 화려하게 예수적인 것으로 치장하고 나타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그 존재 양식의 가치와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사는 이유는 밥, 즉 자기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일’이라는 게 뭘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걸 예수님이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너희도 밥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본문 34절에 제자들이 구해온 빵 봉지를 앞에 두고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럼 ‘보내신 이의 뜻’이 뭘까요? 하나님의 뜻은 지금 말씀하고 있는 그의 주변에서 찾으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마리아’라는 지역과 ‘사마리아 인’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자들이 그토록 꺼리는 사마리아 지역과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 사람과 사람 사이, 지역과 지역을 차등하는 오랜 금기를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금기를 깨뜨림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어떤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배제하지 말아야 함을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방금 사마리아 지역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는 행위로 그 금기의 선을 넘으신 다음에 하신다는 말이 ‘나의 양식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였던 것입니다.
이러면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그까짓 거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가서 여자 하나 만나 대화하는 일이 뭐 그리 대순가 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주 말씀을 드린 바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마리아 지역과 사마리아 사람들을 깔보고 사마리아 지역을 천한 곳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벌레 같은 인간 이하로 취급하게 된 것은 BC580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바벨론에 이스라엘이 쑥대밭이 되도록 망하고 엘리트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 이스라엘에는 그야말로 무지랭이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탄압에 물 한 동이,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도 매일 무너진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서 울며 기도하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렇게 50년 길게는 70년을 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가 잡혀간 엘리트들은 그사이에 바벨론화 되어 주류세력으로 진입을 하기도 하고, 많은 재산은 축적하게도 되었습니다. 포로였지만 자유로운 삶과 경제활동이 보장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은 자와 끌려간 자의 삶이 극명하게 갈리게 된 즈음, 바벨론은 다시 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망하게 됩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의 외교전략과는 달라서 포로로 잡아 왔던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합니다. 이때가 포로로 잡혀간지 50년도 더 지난 때였습니다. 그들이 억지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려고 하자 예루살렘을 지키고 살았던 그 무지랭이 같은 사마리아 백성들이 ‘우리도 새로운 성전을 재건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지랭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 “너희들은 이스라엘의 혈통을 이방인과 섞었으므로 거룩한 이스라엘의 성사에 낄 수 없다”고 거절을 합니다. 귀환한 엘리트들은 이를 견고하게 하려고 소위 ‘분리주의’를 정책화합니다. 그것이 ‘사마리아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심한 차별과 배제가 이스라엘과 사마리아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500년 동안 내려온, 그래서 진리처럼 굳어져 있던 사고였고 인식이었습니다. 엄청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금기였습니다. 그 500년 된 의식과 제도와 관습과 고착을 방금 예수님이 ‘탈’, ‘월장’ 하신 겁니다.
이러고 나서 제자들이 구해온 육신을 위한 빵, 예수님이 말하는 ‘그 양반만의 양식 곧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35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추수는 추수 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직 추수가 4개월이나 남았으니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방금 내가 추수를 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지 않았느냐? 사마리아 여자를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이런 지경을 만든 오랜 전통이나 그것을 내가 월장함으로 뭉개버렸으니 우리가 다 기뻐해야 할 일이다. 즉, 나처럼 경계를 짓고, 차별을 두고, 사람을 짐승으로 폄훼하는 그릇된 짓을 멈춰야 한다. 평등한 세상, 평등한 인간세계로의 실행이 바로 하나님의 뜻(일) 곧 하나님의 정의다.”
37절은 이런 겁니다.
“그걸 내가 씨 뿌리는 것처럼 실행했고, 그걸 위해 사는 게 나의 양식이니 너희도 나처럼 그걸 삶으로 가치로 여겨야 하고, 그걸 존재 양식으로 삼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38절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500년 된 금기를 깨뜨리는 위험을 제자들은 감행하지 못했습니다. 노력하지도 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 예수가 500년 된 못된 관습과 의식의 장벽을 허물어 버렸으니 너희는 쉽게(노력하지 않고 거두기만 하는), 내가 사는 것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두 분 장로님의 은퇴를 기리는 시간에 이 본문을 기둥으로 삼은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박 장로님은 저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 하셨습니다. 신 장로님은 기막힌 사연을 갖고 늦게 저의 목회에 동참하셨습니다. 저는 두 분이 성암교회에 머무른 시간의 짧고 긴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제가 두 분 장로님을 흡족해하고 고마워하는 까닭은 바로, 저의 목회 중심인 ‘노력하지 않고 예수가 뿌린 그 경계 없음의 삶에 같은 의식으로 동참하고 응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를 아는 이들이 말하기를 ‘조선 땅에서, 감리교 역사 가운데 제일 자유롭게 목회한 행복한 목사’라고 합니다. 그 말을 제가 인정하든 안 하든 사람들은 그렇게 저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런 목회를, 그런 삶을, 그런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중심과 의도와 삶의 방향을 아는 장로들과 교우들’덕분이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러시지만 두 분 장로님도 저의 모든 것을, 속내까지도 아시는 분들이십니다. 다소 그 방법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 해도 그 의미를 관통하고 ‘배고프실 텐데 밥 드시지요’하는 어리석은 예수의 제자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예수처럼 ‘난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던 에수님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걸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두 분 장로님은 넘을 수 없는 사마리아 땅을 넘으려는 담임목사를 이해했고, 제도와 관습의 금기를 무력화하려는 서툰 목회에 동행해 주셨습니다. 사귈 수 없는 ‘사마리아 여인과’대화하는 목사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일’ 또는 ‘하나님의 정의’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장로님, 교우들이 있기에 저의 존재, 제 목회도 가능했습니다. 이렇고 원고를 쓰고 보니 마치 저의 은퇴 고별 설교 같습니다.
두 분 장로님의 봉사와 헌신에 저와 교회는 고마움을 씨앗처럼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 장로님이 예수처럼 그릇된 담장을 타 넘어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려 했듯이 우리도 그런 신앙 전통을 키워 가겠습니다.
Longfellow의 ‘화살의 노래’를 두 분 장로님의 가슴에 심습니다.
나는 공중을 향하여 한 화살을 쏘았노라.
그 날음이 너무 빨라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네
나는 공중을 향하여 한 노래를 불렀노라.
그 날음이 너무 빨라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네
그러나 먼 훗날 나는 그 화살이 느티나무에 꽂힌 것을 보았네
그리고 내가 부른 노래를 처음부터 친구의 가슴에서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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