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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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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익환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www.telavivchurch.org |
2018년 4월 28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다니엘서 10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Attitude of the saints waiting for the end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단 12:13)
“But go your way till the end. And you shall rest and shall stand in your allotted place at the end of the days.” (Daniel 12:13)
황지우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I will introduce a poem by Hwang Ji-woo, a Korean famous poet.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While waiting for you
by Hwang Ji Woo
In the place you decided to come
While I am waiting for you
All the upcoming footprints
bangs my heart
All the rustling leaves come to me
Anyone who ever used to wait knows what it is
Is there any other exciting and painful experience in this world than ‘waiting’?
At the place you were supposed to come to,
At the place where I’m waiting in advance,
Everyone who opens the door and comes in,
It was you
It was you, it was maybe you
but the door closes again.
My beloved
Waiting for you not to come
Finally, I go to you
From far away I go to you
and after so many years you are coming now.
It is very far away, but now you are coming slowly
I am going while I’m waiting for you.
Through the door opened by others,
Following all the footsteps in my heart
I am going to you while waiting for you.
기다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다림은 사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Waiting is not that difficult. Waiting is actually exciting experience. 그러나 그 기다림이 어려워지며 고통으로 바뀌는 때가 있다. However, there are times when the waiting becomes harder and turn it into pain. 그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모를 때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Waiting becomes a pain when we don’t know when it will end. 우리가 ‘언제까지 입니까?’라고 질문할 때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Waiting becomes a pain when we ask, ‘How long is it?’
어제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Yesterday, there was a historic summit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n leaders. 오랜 고통이었던 기다림이 다시 설레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It is the moment when waiting, which was a long suffering, is changed as an expectation again. 하나님께서 이 정상회담을 통해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I pray that God will work through this summit.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마지막 장을 살펴볼 것이다. Today we will look at the final chapter of Daniel. 이 장에서 다니엘은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듣는다. Here in this chapter Daniel listens to the command: ‘Go and wait for the end.’ 우리는 이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것이 다니엘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We want to examine what it means to Daniel to wait for the end.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맞게 된다. All of us here face the end of death someday. 그러나 그 죽음 너머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의 마지막 역시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But beyond the death, we will face the end of the world when the Lord comes again.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Through today’s Word we will try to think about what it means to us to wait for the end.
다니엘서 12장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다니엘서 10장, 11장에 이어지는 환상이다. Daniel chapter 12 is a vision that follows Daniel chapter 10 and 11. 그것은 주전 536년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환상이다. It is the vision that Daniel saw in 536 BC from the river of the Tigris. 다니엘은 한 예언을 천사에게서 듣는다. Daniel hears a prophecy from an angel. 그것은 한 북방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성전에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It is a prophecy that a northern king will invade Israel and ban the regular burnt offering and set up the abomination that makes desolate the temple. 그 일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북방왕을 통해 주전 170년 역사적으로 이루어진다. Such thing is done in history in 170 BC through Antiochus IV Epiphanes, the northern king as we examined last week.
다니엘서 12장 1절은 북방왕의 침략과 함께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Daniel 12:1 explains the situation that occurs with the invasion of the northern king. 단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Daniel 12:1: “At that time shall arise Michael, the great prince who has charge of your people. And there shall be a time of trouble, such as never has been since there was a nation till that time. But at that time your people shall be delivered, everyone whose name shall be found written in the book. 유대 민족에게 환난이 있게 된다는 말이다. It means that there will be a time of trouble to the Jewish people. 그 때 유대민족을 호위하는 미가엘 천사가 하늘의 천사들을 소집하여 일어날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그 환난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At that time, the angel Michael who has charged of the Jewish people will arise with other angels in heaven, and people recorded in the book of the life of God will be saved during the tribulation.
2절은 부활신앙에 대해서 언급한다. Verse 2 refers to the faith of resurrection.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Daniel 12:2: “And many of those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sha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and some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이것은 민족적인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부활에 관한 것이다. This is not about ethnic resurrection, but about individual resurrection.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생을 주실 것이다. There will be some people who will die during the tribulation while keeping their faith. But God will raise them from the dead and give them eternal life. 반면, 환난가운데서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On the other hand, there will be other people who give up their faith and compromise with the world during the tribulation. 그들은 환난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They may be able to survive during the tribulation. But when they stand before God, they will live with eternal shame after the judgement.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does not end in this world. 그 심판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내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The judgment is connected to the eternity that we will live forever.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목숨을 걸고서라도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There is a reason why it is important to keep our faith in our lives while we are living in this world.
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Daniel 12:3, And those who are wise sha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sky above; and those who turn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ever and ever. 지혜 있는 자는 똑똑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많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한 사람을 말한다. A wise person is not talking about a smart person. It refers to a person who kept faith in tribulation and led many people to the path of righteousness. 그런 사람에게는 하늘의 스타가 되는 영원한 상급이 주어진다. Such a person is given the eternal reward of becoming a star in heaven.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Daniel 12:4, “But you, Daniel, shut up the words and seal the book,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shall run to and fro, and knowledge shall increase.” 자, 왜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했을까? Why did the angel say to Daniel, ‘Shut up the words and seal the book?’ 이 말은 다니엘이 들은 예언의 말씀을 비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의미였다면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This does not mean that the prophecy that was given to Daniel should be kept in secret. If that was the case, the book of Daniel would not have been recorded to us. ‘봉함하라’는 히브리 단어는 ‘하탐’이다. ‘글을 봉투에 넣고 인을 치다’라는 의미다. The word ‘seal’ is ‘hatam’ in Hebrew. It means ‘to put a letter in an envelope and to stamp on it’. 고대 근동에서 ‘글을 봉함하라’는 표현은 그 내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의미이다. The expression “seal the book” in the ancient Near East means that the contents have been officially recognized and can never be changed. 따라서 글을 봉함한 이유는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잘 보존하라는 의미다. Therefore, the reason for ‘sealing the book’ means to preserve the prophecy until it is fulfilled.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치신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In other words, the word of God’s prophecy is surely fulfilled at the appointed time of God.
이어서 다니엘은 환상 중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Then Daniel listens to the conversation of the two in the vision. 강 이쪽에 있는 사람이 강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한다: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입니까? (6절)” A person on this bank of the stream asks the person on that bank of the stream: “How long shall it be till the end of these wonders?” 답이 들려온다.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7절)” The answer is heard: “It would be for a time, times, and half a time, and that when the shattering of the power of the holy people comes to an end all these things would be finished.”
이 대화를 들은 다니엘은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 Daniel heard the conversation, but he did not understand it. 사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Actually, it is something anyone cannot understand. 그래서 다니엘은 질문한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So Daniel asks: “O my lord, what shall be the outcome of these things?” 다니엘은 그 끝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자신의 민족이 언제까지 그러한 환난가운데 있어야하는지 그는 궁금했다. Daniel wanted to know what the end was. He wondered for how long his people should be in such trouble.
강 저편에 있던 사람이 답한다. The person on that bank of the stream answers: 단 12:9-10,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Daniel 12:9-10, “He said, “Go your way, Daniel, for the words are shut up and sealed until the time of the end. [10] Many shall purify themselves and make themselves white and be refined, but the wicked shall act wickedly. And none of the wicked shall understand, but those who are wise shall understand.”
그는 환난이 언제 끝난다고 바로 답을 주지 않는다. 먼저 그는 환난가운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한다. He does not give an answer when the tribulation is over. First, he explains how people react in times of tribulation.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환난이 올 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We can see through this statement that when tribulation comes, we, human beings, are divided into two kinds of people. 먼저는 환난이 올 때 환난을 연단의 시기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First, when tribulation comes, there are people who regard tribulation as a period of discipline. 그들은 고통의 때에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한다. They reflect and repent themselves, so that they purify themselves in times of suffering. 반면 환난이 올 때 악과 타협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On the other hand, when tribulation comes, there are people who compromise with evil and do evil. 그러나 악한 자는 그 환난의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오직 지혜 있는 자가 그 환난의 이유를 깨닫는 것이다. But the wicked do not understand the reason of the tribulation. Only the wise understand the reason of the tribulation.
단 12:11-12,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Daniel 12:11-12, “And from the time that the regular burnt offering is taken away and the abomination that makes desolate is set up, there shall be 1,290 days. [12] Blessed is he who waits and arrives at the 1,335 days.”
여기서 천이백구십 일은 삼년 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Here, 1,290 days is equivalent to three and a half years. 7절에 ‘한 때 두 때 반 때’는 합치면 삼년 반이다. In verse 7, a time, times, and half a time’ are three and a half years.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성전에 세운 지 삼년 반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Do you know what happened in three and a half years after Antiochus IV Epiphanes built the abomination of destruction in the temple? 주전 164년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용감하게 일어나 저항했고, 안티오커스 4세를 물리치며 성전을 다시 탈환한 것이다. In 164 BC, the people who knew their God bravely rose up and resisted Antiochus IV and recaptured the temple.
이 사건은 고난과 박해를 견디며, 그 마지막을 기다리며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의 원형이 되는 사건이었다. This event was a prototype for the saints who endure suffering and persecution and wait for the end. 그래서 사도 요한은 로마 박해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다니엘의 언어를 사용하며 계시를 전한다. So the Apostle John uses the language of Daniel to convey the revelation to the saints who live in the age of Roman persecution.
계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Revelation 12:7-9, “Now war arose in heaven, Michael and his angels fighting against the dragon. And the dragon and his angels fought back, but he was defeated and there was no longer any place for them in heaven. And the great dragon was thrown dow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called the devil and Satan, the deceiver of the whole world—he was thrown down to the earth, and his angels were thrown down with him.”
여기서도 미가엘이 나온다. 하늘의 전쟁이 벌어진다. Here too, Michael appears. There is a war in heaven. 천사장인 미가엘은 다른 천사들을 동원하여 용과 싸운다. Michael, an archangel, fights the dragon with other angels. 용은 옛 뱀 마귀 사탄이다. The dragon is the ancient serpent, who is called the devil and Satan. 용은 하늘의 전쟁에서 패해 땅으로 내쫓긴다. The dragon is defeated in the war of heaven and is thrown down to the earth. 하늘의 전쟁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 지상에서의 전쟁이 펼쳐진다. The war in heaven was not the end. Now the war on the earth is unfolding. 이 전쟁은 누가 싸우는가? Who is fighting in this battle? 성도들이다. 우리들이다. 우리가 싸우는 자들인 것이다. It is saints. We are the ones who fight.
계 12:10-11,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Revelation 12:10-11, “And I heard a loud voice in heaven, saying, “Now the salvation and the power and the kingdom of our God and the authority of his Christ have come, for the accuser of our brothers has been thrown down, who accuses them day and night before our God. And they have conquered him by the blood of the Lamb and by the word of their testimony, for they loved not their lives even unto death.”
사탄은 우리를 참소함으로 공격한다. Satan attacks us with accusation. 이간과 비방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허물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 He is trying to break down the body of Christ and to destroy the church through reproach and slander. 사탄은 그렇게 싸움을 건다. Satan is trying to fight us like that. 그러나 성도인 우리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탄의 참소를 이긴다. But we, the saints, win the Satan’s accusation with the blood of the Lamb, Jesus Christ.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For the blood of the Lamb testifies that we are righteous before God. 그래서 이 사실을 믿는 성도는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 So the saints who believes this fact does not spare their lives until they die.
계 12:13-14,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Revelation 12:13-14, “And when the dragon saw that he had been thrown down to the earth, he pursued the woman who had given birth to the male child. But the woman was given the two wings of the great eagle so that she might fly from the serpent into the wilderness, to the place where she is to be nourished for a time, and times, and half a time.”
여기서도 한 때 두 때 반 때의 시간이 나온다. Once again, here we find the expression ‘for a time, and times, and half a time.”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의 때에 연단 받으며 그 환난을 견뎌내는 시간이다. This is the time when the people of God will be disciplined at the time of trouble and endure the tribulation.
계 13:8-9,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Revelation 13:8-9, “and all who dwell on earth will worship it, everyone whose name has not been written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that was slain. If anyone has an ear, let him hear”
여러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확신하는가? Are you confident that your name is recorded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This is a very important issue. 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환난이 올 때 세상의 권력을 가진 짐승의 세력에게 반드시 절하고 만다. Those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shall bow to the forces of the beasts of the world when the tribulation comes. 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그 환난을 인내로 견딘다. On the contrary, the saints whose names are written in the book of life endure the tribulation with patience.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Revelation 14:12, “Here is a call for the endurance of the saints, those who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their faith in Jesus.” 그들은 생명의 위협이 와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인 것이다. They are those who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keep their faith in Jesus even with the threat of life.
다니엘서의 결론은 이렇다. Here is the conclusion of Daniel. 단 12: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Daniel 12:13, “But go your way till the end. And you shall rest and shall stand in your allotted place at the end of the days.”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It is to wait until the end. 그런데 이 구절은 히브리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But we need to look at this verse through the Hebrew text.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원어로 ‘아타 레카 레케츠’ (אתה לך לקץ)다. ‘You go and wait for the end’ is ‘Ata leka reketsu’ (אתה לך לקץ) in Hebrew. 직역하면 ‘너는 마지막(케츠)까지 걸어가라’이다. The direct translation is ‘Walk till the end (ketsu)’. ‘걷다’라는 동사에는 ‘너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가 있다. The word ‘walk’ means ‘go your own way’. 이 말은 그 환난의 마지막이 있을 것을 기다리면서 다니엘이 감당해야 할 삶의 길로 달려가라는 뜻이다. This means to wait for the end of the tribulation and run to the path of life that Daniel must bear.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는 원어로 ‘타누아흐 베타아마드 레그랄네카 레카츠 하야민’이다. ‘You shall rest in peace and shall have your share at the end of the days’ is ‘Tanuach Betaamad Regalneka Rekatsu Hayamin’ in Hebrew.
직역하면 ‘너는 쉴 것이고, 그 날들의 마지막에 네 몫에 설 것이다’이다. The direct translation is like this: “you shall rest and shall stand in your lot at the end of the days.” 한글 번역에서는 ‘아마드’ ‘서게 된다’는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Korean translation omitted the meaning of the verb ‘to stand’. 다니엘의 삶이 다하고 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There will be a time when Daniel’s life ends and he stands before God. 그 때 다니엘이 살아온 삶에 대한 몫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At that time Daniel is given a share of the life he has lived.
요한계시록도 같은 맥락의 말을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전한다. Revelation tells the saints who is waiting for the end in the similar manner.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Revelation 14:13, “And I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ing, “Write this: 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from now on.” “Blessed indeed,” says the Spirit, “that they may rest from their labors, for their deeds follow them!”
우리는 이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We must live bearing in mind with this end. 이 마지막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We have to live waiting for this end. 종말이 가까왔으니 세상과 단절하고 주님의 재림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We should not be disconnected from the world and only wait for the Lord’s return because of the nearness of the end. 우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We must walk continually on the path of life given to us till the end.
오늘날 현대인들은 세상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늘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Modern people today seem to be not interested in the end of the world because there are too many things to enjoy today. 그들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생각이 없이 사는 것 같다. They seem to live without thinking that they will someday stand before God.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라면 우리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But if we are people who know God, we have to think about how we will stand before God on the last day.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삶으로 지켜내야 한다. We must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in our lives in a time when many people are even doing bad things for success. 많은 사람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쉽게 무릎 꿇는 시대에 우리는 변함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 In a time when many people kneel down before those who have the power of the world, we must constantly live as faithful people who believe in Jesus as our Lord and Savior.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 마지막이 두렵지 않다. Those who know that there is a final God appointed are not afraid of the end. 그들은 인생의 종말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They are not afraid of even death, the end of life. 그들은 인생의 모든 수고를 다할 때까지 구원의 확신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They can enjoy peace in the assurance of salvation until they have done all their life’s work.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오늘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And until they reach the end, they walk continually on the way of life given to them today. 이것이 다니엘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이다. This is the attitude of the saints waiting for the end that God wants to speak us through the book of Daniel.
그 마지막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주목하는 것이다. Knowing that there is the end, we are paying attention to the day given to us. 세상이 악해질수록, 분열과 전쟁으로 소란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The more the world is wicked, the more we are divided by divisions and wars, the more we must fulfill our responsibilities that God has given in our daily lives. 바라기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우리 시대에 있는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I bless in the name of Jesus that all of us here can stand as the people of the Lord who overcome the Antichrist in our day and are faithful to Go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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