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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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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위한 변명]
1. 어느 신학생이 나를 향해 '어용 목사'라고 비판 댓글을 달았다.
신학생들 사이에서 많이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2.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아예 한술 더 떠서 나보고 전광훈 같은 목사가 되었다고까지 비판을 했다.
그 댓글을 보고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려고 했으나 그래도 나 자신을 위한 변명 한 마디쯤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 이 글을 쓴다.
3. '어용 목사'란 표현은 나 자신도 사석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니 아주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나를 가리켜 '어용 목사'라고 곧잘 표현한다.
물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서 내뱉는 표현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권력을 향해 매섭게 비판의 칼을 휘둘렀고 실제 저항의 현장에 서기도 했다.
그때는 일종의 '예언자' 이미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입장이 바뀌었다.
일종의 공수가 교대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불만도 많고, 실제로 사석에서는 누구보다 심한 비판을 조목조목 잘 하였으나, 온라인상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소위 적폐 세력이라 불리는 거대 집단이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를 심하게 비판했다가 오히려 과거 기득권 세력에게 빌미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답답한 심정을 내 스스로 "어쩌다 어용 목사가 되어버렸다"는 말로 자조하곤 했다.
그러니 나보고 '어용 목사'라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겸허히 그 비판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4. 나는 정치란 것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치를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일견 근사해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정치란 멋진 말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질곡의 현실에서 반발자욱씩 간신히 전진하는 것이다.
특히 친일-군사독재의 뿌리들이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이번 대선에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며 양비론을 펼치는, 스스로는 가장 진보적이고 도덕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실제로는 윤석열 당선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줄곧 비판했던 이유도 여기 있다.
혼자 고고하고 멋 있는 정치적 스탠스는, 그러나 다수에게 별 도움이 못 된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5. 헌데 내가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보고 신학생들 사이에서 어용 목사로 찍혔다는 댓글을 남긴 이의 프로필을 보니 교단이 '고신'이다.
고신이라?
나는 고신 교단에도 지인들이 다수 있다.
페북 친구도 꽤 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고신 교단은 내게는 불쾌하고 참담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고신과 합동 두 교단이 그렇다.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김요한'이란 이름 옆에 '이단성 조사'란 글귀가 따라 붙는 기사들이 여럿 있다.
이게 고신과 합동 교단이 내게 한 짓이다.
내가 진짜 이단이어서도 아니고, 이단성이 있어서도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과 안 맞는다고 그 교단의 극소수 목사들이 내게 이단 딱지를 붙여 생매장을 시키려고 한 짓이다.
구체적으로 이명박- 박근혜를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했던 자들이 한 짓이다.
그래놓고 최종 결론을 짓기를, 이단은 아닌데 그럼에도 위험하니 교류는 금함(고신), 이단은 아니지만 경고함(합동), 이렇게 외부에 발표를 했다.
그걸 또 소위 기독 언론사라고 하는 곳에서 기사로 내보냈다.
그 결과, 내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지금도 '이단'이란 단어가 유령처럼 따라다닌다.
내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모진 고생을 자청하며 양질의 신학책을 공급했더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망신주고 매장시키려 한다.
이것이 고신과 합동 교단이 내게 한 짓거리다.
6. 이번 대선에서 한국 개신교의 주요 교단들 대부분(예장 통합, 기장, 감리교, 성결교 등)이 윤석열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교단 차원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소속 목사들이 수백 명씩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유는 무속과 신천지와 결탁한 후보를 교회가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교분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개신교의 정서에 비춰볼 때 이번 대선처럼 각 교단이 특정 후보를 반대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가장 보수적이라 자청하는 두 교단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 두 교단이 바로 합동과 고신이다.
입만 열면 순교자의 후손, 청교도 정신, 개혁주의, 장자교단 등등 온갖 미사여구를 스스로에게 훈장처럼 달아주는 합동과 교단이, 그런데 정작 무속과 신천지와 깊숙히 연루된 정황이 넘쳐나는 대선후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반응이 없었다.
왜일까?
정치적으로 국힘당 세력과 지향점이 같기 때문이다.
(물론 합동과 고신 교단 안에서도 개별적으로 윤석열을 싫어하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내 말은 그 교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합동-고신의 모습은, 어쨌거나 나처럼 그 두 교단과 악연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말이 좋아 아이러니한 것이지,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말하자면, 이 두 교단은 방언기도를 한다고 해도 이단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기는 해도, 그러나 무속과 신천지는 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스스로 증명한 셈이니 말이다.
7. 그래서 나는 나를 향해 어느 신학생들이 '어용 목사'라고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대꾸를 할 마음이 없으면서도(지난 5년 간 일정 부분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교단이 합동과 고신이라는 점에서는 그냥 '허허' 웃는 것말고는 별도의 반응을 보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한 가지 분명하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윤석열 정권하에서 내가 더 이상 어용 목사 소리를 들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예언자의 귀환'을 보게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이미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상태에서 그저 입바른 말 몇마디가 도탄에 빠질 것이 분명한 민중의 삶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선거 결과를 복기할 때마다 뼈저리고 또 뼈저리다.
아니,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8. 요즘 같이 내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만 하는 때에,
그나마 내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행위 하나는,
전화번호부에서 목사, 신학자들 연락처를 하나씩 지우는 것,
페북에서도 마찬가지 행위를 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야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알면서도(몰랐으면 더 문제고),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
그놈이 그놈이다라며 혼자 고고한 척 했던 사람들,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추상적인 언어로 정치 평론을 대신했던 사람들,
24시간 내내 예수만 바라보자 했던 사람들,
하나씩 눈에 띄는 대로 지우고 있다.
그렇게 내 삶을 좀 더 가볍게 추스리면서 앞으로 도래할 엄혹한 밤을 헤쳐나갈 마음의 결기를 다듬고 있다.
이상은 나 자신을 위한 싱거운 변명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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