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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mytwel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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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제 | 열 두 개 작은교회 이야기
교회를 내려놓아야 교회가 세워진다.
2021.05.04
바보 목사, 바보 하나님
개척 후 10년이 되던 해, 교회는 안식년을 허락했고, 그 기간에 건강한 교회를 탐방하기로 결정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를 세우는 일’이 내 가슴 속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를 탐방하며 영과 육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지인 목사님께서 서울역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을 해보지 않겠냐 말씀하셨고, 거절할 수 없었다. 아마 여건이 좋은 곳이었다면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때 더 낮은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있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나님이 이끄실 때 분명한 말씀이 없다면 더 낮은 곳으로 가라고 말이다.
1주일에 한 번 노숙인을 만나 말씀을 전했다. 안식년을 계획대로 보내지 못하고 ‘왜 이러고 있나?’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기쁨으로 감당했다. 그렇게 전혀 생각지 못한 섬김의 장소에서 라마나욧선교회의 정신이 된 ‘신문지 한 장의 정신’을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건강한 교회를 탐방하고, 노숙인을 섬기며 보내던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말씀 한 구절이 가슴을 통과하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시29:4-5절)
이제까지 사람을 변화시켜 제자를 삼고자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그 일에 전념하느라 거의 날마다 코피를 쏟았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다행히 바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건강을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제자 훈련을 하며 건강한 교회와 제자를 세우려고 했는데 안식년을 맞아 돌아보니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목회였음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더 간절하게 어떻게 하면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지 몸부림치는 내게 그 말씀은 단비처럼 다가왔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 한 구절이 희망의 빛이 되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윗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가 사울을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자신의 정당함을 말하며 선을 행하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사울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쩍하며 내려치는 번개 앞에 견고한 백향목이 쩍하고 갈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동이 내게도 느껴지고 가슴에 깊이 들렸다.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옆에 있던 아내에게 흥분해서 말했다.
“여보, 이것보세요.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대요!”
남편의 뜬금없는 소리에 아내는 감동할 수 없었지만 내 가슴에는 새로운 희망이 솟구쳐 올랐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의 소리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목회가 아니라 여호와의 소리로 하는 목회’를 하리라 다짐하면서 희망의 꿈을 꾸게 되었다. 6개월 안식 기간 중 5개월이 지나 곧 교회에 복귀할 때를 앞두고 가슴에 희망이 솟구쳤다. 이런 내게 하나님은 청천 벽력같은 말씀을 하셨다.
‘교회를 내려놓으라.’
아둔한 목사인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고생에서 벗어나고, 안식년 보내며 은혜를 주셔서 희망을 품고 자신감을 가졌는데 교회를 내려놓으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교회를 내려놓아야 하느냐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주님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나도 하나님께 대답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어버렸다.
6개월의 안식년이 지나고 교회에 복귀해 ‘하나님의 소리로 하는 목회’를 펼쳐보려고 애를 쓸 무렵. 여름휴가로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들을 초청해 부부동반으로 낮에는 함께 교제하고, 저녁에는 수련회로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마지막 날, 하나님은 아내를 통해 두 번째로 교회를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벼룩도 낯짝이 있기에 도저히 내 힘으로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한 아내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 하신 것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휴가를 마치고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성도들에게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여기에 뼈를 묻자고 외쳤던 사람이 교회를 내려놓고 빠지겠다니. 더구나 큰 아이가 대입시험을 앞두고 있고, 딸도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 어떻게 교회를 내려놓는단 말인가. 두려움이 몰려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신실하던 제자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둔한 난 깨닫지 못했다. 그 일들이 나 때문에 일어난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다쳤다며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가니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가 마침 추석 연휴기간이라 수술을 하지도 못하고 연휴가 끝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아파서 죽겠다고 하는데 달리 방도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세 번째 말씀하셨다.
“너 때문에 그런다. 교회를 내려놓아라.”
아들의 고관절을 부러뜨리고서야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하지만 얼마나 고집이 센지 야곱처럼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다. 아들이 수술하지 않고 뼈가 붙도록 해 달라고, 그러면 순종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나님은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 아들의 부러진 뼈를 수술하지 않고 붙여 주시는 기적을 보이셨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던 나는 두 손 들고 항복했다. 2009년 11월 첫 주일 예배 때 교회를 내려놓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이야기 했고 그해 12월 31일 사임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사임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남은 돈은 구백만 원. 전세금 이천만 원으로 개척해 10년을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구백만 원 뿐이라니. 4식구가 거처할 집을 얻기도 버거웠다. 아무래도 난 바보 같은 목사다. 그 순간, 이렇게까지 했으니 하나님이 큰일을 맡기실 거라는 얄팍한 계산서가 작동했지만, 내게 주어진 건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이었다. 노숙인을 섬기던 때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시며 ‘신문지 한 장의 정신’을 담게 하셨다. 노숙인은 추운 겨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신문지를 이불삼아 잠을 청한다. 신문지 한 장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 다만 신문지 한 장은 노숙인이 죽음에 이르지 않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주님은 이 땅의 작은 교회를 향한 마음을 환상을 통해 보여 주셨다. 교회를 유지하기 힘들어 사역자가 교회 문을 닫으려 하는데 주님이 그 문을 붙들고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인데 왜 교회의 문을 닫느냐?”
교회를 내려놓고 다시 무모한 도전의 길을 걸어야 했다. 수험생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을 두고 라마나욧선교회를 통해 작은 교회와 사역자들을 섬기는 길에 나서야 했다. 이렇게 순종했으니 길이 활짝 열릴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무실 하나 빌리지 못하고 날마다 집에만 있어야 했다. 과연 내가 받은 사명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사무실을 얻을 수도 없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다. 오기로 하나님만을 소망삼아 기다렸다. 작은 교회를 섬겨야 할 내가 그들보다 더 못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아들과 딸은 학교에서 돌아와 말하곤 했다.
“아빠 오늘도 집에만 있어요?”
이 말이 너무나 크게 가슴에 꽂혀서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소리를 7개월 간 들어야 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 맞는가? 맞는다면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가? 답답한 시간이었지만 기적과 같은 일도 있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사무실도 없고, 교회도 없는 무직 목사를 7개월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작은 교회에서 섬길 수 있도록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 중의 기적이다. 헛갈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작은 교회를 위해 부르신 게 맞는 것 같은데 사무실은 주시지도 않고, 할 일도 없이 집에만 있으려니 참으로 답답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터넷으로 카페를 만들어 사역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니 나도 가만히 있었다. 집에서 말씀과 독서에 더 집중했다. 지금도 그때 내가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이지 구분이 안 된다. 어쩌면 하나님께 배짱을 부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명한 사람들은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다양하게 살 길을 찾았을 텐데 나는 7개월을 놀았다. 진짜 바보가 따로 없다. 바보를 써 주시는 하나님은 더 바보시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인격과 실력을 갖춘 성숙한 분들이 많은데, 성질 못되고 아는 것 없고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으니 하나님은 나보다 더 바보이시다.
7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완전히 교회를 내려놓은 나를 안타깝게 보신 권사님이 찾아오셨다. 사무실이라도 얻어서 일을 해야지 집에만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이백만 원을 내놓으셨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 힘들어 하시는 분이었는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으면 그렇게 하셨을까? 권사님께 이백만 원을 받고 사무실을 얻기 위해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백만 원으로는 도저히 사무실을 얻을 수가 없었다. 나머지는 바보 같은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책임이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시는 멀리 쿠웨이트에 계신 집사님의 헌신으로 사무실을 얻을 수 있었고, 라마나욧선교회가 작은 교회의 신문지 한 장으로 설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분들의 사랑이 있었다. 받은 것뿐이고 드린 게 없어 얼마나 죄송한지. 나는 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꼭 갚아주시리라 믿는다.
교회를 내려놓아야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와 어렴풋이 깨닫는다. 높은 산을 오를 때 ‘저 산을 꼭 오르리라’ 욕심 부리기 시작하면 조급해지고, 조급하면 실패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중시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하듯, 진짜 교회도 그렇게 세워지는 것임을 이제야 안다.
박정제 living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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