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창1:1 |
---|---|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일반 세상사람들은 자타에게 일어난 결과를 붙잡고 ‘옳거니 그러거니’ 하며 왈가왈부 한다. 그런데 어떤 일의 결과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오게 된 원인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리한 사람은 ‘결과의 원인이 뭔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한다. 집을 짓는 사람이 집을 짓다가 무너지면 ‘무너졌네’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왜 무너졌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서 다시는 무너지는 방법으로 집을 짓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이런 일반사람만도 못하냐? 무슨 말이냐? 자기가 지금까지 예수를 믿은 결과가 오늘날 좋지 않게 나타났으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나?’ 하고 원인을 찾아서 옳은 쪽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게 없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던 그 결과가 비구원적으로 나타나면 그 원인이 반드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이건 하나님의 기준을 모른 채로 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에게 속은 거고, 또한 잘못된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면 다른 사람도 또 잘못되는 거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인간 자기는 날 때부터 완전자 절대자가 아님을 인식하고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이러면 지혜도 나오고 성령님의 감화도 있는 건데 이걸 무시하고 살게 되면 일반 도덕성으로 사는 안 믿는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된다. 이러면 인생 존재 자체가 고통이고 괴롭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죽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바로 설 기회를 주신 것이니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인 구원에 생각을 맞추고 살아가야 한다. 믿는 사람이 이 정신이 해이해지면 하루하루 믿는 게 소용이 없다. 자기가 스스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창조의 목적과 관계가 없이 살아도 되겠지만 모든 인간은 세상만사 사건 환경 존재를 통해 구원을 입어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매사를 구원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시지만 분명히 계신다. 이 분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걸 못 믿고 진화론을 전개하는 자들이 있는데, 진화론에서는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고 하지만 파고 파고 들어가면 만물이 생긴 원인이 있는 건데, 아무리 진화론자라고 할지라도 이 원인조차 저절로 생겼다고 하지는 못할 거다. 그럼에도 이 원인조차 저절로 생겼다고 한다면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만다. 정확한 것을 모른 채 주장을 하다보면 사람이 우스워진다.
세상이 만들어진 원인을 자꾸 파고 들어가면 원인을 한 개를 놓고 찾아봐도 하나님이 나오고, 천 개 만 개를 놓고 찾아봐도 결론은 하나님이 나온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설령 진화론의 주장에 동조할지라도 만물의 창조의 원인마저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을 한다면 과연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근본을 찾지 못하면 누가 이렇게 말을 하면 이렇게 꾀임을 받고, 저렇게 말을 하면 저렇게 꾀임을 받게 된다.
◆ 애굽에서 바로 왕이 이스라엘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남자면 죽이고 여자면 살리라고 했는데, 어느 해석자가 남자 아이는 영적 이스라엘의 힘이 있는 자가 될 것이라서 죽이라고 한 거고, 여자 아이는 육적이니 살리라는 뜻이라고 한다던데, ‘영적이니 육적이니’ 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그리고 바로 왕이 영적인지 육적인지를 아는 자냐? 사람에게 ‘영적이다. 육적이다’ 라고 하는 것은 막 태어난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태어나서 자라는 사람에게 교훈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우선은 성경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래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가 많이 태어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자꾸 강하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애굽에 반기를 들 것이라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한 거고, 또한 아무래도 어린아이는 죽이기가 쉽기 때문에 어릴 때 죽이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여자아이는 왜 살리라고 한 거냐? 다 크면 자기들의 아내로 삼고 종을 삼으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세력은 점점 약해지고 이스라엘 여자들은 애굽의 남자들과 결혼을 하게 되니 혼혈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이건 이스라엘로서는 신앙에 치명적이다.
이 사건을 성령의 눈으로 영적으로, 교훈적으로 보면 교회 안에 거짓이요, 이단이요, 세상에 속한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건 거짓된 인도자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나일강의 호수에, 즉 사망계로 흐르는 강물에 집어넣는 거다. 이게 거짓 종들이요 이단자들이요, 세상에 속한 종들이다. 성도들을 거기에 집어 던지면 악어의 밥, 즉 마귀의 밥이 되는 거다.
마지막 시대에 거짓 종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거짓이 뭐냐? 목사님들이 맨날 사회 윤리 도덕성의 기준과 개념의 거짓말을 한다는 거냐? 신앙 면에서의 거짓이란 주님을 위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천국에 가서 보니 자기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다.
왜 이런 결과가 되는 거냐? 천국은 물질성은 일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물질성적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면 이건 육의 개념이고 물질성적 사상이니 이런 정신과 소원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세상성 애굽성의 성질로 예수를 믿는 거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육의 사람이구나. 육체로 사는구나. 물질성적 개념으로 사는구나’ 라고 한다.
천국은 주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만들어진 성분만 들어가는 곳이라서 육을 좇아 예수를 믿게 되면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믿다가 천국에 들어가면 천국의 상급이 없이 부끄러운 구원자가 되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육을 위해, 세상을 위해 믿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 신앙이요 거짓 교훈이 되는 거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이런 거짓된 교훈이 얼마나 많으냐?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들이 성령님이 뭐하는 분인지,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를 모른다. 목사를 잡고 물어보고, 교회에 오래 다닌 교인을 잡고 물어봐라. 모른다. 기독교는 세상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거,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거다.
◆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자가 뭘 모른다는 거고, 예수님은 뭘 안다는 거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했으니까 유대인 속에 들어 있는 교훈의 신앙사상을 알아야 이 말씀의 뜻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로 끄집어 와서 생각을 하면 교회에서는 현재 이룰구원을 이뤄갈 수 있는 교훈이 나와야 한다. 이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온다는 의미다. 현재 이룰구원이 되지 않는 교훈은 자기에게 아무 쓸 데가 없다. 그리고 이룰구원이 없이 믿는 사람은 하나의 육체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는 모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마 위에 놓인 거다.
사마리아 여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예배를 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의 예배의 개념은 장소를 기준으로 참 예배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참 예배를 장소적 건물적 개념을 주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라고 하셨으니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게 참 예배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현재 자기의 예배의 대상이 누구냐? 하나님 아버지냐? 그렇다면 자기가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믿느냐? 솔로몬의 예를 보면 예배의 대상은 분명히 하나님인데 그의 행동과 신앙사상은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눠지면서 북조는 단과 벧엘에 우상을 세워놓고 섬기면서 약 230년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이방 앗수르에게 북조 이스라엘을 치게 해서 이스라엘의 남자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고, 이곳에 이방남자를 심어놓으니 그 사이에서 혼혈자녀들이 나왔다. 이건 한 마디로 북조 이스라엘의 신앙상태가 세상과 혼합된 이질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많은 교회가 성경을 잘못 깨달아서 자기의 신앙사상의 질이 어떤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예배당이 큰 것을 자랑하고, 사람이 많은 것을 자랑한다. 계:의 큰 음녀 바벨론, 해를 입은 여자, 짐승을 타고 앉은 여자, 산을 타고 앉은 여자, 물을 타고 앉은 여자가 나오는데, 이게 남이 아닌 교인 자기의 신앙사상을 말해주는 거다. ‘네가 지금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예수를 믿느냐?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데 속은 예수의 정신은 안 보이고 세상의 물질 이해타산이 그대로 들어 있다면 네가 바로 큰 음녀 바벨론이요, 해를 입은 여자요, 짐승을 타고 앉은 여자요, 산을 타고 앉은 여자요, 물을 타고 앉은 여자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신다.
◆ 정통교회에서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구원파가 뭐가 문제인지를 제대로 아느냐? 모른다. 그래서 알고 보면 자기도 구원파와 같은 이단성이 다분하면서도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성질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 100% 옳은 교회가 몇이나 되겠느냐? 그럼에도 겉으로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는 것뿐이지 구원파와 같은 요소를 가진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단은 불교나 유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 기독교에서 나오는 거다. 그래서 교회의 교훈을 구별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가 이단 짓을 하면서 자기는 바로 믿는다고 스스로 속게 된다.
선악과를 따먹은 소원 목적 취미성 추구성 지향성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면 세상성이요 거짓성으로 믿는 거다. 이렇게 되면 자기의 젊음과, 자기의 투자성과, 자기의 충성봉사성을 세월이라고 하는 거짓 것이 야금야금 파먹고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수십 년을 예수를 믿었다고 해도 교회의 교훈을 구별 분별을 못한다면 이 사람의 정신은 좀이 다 파먹은 거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으로 되는 거고,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이룰구원 면에서 날마다 중복적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한 것은 중복적 거듭남, 또는 중복적 회개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구원파는 이런 걸 몰라서 사람이 구원을 얻고 못 얻는 것을 인간 자기들이 판단을 하고 덤비는 거고, 구원을 얻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어도 죄가 없다고 주장을 하는 거다.
‘구원 얻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죄가 있다. 없다’를 논하기 전에 만일 그들의 말대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죄가 전혀 없다면 이걸 돌려서 말을 하면 죄가 없는 완전자라는 말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 사람을 왜 이 땅에 놔두느냐? 그리고 완전자라면 교훈도 필요 없고, 징계도 필요 없는 건데 왜 사건과 환경을 만나게 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해서 훈련과 연단을 받게 하는 거냐?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교훈과 시련과 연단과 환경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으로 자라야 할 게 있다는 거다. 그런데 구원파의 주장대로라면 이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 정통교회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신앙하는 형태를 보면 그들과 똑같은 점이 많다. 무슨 말이냐? 구원파 식대로라면 이룰구원 성화구원이 필요가 없는 건데 이룰구원 성화구원을 받아들이는 정통교회의 사람이 사건 환경을 거치면서 말씀을 따라 자기를 고치고 만들어지는 것은 없이 세상 복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고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이룰구원을 모르는 구원파와 다를 바 없이 믿는 거다. 이건 예수님이 아닌 뭔가 다른 것으로 든든하다는 말이다. 네가 아직 배가 부르구나. 그러다가 졸지에 어떻게 될 수 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