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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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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요:6장에 보면 사람들이 광야에 많이 모였는데 왜 모였느냐? 예수님 앞에 무리들도 모여 있고 제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모인 무리들의 정신과 소원 목적은 먹고 마시는 세상 것에 들어가 있다. 지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광야다. 모든 인간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잠깐 동안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갈 자들이다. 나이가 들어서 가기도 하고, 병이 들어서 가기도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다 시간에 속한 것이라서 이 땅에 잠깐 있다가 없어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잠깐 있다가 없어질 나를 예수 믿게 해서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 알게 해 주시고,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해 주신 것은 큰 복이다.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기준해서 복된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게 가장 큰 복인데,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고 세상의 복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렇게 살아서 많은 재물을 가지면 이제는 이걸 안 빼앗기고 더 늘리기 위해 또 다시 온 힘을 쏟는다. 그러니 세상을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들고 신경이 쓰이겠느냐?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세상의 것을 많이 가져도 하나님이 없이 산다면 이건 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네가 땀을 흘려야 먹으리라’ 라고 한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정직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신 거다. 사람은 자기 노력 것 땀을 흘려서 먹고 살면 몸도 건강하고 그 마음이 참 편하다. 그러나 욕심을 부려서 자기 힘에 넘치도록 일을 하면 몸도 아프지만 마음도 편하지 못하다. 욕심을 내는 여기에는 항상 돈이 끼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온통 이렇게 돌아가면 개인은 물론이고 그 사회가 병이 든다.
◆ 말세에는 소돔 고모라 때와 같고 노아 때와 같다고 했는데, 노아홍수 때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정신과 사상과 목적으로 흘러갔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속 중심사상은 가인이 소원 목적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노아를 찾아오셔서 권고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길을 따라가니 영웅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되니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들이 통혼이 된다. 사상 정신이 하나가 되어버린다. 이럴 때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을 바로 잡은 자가 노아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과, 그 길로 몰려가는 셋의 후손들은 자기를 인간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보면서 ‘배를 바닷가에서 짓지 왜 산 위에서 짓는 거지?’ 라고 궁금해 할 텐데 그들은 세상의 낙에 빠져서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홍수가 와서 온 땅을 덮어서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과 생축만 남고 다 죽었다. 이에 대해 벧전:에 보면 죄라고 하는 옥에 갇힌 셋의 가족들을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죄에서 풀어내려고 이들이 홍수에 죽기 직전까지 전도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노아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다는 거다.
당시의 사람들이 노아의 전도를 받지 않다가 온 땅에 물이 창일해지자 그때서야 방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이때는 하나님께서 이미 배의 문을 닫아버린 후라서 모두가 물에 쓸려서 죽고 말았다. 물로 덮어버리는 것은 평소에 심판 아래 살았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거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리말씀을 받을 때 깨닫고 회개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마음이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때는 이미 회개의 기회가 지나간 거다.
소돔 고모라 시대에는 혼음이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지식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생명과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사람의 중심을 보지만 이방세상은 의례히 눈으로 보이는 게 기준이다. 세상사람들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지식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예수 믿는 세계에서도 눈으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신앙을 하게 되면 이것은 가인의 길로 몰려가는 사상이요, 롯처럼 소돔 고모라 속으로 들어가는 사상이다.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눈으로 보는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젊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일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많이 가질까?’ 하는 것에 무게중심이 잡혀 있다. 지금 말세시대의 교회도 이런 위주로 나가고 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자들은 자기를 고치는 것은 관심이 없고 돈을 가지고 종교적인 활동을 크게 하는 게 믿음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건 눈으로 보는 것을 기준으로 믿는 것이니 소돔 고모라의 현상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잘 먹어서 몸은 건강체인데 왜 그렇게 병이 많고 병원이 많으냐? 가만 보면 자기의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있으니 생각부터 사망적이요, 하나님도 없지, 말씀도 없지, 그러니 하나님을 닮는 삶이 아닌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육신만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선악과 따먹은 인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하나님 앞에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으니 말세가 될수록 점점 더 이런 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람은 몸보다는 정신이 중요한데, 지금 의학이 고도로 발달을 했다고 해도 정신에 병이 든 것을 제대로 고치는 의사나 의술은 별로 없다. 그런데 영인성장 면을 전문으로 고치고 바로 세우는 사람은 정말로 보기 힘들다. ‘마지막 시대는 노아홍수 때와 소돔 고모라 때와 같다’고 했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으니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이런 현상이 더 많아질 거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 걸맞는 영인성장 면의 전문가가 필요하고, 주님도 이런 사람을 원하시니 교회는 이런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교회들이 온통 눈으로 보이는 기준으로, 선악과 먹은 기준으로 나가고 있다.
계:에 ‘큰 성 음녀 바벨론’이 나오는데, ‘음녀’란 몸 파는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믿는 사람이 주님을, 진리를, 하나님을, 천국정신을 내버리고 세상과 짝 짓는 정신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거다. 즉 타락된 교회를 말한다. ‘큰 성 바벨론’이란 우두머리를 말하는 건데, 이 우두머리부터 음녀가 되었으니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온통 어찌하던 눈으로 보이는 것 위주로 나가면서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게 기준이지만 믿는 사람은 가치판단 이해타산 평가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로 들어가야 하고, 여기에서 더 들어가서 영적인 면까지 들어가야 한다. 영적인 면이 바로 되면 정신 면도 바로 잡힌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이치를 가지고 사람을 고친다. 오늘날 누가 이 면에 눈을 떠서 구원의 복음을 전할까? ‘마지막 시대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는 말씀이 나를 제외한 말씀이 아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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