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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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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요:에서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라고 했는데, 이 연못에 들어가서 병이 나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이 동하면 서로 먼저 내려가려고 야단법석이다. 이게 다 교회에게 주는 말씀이요, 교인들에게 주는 말씀이요, 나에게 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이걸 다른 말로 하면 혼돈이요 혼합이요 혼란이요 혼성의 상태를 말한다.
이런 곳에 들어가서 병이 낫는다? 나았다손 치자.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고쳐주셨는데, 이것을 신앙의 이치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38병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건데, 물이 동할 때, 즉 혼란하고 정신이 없는 곳에 먼저 빠져서 병이 나음을 받은 자와 뭐가 다른 거냐?
혼란하고 혼잡하고 정신이 없는 데서 병이 나은 사람은 그 병에 또 다시 걸릴 확률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 또 다시 그 병에 걸리면 또 다시 그런 곳으로 가려고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이 병자에게 전도를 한다면 ‘내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서 병이 나았으니 당신도 베데스다 연못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물이 동하면 가장 먼저 물로 뛰어 들어가시오’ 라고 할 거다.
그러면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받은 38병자는 이 병에 또 걸릴 가능성이 있을까? 이 경우는 신앙의 이치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다시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없다. 왜냐? 38병자가 병이 들어서 어디에 붙잡혔느냐? 침대다. 침대에 붙잡힌 이유는 병이 들어서다. 사람이 병이 들면 침대에 붙잡히게 되는데, 왜 병이 들었느냐?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니 정신에 병이 들었고, 정신에 병이 드니 몸까지 병이 들었고, 이렇게 되니 침대에 붙잡혀서 자유하지 못하게 된 거다.
사람은 환경을 다스려야 하는데 환경의 소산으로 살면 환경이 웃으라고 하면 웃고, 울라고 하면 울게 된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남 탓, 세상 탓을 하는 거다. 환경의 소산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의 정신과 마음이 어디에 붙잡혀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안 해 주나?’ 하게 된다. 이렇게 살다가 주님을 만나서 말씀으로 자기가 나음을 받으면 환경에서 자유가 되고, 말씀의 이치를 알게 되고, 주님과 동행하게 된다.
인간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고, 뿐만 아니라 아담이 범죄 한 유전 죄를 가지고 나왔다. 이걸 부정할 수 없는 게 어린아이는 죄를 안 지었는데도 낫자마자 죽는 아이가 있는데 인간에게 죽음이 온 것은 죄 때문이라고 했으니 ‘방금 태어난 아이가 왜 죽느냐?’ 하는 면에서 비록 어린아이이지만 생명과가 아닌 선악과를 먹은 증거다.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해 주셨고, 그 다음에는 생명과를 먹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건 환경 가운데서 깨달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자가 된다. 그런데 ‘예수 믿어 부자 되자’ 라고 하는 사람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들처럼 혼란한 곳에 가서 자기의 소원을 빌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정신이 없어지는 거다. 사람이라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말씀의 장단도 알고, 흑백도 알고, 선악도 알아서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사기꾼도 있고, 유혹 미혹하는 사람도 많은데 구별 분별을 안 한다면 어떻게 하려는 거냐?
눅:에 한 부자가 소출이 많자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라고 했는데, 기독교인들은 의례히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자기의 정신은 눅:의 이 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진리정신에 바로 선 사람은 자기의 재세기간의 목적이 뚜렷하다.
에덴동산은 비유적으로 천국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 말씀순종이 안 되니 쫓겨나온다. 이러면 그 좋은 곳이 자기에게 소용이 없다. 말씀을 못 알아듣고, 신앙 실력이 없고, 눈치가 없는 사람은 그 에덴동산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비단 이부자리를 깔아놔도 소용이 없다. 그걸 관리하는 능력도 없다. 우리는 진리말씀을 깨달아서 세상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자기의 영능의 실력을 장만하는 거다. 말씀을 따른 게 아닌 자기의 타락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사망적 정복이다.
38병자를 우리의 눈에 보여주는 것은 영을 위해, 영인성장을 위해서다. 그래서 이 38병자를 영적으로 깨달으면 몸에 병이 들어서 침대에 잡혀있는 것처럼 예수 믿으면서 환경에 붙들려서 꼼짝을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 탈출해 내겠느냐? 의사가 육신의 병자를 낫게 해서 자유롭게 해 주는 것처럼 교회 인도자는 신앙적인 면에서 교인들에게 진리본질을 주어서 영인의 능력 면에서, 영적 속성적인 면에서 하나님처럼 닮아가고 환경을 지배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이런 사람이 되면 뭐든지 이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뭔가 쓸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아무리 어려워도 굴하지 않고 돌격격 정복적인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은 가난도 이기고, 부요가 와도 이 부요에 붙잡혀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부요에 마음이 잡힌 사람은 침대에 놓여진 사람이다. 38병자다. 이 사람은 언젠가는 육신마저 꼼짝을 못하게 된다.
정신이 어디에든 붙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필연적으로 그 몸까지 침대에 놓여지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구덩이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교회는 일종의 예수학교인데, 예수학교에서 예수를 못 깨달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예수학교에는 머리 깨우침, 품행의 온전의 교육이 있으니 인도자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깨달으면 배운 것을 자타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서 써먹게 된다.
사람이 이치 있게 살면 현명해진다. 그런데 세상이 악해져서 사람들이 돈을 최우선으로 놓고 산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듯이 사회의 여러 가지 부작용은 알고 보면 다 돈 때문이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살 건드리는 것도 자기가 투자한 돈보다 몇 배 더 벌려고 하는 수단일 뿐이다. 가게에서 세일을 하는 것도 물건 값을 깎아주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깎아준 것 이상의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거짓 종이나 이단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한다. 교인이 잘못했으면 목사는 책망을 하고 고치라고 해야 하는데 잘못한 사람이 물질적으로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면 거짓 종이고 삯꾼이다. 교회 안에 이런 종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잘 하고, 성경대로 한다고 하는데 그 목적과 방향이 세상으로 되어있는 목사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성경구절을 들고 말을 해도 그 정신은 세상이다. 이것도 거짓 종이다.
이런 종은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나 믿는 사람이 볼 때 욕심이 없고 진실한 종처럼 보이지만 이룰구원이 없다. 성장이 안 된다. 말씀의 이치의 깨달음이 없다. 이룰구원의 정신이 없이 믿으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일반은총을 세상에 다 탕진을 한 거다. 이러면 ‘악한 종아’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목사의 노후대책은 오직 말씀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운 것이니 노후대책은 하나님께서 하실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 왜 자기의 노후를 염려해서 육적인 목회를 하느냐? 믿는 사람은 말씀 안에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거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사심이 들어있으면 이게 안 된다. 교인들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목사라면 말씀 안에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사 자신은 물론이고 교인들의 모든 생활이 주 안에서 말씀으로 지팡이에 꽃이 피듯이 피어나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망해서 죽었느냐, 천국에 가서까지도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되어있느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사는 면에서나 정신 면에서 힘이 있다.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하도 안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율법주의로 사는 유대나라를 보여주는 거다. 충청도만 한 크기의 땅에 사는 그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지 않느냐? 그들의 정신이 어디서 나온 거냐? 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 후손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 라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그 땅을 지키는 정신이 있다.
이들은 영적인 면은 모른 채 육적인 면으로 믿는 믿음인데, 육적인 믿음도 이렇게 대단한데 영적인 믿음은 더 엄청난 거다. 하늘의 정신, 영적인 정신, 영의 사람은 육적으로 믿는 것보다 더 힘이 있고 강한 건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이걸 모르고 여전히 육에 매여서 살고 있다. 이렇게 믿다가 자기에게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이 몰려오면 이길 수 있겠느냐? 원망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우리는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는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거다. 이게 이룰구원의 정신이다. 세상은 물질을 정복하려고 애를 쓰지만 우리는 천국을 많이 가져야 한다. 믿는 우리에게는 이 전쟁이 허락이 되어있다. 이 전쟁은 무기로 정복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로 정복이기 때문에 살리는 정복이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는 국적이 없다. 우리는 세상 것을 이용하고 활용해서 천국을 침노해야 한다.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바탕은 모른 채 자꾸 물질을 가지러 간다. 우리 기독자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 모든 물질을 지키고 다스리고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 특수은혜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일반은총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믿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환경에 가둬져 놓으면 이것은 38병자와 같아서 영인성장 면에서 자기 스스로는 거기에서 탈출을 못한다. 말씀으로 건 깨달음으로 건 반드시 주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와야 일어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걸어 다니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자유냐? 아니다. 이것은 죄에 붙잡혀 사는 거다. 사람이 일을 안 하고 늘 침대 위에서 빈둥거린다면 이것도 잡혀서 사는 거다. 우리는 이 정신을 깨우쳐야 한다. 38병자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말고 자기를 자세히 쳐다보면 자기로 보인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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