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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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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바닷물 위를 조금 걸었는데 풍랑을 바라보자 물에 빠져 들어갔다. 왜 빠졌을까? 왜 빠졌는지를 알기 전에 풍랑을 보고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실수가 있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풍랑은 영적으로 보면 환난 풍파인데, 일반적으로는 전쟁이나 기근 등등이고, 신앙적으로는 진리가 혼탁해진 게 성도에게 있어서 환난 풍파다. 성도가 진리에 혼란 혼탁이 되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면 환난 풍파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빛이시니 이 빛을 따르는 사람들은 빛의 자녀들이다. 그 시대의 빛 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이방 불신세상을 따라 살면 안 된다. 빛의 자녀로서 빛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즉 옳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방사상에 물이 들거나 이걸 쳐다보고 따라가면 환난으로 들어간다. 자기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믿는 사람으로서 누구의 책임이냐? 남 원망할 것 없다. 세상을 원망할 것 없다. 원망을 하는 것 자체가 벌써 빛이 꺼졌다는 의미다.
베드로가 바닷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에 뛰어들기 이전에 겉옷을 벗고 있었으면 풍랑의 환난을 만났을 때 벗은 그대로 물로 뛰어 들어가야지 왜 겉옷을 걸치느냐? 물은 세상이라. 왜 세상의 물질성을 걸치고 주님을 따라가느냐 이 말이다. 이게 큰 실수다. 이러면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다. 세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다.
베드로가 물 위를 몇 발자국 걷다가 물에 빠진 것은 세상을 의지하는 너의 신앙은 몇 발자국 가다가 세상에 빠지게 된다는 거다. 아무리 풍랑 중에 물 위를 걷더라도 시선만 주님께로 돌리면 계속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건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다.
자기가 물질적 사상으로 둘러 있으면 몇 발자국 가다가 세상에 빠져버린다.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치를 모르면 예수 바로 못 믿는다. 이치적으로 생각할 때 바다에 수영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외투까지 입고 들어가느냐? 물질성적 사상을 가지고는 세상을 헤쳐나갈 수가 없다. 이 사람은 100% 빠진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처음부터 마귀니라’ 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돈을 좋아하는 정신을 가지고 예수를 믿고, ‘목사네, 제자네’ 하고 있다면 너는 처음부터 마귀다. 이 말은 지옥에 간다는 게 아니다. 돈을 좋아하는 목사, 돈을 좋아하는 교인이 많은데, 예수 믿어서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전부가 가룟유다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진리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다 팔아먹고 육신 쪽으로 가게 된다. ‘아니다’가 아니라 가게 되어있다. 너도 네 속을 발견을 못하면 너도 그렇게 된다.
가룟유다를 가리켜서 ‘열두 제자 중에 하나’ 라고 하는 의미는 돈을 좋아하는 가룟유다의 사상을 콕 집어서 말을 하는 거다. ‘하필이면 너냐?’ 이게 아니라 ‘너도 그런 정신 사상을 가졌다면 너도 가룟유다다. 다른 사람은 다 안 그런데 너만이다’ 하고 콕 집어서 말을 하는 거다.
자기에게 사건 환경이 닥치면 지금까지 진리를 받으며 예수를 믿었지만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가 다 드러난다. 못 속인다. 너의 언행심사가 너를 증거 한다. 자기가 자기 신앙이 어떻다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나 잘났소’ 라고 해도 얼마 안 가서 사건 환경이 ‘네가 말하였도다’ 하고 자기의 신앙을 드러낸다. 진리 앞에서는 자기의 신앙이 상황적으로 드러나고, 사건적으로 드러나고, 자기의 수준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가 당신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처럼 만드시려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과 환경으로 교훈을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돈을 좋아하던 가룟유다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고, 이 가룟유다의 결과를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가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을 역이용한다면 너도 가룟유다처럼 당하게 된다.
교회에서 흑백을 분명히 알게 했고, 임시성과 영원한 것을 알게 했고, 그 결과를 보여줬고, 그 이치를 보여줬는데도 예수 믿는 습관과 버릇이 자기를 무디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예배시간에 게으른 습관은 안 된다. 교회에 나오는 자세부터가 잘못되면 은혜를 못 받는다.
하나님 앞에 수종을 드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 예가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동여매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는데, 이게 교회를 섬기는 자세다.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면 제자들이 얼마나 시원할까? 겸손으로 사람을 섬기면 이런 결과가 온다.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겸손이 아니면 안 된다. 교만하면 수종을 못 든다.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복음의 수종성을 사상적으로 표현하신 거다. 겸손의 수종성이 행동이 아닌 정신으로 들어가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어떤 장소에서건 복음에 수종을 들게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일반적으로 말을 하면 부지런한 거다. 게으른 사람은 수종을 못 든다. 예배시간에 늦는 사람은 수종을 못 든다. 남을 원망하고 남의 흠을 잡는 사람은 수종을 못 든다. 이건 교만이다. 우리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정신 면에서 게으르면 안 된다. 부지런하면 육신의 건강도 도모가 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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