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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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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하나님의 본질은 한 마디로 하나님 당신인데,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 지혜지식성, 도덕성, 능력성이 다 하나님의 본질이다. 이 본질은 시간적으로 영원히 가는 거고, 존재적으로는 하나님 한 분만 가졌는데 하나님의 이 속성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주셨으니 이 본질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주님과 그 나라를 같이 누리며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거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속성을 입는 거냐? 말씀에 순종을 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하나님의 본질의 속성을 입는 거다. 이 속성을 입으면 영원히 자기 것이 된다. 세상의 임시성적인 것은 믿는 우리의 목적물이 아니라 영원한 온전을 이루기 위해 이용 사용 활용물이다. 세상의 시간이나 물질 등 모든 것은 임시성적인 것이라서 성도의 구원을 위해 쓰여질 것들이지 목적물로 삼으면 안 된다.
성경에서 적그리스도나 이단자들이나 거짓 종을 말하는데,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세상적 육신적 임시적인 것을 주격으로 하고 성경을 해석하고 가지라고 주장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처럼 성경을 들고 세상을 주격으로 말을 하는 것은 그 말의 뿌리가 활동에 들어있고, 이성적 철학적 허무맹랑한 것에 들어있다. 이런 것은 그 이해타산이 이방인들과 같기 때문에 말로는 성경대로 한다고 하지만 생활하는 것은 말씀의 정신과 맞지 않게 된다.
창세 이후로 세상 마지막 때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닮아가는 면에 쓰임이 되는 재료감이다. 구약시대의 사건이나 인물도 지금 현재로 가져다 놓고, 세상 마지막 때에 되어질 것도 지금 현재로 가져다 놓고, 어느 시대던, 어느 사람이던, 어느 전쟁이던, 마귀의 말이던, 천사의 말이던, 짐승의 말이던 다 지금의 자기에게 가져다 놓고 구원도리와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나 지역이나 장소를 초월해서 깨닫고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거다.
세상 모든 것을 자기 앞으로 가져와서 시대적인 모든 활동과 그 때의 사람을 까서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보고, 즉 그들이 가졌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을 깨달아서 자기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하나님의 본질로 바꿔나가면 바른 신앙이 되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이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의 표면적인 부요나 권세나 누림 등을 보고 욕심을 내면 바른 신앙이 안 된다. 성경을 보면서 하늘에서 오신 분의 속성을, 지식을, 성품을 깨닫고 하늘나라에 소원을 두고 질적으로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옳은 성경해석이다.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한 눈에 전 세계를 볼 수도 있고, 전 세계 기독교의 흐름을 볼 수도 있고, 한국의 기독교 신앙의 흐름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교회의 흐름을 볼 수도 있는데, 목사님들의 신앙의 흐름을 보면 지금의 교회들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목사님으로부터 나오는 교훈의 근거가, 원천이, 뿌리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더라’ 이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알아주는 지식과 존귀와 명예와 영광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하는 것인지를 보면 교회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을 욕심내고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은 땅으로부터 올라온 지식으로 사는 거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모른 채 활동적으로 세상일을 많이 하는 것을 알아준다.
예수님의 운동은 사람 하나 하나마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훈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언행심사를 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앉고, 바로 서고, 비로 사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고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깨달은 예수님만 자랑한다. ‘누가 어떻게 하니 세상축복을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말이요 마귀의 말이다. 마귀는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고 병이 낫고 부자가 되었어도 이런 자랑은 하지 말아라. 이런 자랑을 하는 사람은 정신부터 잘못되었다. 이단자들이나 마귀에게 넘어가기 쉽다. 이런 사람이 목사가 되면 가룟유다 목사가 된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뿐이다. 생명과를 먹은 지식과 선악과를 먹은 지식이 있다. 마귀는 생명과를 먹는 지식을 내느냐, 선악과를 먹는 지식을 내느냐? 마귀가 아무리 성경구절을 써도 세상에서 잘되라고 한다. 성경을 보지 않고, 잘못된 지식을 받은 사람은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간다. 잘못된 지식을 받은 사람은 당장은 속지 않더라도 자기가 가진 지식이나 성격이나 성질이 거짓적인 것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여건만 조성이 자동적으로 속게 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거짓으로 취급을 하신다. 거짓된 신앙이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힘을 합쳐서 나라의 일을 하면 나라도 잘 되고 자기도 잘 되어서 평화롭게 살게 된다. 그런데 국민 각자가 국가를 우선적으로 두지 않고 자기 개인을 우선으로 두고 살면 자기 집이 설 수 있느냐? 적이 쳐들어오면 다 빼앗기게 된다. 참 어리석다. 예수 믿는 것도 교회가 하나님의 본질로 커지면 거기에서 사위도 나오고, 며느리도 나오고, 진리로 배출되는 참 자식도 나온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영원 궁극적인 행복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어도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이해타산으로 산다. 이런 사람의 생각은 쪼그라진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바 되어서 날마다 살아나는 게 영적인 세계인데 이 면이 되어나가지 못하니 시간에 속한 육신이 날마다 쪼그라진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눈으로 보면 다 현재가 보여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약성경을 보여주시는 것은 현재 나에게도 영적인 면에서 구약의 사람들이 가졌던 정신과 소원 목적이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거다. 구약시대의 사람이나 신약시대의 사람이나 사고방식은 똑같다. 구약에 니므롯이 한 일이 나오는데, 이것은 지금의 업적주의 사역주의 신앙자들이 예배당을 크게 짓고 종교사업을 크게 하고자 하는 정신과 같은 거다. 용어와 활동만 다를 뿐이지 속의 성질과 성향은 똑같다.
예수 믿는 자기가 성경을 못 깨달으면 백날 읽어도 자기 속을 못 본다. 까막눈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성경을 보고 깨닫는다고 해도 자기의 지식과 상태를 기준으로 깨닫기 때문에 자기의 영적인 면은 못 본다. 그러니 자기 육적인 면을 기준으로 큰소리를 치고, 다른 사람을 흉을 보고, 꾸중을 하지만 이렇게 한 게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한 바퀴 돌아서 결국은 자기에게 돌아온다. 즉 자기가 남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한 게 자기 속에 전부 들어있어서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건 자기 속에 들어있는 게 다 드러나게 된다. 이런 일을 겪을 때 자기를 발견하고 ‘아차, 나도 똑같구나’ 하고, 또 다시 ‘아차, 나도 똑같구나’ 하면서 고쳐 나간다면 이 사람은 그만큼 깨달아져서 바로 서게 된다.
만일 주님의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서 한 사람이 ‘나는 주님의 제자가 안 되련다’ 하고서 튕겨 나간다면 누가 손해냐? 튕겨 나가는 자기가 손해다. 이건 자기가 자기를 못 쓰게 하는 거다. 교회 안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도 있고, 마귀 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목사나 교인들 중에 부분적으로 보면 ‘자폐증이 아닌가?’ 할 정도의 사람도 있다. 또한 귀신들린 것처럼 보이는 교인도 있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선악과 따먹은 세상이니 오죽 하겠느냐? 사람마다 성격 성질 취미가 제각각이다. 이게 선악과 따먹은 세상이다.
하나님의 온전을 두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자기의 약한 거나 잘못된 것을 잘 못 깨닫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된 게 보이면 ‘내 속에는 그런 게 없나?’ 하고 자기를 살피며 경계를 해야 한다. 공동생활에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이러면 욕을 먹게 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언행을 보면서 ‘나도 저런 언행을 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면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겸손한 사람이고 은혜를 받을 사람이다.
교회에서 부분적으로 언행이 잘못된 것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고쳐가는 과정이라서 용납하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씀의 본질에서 빗나간 주장을 하면 이 사람은 교회에서 쫓겨 나가는 거다. 말하자면 국법을 어기는 게 다른 죄보다 큰 거다. 교회는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
◆ 성경이 창: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시작을 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성과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했는데, 이것은 영육을 구별하게 하는 신의 역사를 말한다. 그리고 첫째 날에 빛을 만들었는데, 이 빛은 햇빛이나 달빛이 아니라 인간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빛’이라고 말을 하는데, 영적인 이 빛이 먼저 있어야 무슨 뜻으로 물질을 만들었는지 알게 된다.
이 첫째 날의 빛이 넷째 날의 빛을 겸하게 했는데, 이유는 물질적인 빛을 통해 물질세계를 눈으로 보고 영적인 면을 깨닫게 하려는 거다. 그래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고, 또 이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고, 또 이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심으로 해를 다스리게 한 거다. 이런 것을 말씀하심은 한 마디로 만물을 보면서 영적인 면을 깨닫고 영적으로 들어가라는 거다.
◆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또는 주님이 보내신 종으로부터 회개의 운동이 되는 거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주님이 보내신 주님의 참 종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의를 받고 의가 이뤄지는 거다. 즉 세례요한은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역할을 했으니 우리가 세례요한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이 오시면 그대로 맞아들여서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거다. 이것은 우리의 기본구원 면에서 당신이 우리 속에서 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신앙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려고 당신이 직접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니 우리가 진리의 종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게 합당한 거다. 그런데 이게 아닌 자기의 패거리를 만들려고 세례를 주는 목사가 있고, 아예 세례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교인도 있다. 우리가 잘못된 게 많다. 그래서 수 년,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안 나타나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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