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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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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신천지에서 각 지역마다 ‘무슨 지파, 무슨 지파’ 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신천지가 이단이라고 하니까 같이 이단이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교리는 한 마디로 성경을 압축한 건데, 성경을 알기 쉽게 뽑아내서 ‘신앙의 기둥이 되겠구나. 석가래가 되겠구나’ 해서 정리를 한 거다.
요즘은 성경을 알기 쉽게 하느라고 현대의 용어로 번역하는 일도 많은데, 번역에 따라 용어와 문자가 달라지지만 원 뜻은 비슷하다. 그런데 눈높이 교육을 하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이렇게 해 줄까요? 저렇게 해 줄까요?’ 하는 존칭으로 번역을 한 것도 있는데 우리는 이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을 연구해서 신학으로 정리하는 사람마다 구원을 앞쪽에 놓거나 성령을 앞쪽에 놓거나 하지만 어떤 순서로 놓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면에서 빗나간 거라면 누가 뭐라고 주장을 해도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거고, 영능의 실력 면에서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목사님들의 가르침이 굉장히 중요한 거다. 목사의 입장에서는 나라의 법이나 전쟁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는 거다. 왜냐? 참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깡패나 전쟁 등 모든 것을 몽둥이로 들고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집중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신천지에서 우리 교회에 보내온 전단지를 보니 자신들은 바른 증거를 하는데 기성교회의 목사님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니까 정치계가 나서서 자신들을 죽이지 못하게 판단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들의 이런 짓이 우스운 일이다. 진리의 역사는 신적인 역사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다. 어떤 세력이던 여기에 대적을 하면 멸망이요 심판이다. 신천지 자신들의 신앙이 옳다면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데 나라에 자신들의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니 사고의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신천지는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기독교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계4:의 ‘네 생물’을 기성교회에서 사복음서라고 해석을 하지만 자신들은 많은 천사들을 지휘하는 네 천사장이라고 해석을 한다고 한다. 천국을 누가 지키는 거냐? 누가 지키지 않아도, 내버려 둬도 거기까지 쳐들어가서 침략을 할 수준자나 능력자는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네 생물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 네 생물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마음과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한 생물이 어느 쪽으로 가면 다른 생물도 번개처럼 같이 움직이는데 이것은 성도들의 구원운동을 위해 의사대립이 없이 신속히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에 ‘두 증인’을 기성교회에서 신구약 성경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자신들은 주님 재림 때 장막성전이라고도 하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배도자와 멸망자를 본 예수님을 모시고 증거하는 두 목자로 해석을 한다고 한다. 목자의 의미가 목사를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두 증인 중에 한 사람은 그들의 인도자를 말하는 것일 거고, 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다.
두 증인을 글자적으로만 보면 존재적으로 두 사람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신앙 성분 면으로 보면 믿는 사람은 꼭 두 사람만 아니라 열 사람, 혹은 백 사람이라도 책을 먹은 사람은 얼마든지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다. 자기 안에서 말씀에 맞는 성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을 하고, 그 다음에는 예언하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한 외침 속에서 두 가지 일이 나온다. 그러니까 열 사람 백 사람이라 할지라도 두 가지 역할이 되어나간다면 이는 곧 두 증인이 되는 거다. 한 사람 속에서 진리와 성령의 감화로 되어나오면 두 증인이 되는 거다.
증인이 되려면 손으로 만져본 자, 그 다음에 직접 눈으로 본 자, 그 다음에 같이 대화를 한 자이어야 하고, 동거동락한 자이어야 하고, 주님의 소원과 목적과 취미성과 간구성을 아는 자이어야 하고, 주님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소원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자이어야 하고,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선지자의 영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은 자이어야 하고, 소원 목적과 취미와 간구성이 주님을 닮은 자가 증인이 되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신천지 같은 곳에 휩쓸릴까? 지식의 분류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선악과를 먹은 지식으로 역사적인 면으로 풀거나 종교적인 면으로 풀기 때문이다. 생명과를 먹은 지식은 사람에게 들어가 있고, 모든 가치판단 평가성이 천국성으로 내려지는데 선악과를 먹은 지식은 세상성으로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판단하는 수준이니 일반교인들처럼 믿지 말아라. 세상의 유행을 따르지 말아라. 믿어갈수록 배우는 차원이 올라가야 한다.
그 다음에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조OO목사는 마귀에게 넘어간 토지문서라고 한다는데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 마귀에게 넘어간 토지문서라는 말이 있느냐? 이건 잘못 생각한 거다. 마귀에게 붙인다고 하면 육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마귀에 붙이는 거지 땅이나 하늘을 마귀에 붙였다고 하지 않는다. 마귀에게 붙여지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세상 육적으로 믿는 사람이다. 우리는 옳은 진리로 이들을 깨닫게 해서 끄집어내야 한다. 이게 교회의 교훈이요, 예수님의 역사요, 성령님의 역사다.
신천지에서는 계5:에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던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예수님이 받아 그 인을 떼셨고 인을 하나하나 뗄 때마다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의 실체들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 계시록을 말한다고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 부분만큼은 신천지의 주장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본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고 한 것은 성경은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려주는 큰 책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성경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시고, 막을 것은 막아주신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 성경을 하찮게 여긴다면 이 사람에게는 작은 책이 되는 거다.
그런데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라고 할 때 사도요한이 이 책을 열 자가 없어서 크게 울었다고 한다. 이 때 장로 중 한 분이 죄를 이긴 어린양 예수가 풀 것이라고 했다. 예수가 아니면 이 책을 풀어낼 자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여기느냐? 말씀을 떠난 삶은 평생을 살아도 다 도둑을 맞는 거다. 예수를 믿어갈수록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데, 지도자급으로 나와야 하는데 사고방식이 평생 유치원 수준인 사람이 많다. 그러니 어떻게 가정을 다스려 나가고, 회사를 다스려 나가고, 사회를 다스려 나가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의 신앙이 바로 못 되면 정신 사상이 산만해서 정립이 안 되어있고 사람이 안정감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바로 안 되고 가정이 바로 안 된다. 세상은 바람이 불고 파도치는 곳인데 실력이 없이 어떻게 모든 사건과 파도를 타고 넘겠느냐? 자기 주위의 환경이 자기를 안착시키더냐? 옳은 것이 들어가야 지혜도 생기고 안착도 되는 거다. 직장에 다니고 월급을 잘 받아오면 안착이 된 것 같지만 이건 안착이 아니다.
그 다음에 ‘하늘로 올라간 두 증인’을 신천지는 교회가 옮겨가는 휴거라고 한다는데, 7년 대 환난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하는 거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룰구원 차원에서 사망적인 정신과 사상에서 건짐을 받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날마다 죄에서 건짐을 받아서 구약에서 광야교회가 가나안에 점점 가까워지듯이 성질적으로 천국으로 가까이 가까이 올라가는 거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 입어가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장소적으로 하늘로 올라가기 이전에 성질적으로 신앙 질적의 차원이 올라가는 것으로 본다. 이게 성경을 이룰구원 면으로 보는 거다.
그 다음에 계6:의 말 중에 ‘백마 탄 자’를 기성교회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운동으로 해석을 한다고 하는데, 슥6:에 네 생물 중에 ‘백마부대’라는 표현이 있는데, 기성교회의 목사님이나 주석에서 백마 탄 자를 적그리스도 운동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백마운동을 이룰구원의 운동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계:의 ‘백마’는 원문을 보면 자꾸 희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백마를 탄 자가 싸우기 전에 이미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싸워서 이긴다. 그러니까 싸우기 전에 승리가 보장이 된 싸움이다.
이 백마운동은 성도가 말씀을 의지해서 싸우면 싸우기 전이 이미 승리를 보장받는 싸움이다. 세상에 이런 싸움이 있느냐? 그러니까 이 싸움은 성도가 말씀을 잡고 이룰구원을 이뤄가는 것을 말하는 거다. 싸우기 전에 이기고 들어가는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다. 말씀으로 무장을 해서 싸웠다 하면 이기는 것이 보장이 되어있다. 이게 복음이다. 이러면 자꾸 성화가 되어나가는 거다.
백마운동을 적그리스도의 운동이라고 하는 사람은 일반 도덕성적 개념으로 고치고 희어지는 운동이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다. 일반 도덕성의 운동은 그 근원이 선악과 먹고 타락이 된 데서 나온 것이라서 하면 할수록 사람이 희어지는 게 아니라,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아니라 사단 마귀의 정신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실지로 교회에서 일반 사회 윤리 도덕성의 개념으로 가르치면 교인들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깨끗해지고 희어지는 것은 없고 도둑이 더 많아지고 악한 사람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백마운동을 일반 도덕성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같은 교리를 중심으로 놓고 보더라도 부분적인 면에서 각자가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근원을 밝히고, 그 지식이 발췌가 되었으면 ‘이 지식으로 하는 활동이 어디까지 가겠느냐?’ 하는 면을 살펴야 한다. 임시적이고 육적이고 세상적인 일반 사회 윤리 도덕에 관한 것은 아무리 발전이 되어도 시간에 국한된 운동일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가만둬도 사그라지고 죽는다. 그래서 구원의 이치로 말을 하면 일반 사회 윤리 도덕성의 운동은 스스로 멸망하는 일을 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자기 속에서 하나님과 의사적 대립이 자꾸 나오게 된다.
세상에서는 악한 자가 많아지면 나라에서 그 악한 일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 이럴 때 교회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 악한 자가 이미 나왔다고 하면 늦었다. 그 이전에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진리지식을 줘서 사람들의 마음바탕을 하나님께 두도록 개조해야 한다. 사람개조가 감옥에서 되는 거냐? 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일은 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 교회라고 하면 목사가 중요한 위치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근거로 삼아서 눈에 보이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이렇게 세상을 만드신 것은 우리의 온전에 목적으로 두고 만드신 거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세상은 천국과 비슷하다.
천국과 비슷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선적이던 타락적이던 자기의 실력대로 누린다는 면에서의 얘기다. 즉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살면서 영능의 실력을 쌓으면 쌓은 그 실력대로 천국을 누리며 기뻐하고 행복하게 된다는 말해주는 거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의 실력대로 기쁨을 누릴 때 임시적인 육신의 행복도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데 영원한 가쁨을 누리는 세계가 있으니 이 나라에 욕심을 품고 살라는 거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을 가지고 와서 눈에 보이는 않는 영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알게 하는 거다. 그런데 신천지이던 기성교회이던 이렇게 보는 눈이 없고 육신적 물질적인 개념으로 성경을 보니 시간 속에 속한 것으로 말을 하게 되고, 눈에 보이는 개념으로 말을 하게 된다. 이건 임시성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안 만들어져 있으면서 정통 노회나 기독교 단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이단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단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의 손가락 끝을 따라 보시지 않고 너의 중심을 보신다. 이단이던 삼단이던, 노회에 속했던 아니던 각 사람의 중심이, 즉 인격과 성품이 누구를 닮았는지를 보신다.
성경을 해석할 때도 이룰구원의 차원으로 보지 않고, 즉 신앙의 성분이나 성격이나 성질 면으로 보지 않고 존재나 사건이나 역사로 보게 되면 남만 손가락질을 하게 되니 자기의 성격이나 성질이나 성분을 못 보고, 못 고친다. 이건 애들보다 더 어리석은 거다. 어린애들은 자기의 고집이 들어있지만 교회 안에서 마귀의 속성을 가진 자들은 교활해서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요리를 해서 잘못된 곳에 빠지게 한다. 이건 어린애들보다 더 악한 자다. 악한 자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사기꾼이다.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세상 넓은 길로 뽑아낸다. 여기에 속으면 주님을 닮지 못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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