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11:1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예수님께서 돌무덤 속의 죽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하니까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서 돌무덤에서 나왔다. 손발까지 꽁꽁 묶어놨을 텐데 어떻게 풀고 나왔을까? 성경을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못 푼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는 것은 ‘죽음에 갇혀있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라’ 이 말이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이 하는 말로 나오라고 하는 거지만 이 말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들어있다. 당신은 어떤 말씀을 하셔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래서 인간이 듣기로는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하는 인간의 말로 들리지만 나오라고 하는 그 성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명령, 그 소리는 주님의 인격이요 성품이다.
성경말씀 속에는 이런 주님의 본질과 본성과 본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주의 종이 진리본질의 말씀을 선포한다면 이것은 주님께서 나사로에게 ‘나오라’ 라고 한 것처럼 ‘그 죄를 짓지 말고 나오라. 창살 없는 감옥에서 나오라’ 라는 게 들어있는 거다. 그분의 말씀이라야 일어날 수 있고, 걸어 나올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나오라. 가자’ 하고 부르실 때는 인간의 말로 들리지만 그 부르심과 명령하심과 말씀하심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신앙이 살고, 성장하고, 발전하지만 인간의 말로 받아들이면 인격적 결합이 안 된다.
인간이 먹는 것 중에는 먹으면 사람이 죽거나, 몸에 약이 되거나, 병이 낫는다든지 하는 게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말도 독이 되는 게 있고, 안 좋은 게 전염되는 게 있고, 약이 되는 게 있는데, 사람의 정신에 좋은 영향을 주는 말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주님의 말씀은 이치요, 우리의 인격이요, 도덕성이요, 내가 존귀해지는 살아있는 역사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좋은 말씀을 전하는 자가 사람에게 독이 되고 사망이 되게 전할 수도 있다. 이건 넓은 길, 사망 길, 심판의 길이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의 말씀에서 이걸 느낄까? 이런 것을 구별할 줄 모른 채 그냥 예배를 올리고 의식 순서만 지키면 외식자가 된다.
사람은 무슨 말을 듣든지 같은 말씀을 늘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머릿속에 그 말이 녹음되기 시작하고, 이게 반복되면 자기 마음속에 각인이 되고, 이러면 그 인격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자기에게 독이 되는 말은 듣지 말고 자기의 모든 정신과 사고방식을 고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서 죽는 것은 살리고, 죽어야 할 것은 죽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주님은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육은 죽이고 영은 구원을 받게 하는 역사를 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영인성장 면의 보호성이 있고, 영인성장을 위해 육의 보호성도 있다. 자기에게 육적인 게 기준으로 작용하면 이것으로 인해 영인이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적인 것을 죽여 버리는 역사도 있다.
요17: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라고 했는데, 이것을 개인적으로 지적을 한다면 가룟유다를 말한 건데, 가룟유다가 예수보다, 하나님보다, 사람보다 돈을 좋아한 것은 한 마디로 멸망이라는 거다.
가룟유다를 보고 ‘택자다. 불택자다’ 하는 것은 성경해석이 아니다. 개인으로 보면 가룟유다에 대해 기록된 것인데, 이 가룟유다의 정신을 분해해보면 돈을 붙잡고 있고, 돈에 지배받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가 예수를 팔아먹었으니까 이 안에는 인신매매도 들어있고, 진리를 파는 것도 들어있고, 스승을 파는 것도 들어있고, 하나님을 파는 것도 들어있다. 돈은 세상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니 믿는 사람이 돈을 좋아하면 주님을 팔아먹게 된다는 거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가만두겠느냐?
예수 믿는 우리에게 세상은 소원 목적물이 아니라 자타의 구원에 이용 활용물이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에게 일반과로 먹으라고 준 것이기 때문에 타락된 세상의 것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옳은 것은 도덕성이던 물질성이던 자타의 구원을 위해 쓸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타락된 곳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것을 다 멀리하고 부정한다면 자기가 어떻게 세상에 살겠느냐?
사람들 가운데 사는 자기가 먹고, 마시고, 입고, 걸어 다니고, 사용하는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나온 거다.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자기가 사람 가운데 산다면 이런 사람들의 고마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면을 잘 모르고 인색하고, 자기 위주, 자기 자유, 자기 주관으로 산다. 이러면 자기가 힘든 일을 겪을 때 누가 자기의 소리를 듣겠느냐? 이러면 사는 게 힘이 든다. 우리는 인간 가운데 살면서 사건과 환경을 겪으며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타락되고 저주받은 사상이요 죄 가운데 산다. 믿는 우리는 여기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옳은 진리지식을 줘서, 사는 지식을 줘서 죽은 데서 건져내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게 전도다. 돈에 욕심을 가지게 하면 서로가 죽는 거다.
뉴스에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는 이런 소식을 들으면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봐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라도 내가 고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심판 감이다. 자기가 옳은 것을 듣고 배웠으면서도 못 고치면 그대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배시간이나 맞추고, 좋은 말이나 듣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 한다.
믿는 사람이 직장에 다닌다면 돈을 위해 일을 하지 말고 사람을 위해 하라. 돈만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저주다. 믿는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사람의 영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이 라인을 벗어나서 하는 것은 사망 길, 멸망 길, 심판의 길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