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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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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12] 문어발식 경영 = 가인의 후예들
김민홍 2021.03.15
“독점과 승자독식 치중 단명에 그쳐
사회적책임과 투명,공정경영 펼쳐야”
그의 할아버지는 만석꾼이었다. 아버지는 미곡 상점을 운영했다. 누에도 쳤다. 덕분에 그는 금수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강점기 때 상고를 나와 일본 유학까지 마쳤다. 귀국 후 정미소를 차렸다가 해방 후 제사製絲 공장을 인수 경영했다. 그 의 아바지 사업은 순조로워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후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제사공장이 발판이 됐다. 수출은 주로 제사공장에서 만든 원사와 수산물이었다. 수입은 원목이나 나일론원사 등 주로 원자재를 취급했다. 아버지는 수입 원자재를 이용해 섬유, 합판, 신발공장을 차려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그는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시대 주역이 됐다. 아버지 사업을 발판삼아 기계 석유화학 시멘트 제지 등 제조업 전반에 손을 댔다. 진출하는 업종마다 돈을 벌었다.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라 생산만 하면 팔려나갔다. 그는 영화와 광고 등 문 화 예술사업에도 투자했다. 선대는 가벌이었지만 그는 재벌이 됐다. 진출 업종이 다양해서 문어발식 경영이라 했다. 할아버지는 농업, 아버지는 상업, 그는 제조업을 한 셈이다. 재산형성의 선순환 과정을 거쳤다. 농업으로 일군 목돈을 장사로 더 크게 불린 것이다. 또 상업자본은 산업 자본화에 성공했다. 그래도 그는 지칠 줄 몰랐다. 80년대 후반 무렵 해외 진출도 서둘렀다. 족벌. 재벌경영의 비난과 정부의 조사도 여러 차례 받았다. 결국 이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외환위기는 어렵게 넘겼지만 21세기 문턱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이 크게 진노했다. 하나님은 당장 가인을 찾았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가인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말대꾸는 불만과 불평의 표현이다. 마음속으로는 하나 님께 불순종의 태도를 보였다. 가인은 에녹성을 거점으로 5대손 라멕에서 크게 번성한다. 이 라멕은 특출한 인물이다. 그 아들들이 제조업과 문화 문명창조에 앞장섰다. 라멕은 두 아내를 거느렸다. 아다와 씰라이다. 일부일처의 질서를 깼다. 가인의 후예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죄의 늪에 더 깊게 빠졌던 것이다. 아다는 야발과 유벨을 낳고, 씰라는 두발가인과 딸 나아마를 낳는다. 라멕 후손들은 가업인 농사꾼에서 벗어난다. 아들 야벨이 목축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농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든다. 또 유발은 수금을 켜고 퉁소를 분다. 문화예술인이 된 것이다. 이는 라멕이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증거이다. 두발 가인은 구리와 철 연장 등을 만들었다. 제조업에 손 을 댄 것이다. 청동기시대를 열었다. 각종 무기나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인류 문명사에서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 농업의 잉여생산물이 더 많아졌고 약탈이나 전쟁이 빈번했다는 증거이다.
라멕은 교만했고 재력과 힘을 자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상처 입힌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였다고 떠벌렸다. 또 라멕은 자신을 상하게 한 젊은이도 죽였다고 큰소리친다. 자랑은 교만이고 오만방자이다. 라멕의 삶은 가인의 후예가 보인 절정이다.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고 부를 축적했다. 목축업 제조업 문화 예술 등 산업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요즘으로 치면 문어발식 경영을 한 셈이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들 삶에는 하나님이 떠나 있었다. 이 때문에 죄의 늪에 더욱 빠져들었고 믿음의 후손에서 멀어졌다. 창세기는 라멕에서 가인의 후손을 더 이상 언급을 않는다. 말할 가치가 없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믿음이 실종됐고 하나님을 버린 후예들이라서다. 가인의 후손은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세대들이다. 그러나 산업을 고도화시켰다. 농업에서 목축업을 겸하다가 라멕 시대엔 제조업 문화서비스업까지 진출 했다. 농업자본을 상업자본을 거쳐 산업 자본화를 이룩한 족벌 기업이 됐다.
경제학에서는 산업을 1,2,3차 산업으로 분류한다. 이는 영국의 경제학자 클라크에 의한 분류이다. 1차 산업은 농업 광업 임업 목축업 수산업 등이다. 유전학적산업과 채취산업으로 분류할 수 도 있다. 시기적으로는 채집, 농경시대가 여기에 속한다. 1차 산업의 생산물은 쌀 채소 고기 등 주로 먹거리와 생활 위주 생필품들이다. 따라서 소득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수요가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 또 가격이 뛴다고 해서 소비가 갑자기 줄지도 않는다.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은 1차 산업이 주축이다. 2차 산업은 1차 산업의 원자재를 활용 또는 가공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업종들이다. 말하자면 각종 제조업들이다. 쌀 등 농,수산물과 임산물을 가공해서 먹거리나 종이 합판 등 소비재나 생산재를 제조하는 업종들이다. 생산재는 다른 제조 업에서 부품이나 소비재를 생산하는데 쓰인다. 또 전자 전기 제약 섬유 등 경공업, 노동집약산업이 2차 산업에 포함된다. 태양광. 지열발전과 자동차 제철 석유화학 조선 등 중화학 공업도 2차 산업에 들 어간다. 3차 산업은 유통 법률 세무 등 컨설턴트와 교육 강의 정보통신 금융 보험 문화 광고 등 각종 서비스업들이다. 3차산업은 어떤 제품이나 생산물이 없다. 보이는 것은 없으나 엄청난 이익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지식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업종들이다. 지식 산업이 대부분이다. 나라마다 경제가 성장하면 2,3차 산업이 커진다. 1차 산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특정 업체가 수산업은 물론 광고업까지 진출하는 문어발 경영은 개발도상국의 자화상이다. 과거 우리도 그랬다. 권력을 등에 업고 시장을 지배했다. 오직 재산 불리기에만 열중했다. 승자독식과 불공정거래가 판을 쳤다.
문어발 족벌경영은 결코 수명이 길지 않았다. 장수기업이 되지 못한다. 투명성, 공정성, 개방성이 결여되는 경영이라 그렇다.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공정경영 등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산업고도화와 경제성장 및 문화 문명발전을 부추기고 기여했다. 개발도상국이나 압축성장시대는 천민자본주의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족벌중심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상처를 남기고 서서히 퇴장했다. 가인의 후예들도 청동기시대를 열고 문화창조에 앞장섰으나 라멕시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하나님과 등지고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정직과 성실을 밑그림으로 믿음과 사랑의 경영을 바랐다. 약자와 이웃을 보듬고 공동체 발전을 위한 봉사와 희생, 사랑의 경영을 펴도록 권장했다. J
김민홍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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