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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2:4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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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42절-44절: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주님의 집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종들이다. 종이라 할 때 하나님의 일에 수종드는 모든 교인을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은 지혜로워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면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밥을 해 주는 사람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얼른 뛰어와서 식구들에게 밥을 해 줄 수가 있다.
우리 교인들은 시대적인 어둡고 밝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 교인들이 안 믿는 사람들처럼 불타질 세상 소원 목적, 눈에 보이는 가견적 소원 목적에 뜻을 두게 되면 어두워진다. 사람이 한 개인을 놓고 볼 때 학생들 같으면 배우는 그 쪽으로 머리가 트여져가고 아는 것이 많아야 하겠는데 그 배움을 갖지 않고 먹고 마시고 돈 쓰는 쪽으로 들어가 있다면 그 학생의 머리는 어둡다. 이치는 똑같다. 예수 믿는 사람은 머리가 맑고 밝아야 하는데 세상에 소원과 목적에 뜻을 두게 되면 어두워진다.
어두워지는 사람은 세상을 보고 원망 불평하게 되고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속에 병이 들게 된다. 그게 병이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사람의 정신이 예수님처럼 들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정성적인 건데 구더기가 똥 속으로 파고 들 듯이 사람의 소원 목적이 자꾸 땅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그 정신 자체가 병이다. 그 다음에 몸에 병이 오나마나 그 사람은 쓸모가 없어진다. 사람이 머리가 맑고 총명하고 지혜로워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건데 먹고 마시고 개인적 물질성적인 행복적인 누림에 정신을 쓰니 사람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일도 못한다.
네 가지 밭 중에 세상 염려 걱정 근심하며 ‘어떻게 먹고 마시고 살까’ 하는 것은 가시밭 마음이다. 마음 밭이 가시밭이면 가시가 사람을 찌르듯이 말 한 마디라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준다. 또 세상적으로 이치에 맞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고집이 센 사람은 네 가지 밭 중에 어떤 밭일까? 자기 밭은 어떤 밭이냐? 옥토 밭은 드물 것이다.
사람이 뭔가가 상종 못할 사람도 있느냐? 막무가내 어거지. 그 마음 밭에는 큰 바위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바윗돌 위에 무엇이 생산이 되겠느냐? 생산이 안 된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높은 산에 올라가 보면 큰 바위에는 나무가 심어지지 않고 이끼만 낀다. 그게 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끼가 끼면 보기 좋으냐? 그 이끼에 바윗돌도 썩는다. 이끼 뿌리가 굉장히 강하다. 세상만물 생태계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깨닫도록 해 주신다.
안 믿는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를 않는다. 왜? 하나님의 본질과 이질이요 타락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이요, 사람은 땅이기 때문에 질이 안 맞는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공부하고 깨달아져서 속사람이 성장이 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를 않고 교회마다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고 복 받자’ 하게 되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거다. 예를 들어서 학생들은 많은데 선생이 없다면 학생들은 깨달음을 받지 못하니까 그 머리가 어두워진다. 그러면 시대적 인물은 없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머리를,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고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차원으로 마음이 세상으로 돼버리면 교회가 어두운 거다. 교회가 어두우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돼 있다. 사람이 어리석어지면 희망이 없다. 결국은 살아갈수록 눈물과 고통과 한숨뿐이요, 그러다가 죽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 사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뉴스를 듣고 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던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건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올라가고 있는 건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볼 줄을 모른다면 영의 눈이 어두운 거다.
보통 보면 돈 많고 부자로 살고 직장 좋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하지만, 물론 그 자체는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속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얼마나 성장이 돼 있느냐’ 하는 그걸 놓고 ‘복 있는 사람이다. 없는 사람이다’ 말하는 것이다. 썩고 불타지고 바람 불면 날아갈 세상을 붙잡고 얼마나 오래 살 것 같으냐? 또 그 세상이 자기를 얼마나 붙들어 줄 것 같고, 자기가 그런 세상을 얼마나 붙잡고 살 것 같으냐?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안 믿는 사람들은 이방세상이다. 사람이 지식이 있어야 지혜가 나오는 거다. 지식이 없으면 지혜가 안 나오는 거다. 그런데 이방세상 일반세상의 지혜지식은 어디서 나온 거냐? 선악과 따먹고 나온 지식이다. 창:에 보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타락이 되어서 영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다. 우리가 그런 차원이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났다.
우리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우리가 그렇게 알 수가 있는 거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가 영육 결합체인지를 아느냐? 모르는 거다. 안 믿는 사람은 모르는 거다. 그러니 한 이치를 깨달아도 성경에서 깨닫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평생을 살아도 한 이치도 못 깨닫고 죽을 수도 있다. 예수를 믿어도 한 이치도 못 깨닫고 죽을 수도 있다. 여기서 교회의 가르침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다.
‘지혜 있는 종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사람이 미련하면 교회에서 못 가르친다.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어야 가르칠 수가 있다. 그리고 자기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는 선악과를 먹고 나온 그 지식의 기준을 가지고는 못 가르친다. 안 되는 거다. 그런 종들은 주님이 보내지 않았다. 일반 인간들 편에서 보면 대학원 나오고 박사 따고 한 목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구하라고 한다면 그거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이게 믿어지느냐? 세상의 말을 믿겠느냐, 성경대로 주님의 말을 믿겠느냐?
지식부터 성경대로 바꿔놔야 하나님의 지식이 들어가고 지혜도 들어가고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하는 지식부터가 성경대로 들어가 있지를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을 예수 믿어도 신앙 믿음이 못 자란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장로 목사 집사직분이 있어도 성경은 한 이치도 못 깨닫고 죽을 수도 있다.
예수님 당시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교인들 서기관 율법사들이 성경대로 한 이치라도 깨닫고 죽었을까, 못 깨닫고 죽었을까? 그들이 성경 액면적 표면적 지식은 달달 외웠을지라도 그 속에는 한 이치도 못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역사세계에서 사라졌다. 이방세상은 하나님도 모르고 믿지도 못하고 현실세계의 만족만 추구하고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바로 설 수가 있겠느냐?
집을 건축하려면 어느 바탕에 건축을 하느냐? 기초에 바탕에 세운다. 그런데 기초는 내버려 두고 엄한데 세우면 그 집은 금방 망가져 버린다. 사람이 설 수 있는 기초 기본 바탕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시니 그 위라야 사람이 바로 서는 거다. 이게 정확하다. 교회의 가르침이 그래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다 세우느냐? 예수 믿어 부자 되자고? 그렇다면 예수를 안 믿어도 부자 된 사람이 없느냐? 안 믿어도 부자 된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 그 부자는 예수님이라는 기초 위에 세운 것이냐? 이치를 모르면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속고, 속아도 속은 줄을 모르면 내가 또 다른 사람을 속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말씀이치를 모르면 안 된다.
사람이 바로 만들어지는 것은 신의 역사다. 하나님의 역사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 위에 세워지는 여기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들어간다. 그 질이 아니고, 그 기초가 아니고, 그 성격 성질이 아니면 여기에는 마귀의 역사가 들어간다.
마귀가 성경구절을 가지고 예수님께 시험을 걸었다. 그 이치를 갖고 와서 보면 오늘날 거짓된 목사들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서 교인들을 세상으로 가게 하는 것은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을 건 것과 똑같은 거다. 그런데 그런 마귀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아멘 아멘’ 하고 있는 교인이 많다. ‘예수 믿어 부자됩시다’ 하면 ‘아멘’ 하느냐, ‘불멘’ 하느냐? ‘복 복’ 하니까 얼마나 좋아하는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사람 복을 말한다. 복된 사람. 사람은 망나니인데 재산이 많은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냐? 사람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 재산은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이 휙 불면 너도 날아가고, 다 날아갈 수가 있다. 우리는 복된 사람을 알아야 한다. 젊으나 늙으나, 애나 어른이나 복된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내려 할 때 말하자면 사람 복을 보고 가겠느냐, 돈 많은 걸 보고 그게 복이라고 가겠느냐? 그 둘을 절반씩 섞어놓는다면 그게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 거기에다 이유를 붙이기를 ‘복된 사람에다가 재산이 많으면 더 좋지요’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의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 거냐? 육이다.
선을 딱 그어놓고 그 중앙에서 -쪽으로 넘어가 있다면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중앙에서 –쪽으로 가까이 떨어져 있는 거나 –쪽에 있다는 면에서 그 질은 같다. 그런데 사람이 이상하게 자꾸 자기 편리 식으로 생각을 하니까 ‘이 정도쯤이야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 속는 거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사람의 속의 소원 목적 이해타산 평가성 판단성 전부는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하는 허무한 쪽에 내려져 있다. 세상 자체는 참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상은 훈련장소다. 신앙 믿음을 키우는,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훈련장소다.
진리지식에서 나온 지혜는 잠:에도 있지만 하나님이 기초가 돼 있다. 자기가 그 기초 위에서 자란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지식은 생명이요 영생이요, 지식이 생명이고 영생이니 그 역사는 하나님의 신 즉, 성령님의 역사로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 잡된 것을 섞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치적으로만 따지고 생각하려니까 이 말씀이 딱딱하지만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 당신의 속성으로 인격으로 성품으로, 영원히 존귀영광의 사람으로, 영능의 능력 영능의 실력 영적 미모성 능력의 사람으로 만드는 역사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아는 지혜, 모든 사건과 환경과 물질을 사용할 줄 알고 활용할 줄 알고 이용해서 참 온전의 사람으로 주님처럼 만들어지는 것. 주님처럼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처럼 만들어지는 거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에 ‘우리의 모양과 형상대로’ 라고 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당신처럼 만들어지는 이걸 염두에 두신 게 들어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다.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질적인 면에서 그 마음과 정신이, 가치평가 도적성이 전부는 하나님을 닮아나가야 한다.
교육을 통해서 이렇게 인도하는 지혜, 다스려 나가는 지혜, 영원 궁극적 구원목적에 맞춰진 지혜. 그러니까 이 지혜는 이방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기초적으로 다른 것이다. 질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 것, 이방세상은 인간의 것.
하나님의 집에서 청지기가 될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의 진리에서 나온 지혜, 거기에서 나온 지식으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집에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의 종들을 맡아 따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청지기는 종 위의 실력 있는 사람이다. 그래야만이 주인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영의 양식, 생명의 양식, 진리지식의 양식을 나눠줄 수 있는 청지기가 되는 거다.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는 순전히 하나님의 것으로만 때를 따라 공급이 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서 바란광야 시내광야로 나가면서 시내산의 하나님의 말씀성을 들으면서 만나를 먹었는데, 하늘로부터 내리신 그 만나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왕궁에 가서 빌려다가 하늘에서 떨어뜨린 것이냐, 순전히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 것이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
성경은 개인이면서 교회이면서 목사이면서 교인에게 다 들어가 있다. 그러니 성경을 보면서 교회를 말할 수밖에 없는 거고, 목사를 말할 수밖에 없는 거고, 교인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안 믿는 사람을 끌어다가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는 순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때를 따라 주인이 주는 것처럼 주인의 것으로 주어야 한다. 주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서 가져온 것을 먹이면 탈이 생긴다. 주인의 것으로 먹이고, 주인의 의사단일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청지기는 재정관리 인사관리 사건관리 영인의 건강관리 주인의 집 살림살이를 총책임을 맡아서 하는 것이니 사람이 얼마나 진실하고 지혜롭고 부지런해야 되겠느냐?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바벨론에서 느브갓네살 왕 밑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총리가 된 다니엘이 있는데 이들은 참 영특하고 지혜롭고 총명하고 부지런하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면 ‘저 사람은 사장감이로구나’ 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돈 쓸 줄을 모른다면 그 사장은 일이 안 된다.
또 청지기로 말미암아 그 집 주인의 살림살이가 불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느 성경에 보면 청지기가 제 것이 아니라고 주인의 것을 허비한 청지기가 있다. 우리 모두가 청지기다. 또 다 종이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주님의 일이 잘 되도록 하려고 하고, 사람이 정신적으로 풍부하고, 지식적으로 풍부하고, 지혜적으로 풍부하고, 사람이 복된 사람으로 되는 그 일에 수종을 든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향해서 몽둥이를 들고 오겠느냐? 그런데 말대로 하면 쉬운데 그 말대로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주인이 언제 와서 보더라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너희들이 아니냐? 정말 질적 본질적 인격적 성품적으로 그래야 하고, 그렇게만 하고 있다면 주님이 언제 오셔서 보더라도 합격이 된다. 하나님 앞에 합격 될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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