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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약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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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약 1장 9절-10절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시간 속에서, 세월 속에서 지나가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거다.
부한 자가 부한 게 지나가면 가난이 온다. 부한 자가 자기에게 가난이 왔을 때 자랑할 게 없다면 자기의 부함도 언젠가는 날아갈 것이니 자랑할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세상의 지나가는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라는 거고, 또 하나는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영적인 부함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람 앞에 자랑할 게 없다는 거다. 이 영적 이치로 보면 아브라함이 물질적으로 부해진 것을 보고 자기도 물질의 부함을 원할 게 아니라 영적인 부함에 소원을 가져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을 모르기 때문에 물질이 부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부해졌다고 생각하고 자랑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도 비구원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에 된 거다. 즉 우리의 영적인 구원의 부함을 위해 하나님의 허락하에 우리로 영적인 면에 시기 나게 하는 거다.
사람들의 물질적인 부요나 이해타산은 믿는 우리에게는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물이다. 간단히 말하면 신령세계는 영원히 가고, 물질세계는 임시성이다. 그래서 임시적 가견적 현상적인 물질성을 가지고 아무리 자랑해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언젠가는 뒤바뀌는 날이 온다. 이걸 알고 영원한 것을 소원 목적하는 사람은 물질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허락하에 된 것이니 주신 물질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쓴다. 세상의 부요자는 남을 무시하고 깔보지만 우리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한다.
부자라고 할 때 물질부자가 있고, 영적인 면의 부자가 있다. 예수를 믿어도 신앙이 없는 사람은 자기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영적인 부자, 영적인 면의 깨달음의 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안다. 이 부요성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신령계에서도 부자다. 신령계에까지 부자로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아브라함이 물질부자였지만 자녀부자는 아니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미래의 축복이 들어있는 자녀를 받았다. 이것은 모형적 상징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은 거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거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자체화 되어있으면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미래가 있는 사람이고, 천국의 상속이 있는 사람이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은 거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될 수 있도록 키웠다. 10대 소년이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겠다는 신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신앙의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출발해서 3일 길을 가면서 서로 몇 마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 몇 마디를 늘리면 이삭의 일생의 사상이 나온다. 이 말 몇 마디 속에는 많은 성경구절이 응축되어 있으니 이것을 확대하면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가 한없이 나온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도리가 가득 들어있다.
성경 속의 인물 속에는 지혜지식성이나 도덕성이나 능력성이나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이나 이성 면이 들어있으니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육이 주격이 되어서 된 건지, 영이 주격이 되어서 된 건지를 알고, 또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서 어느 주격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 벧후 3장 10절-13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했는데, ‘그날’이란 마지막 심판의 날을 말한다.
믿는 사람이 마지막 심판을 모르고 있으면 깨어있는 사람이냐, 신앙이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냐? 빈틈이 있을 때 도적이 들어온다. 깨어있는 상태는 구별 분별이 들어가기 때문에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오지 못한다.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으니 말세인 지금 깨어있는 사람이 많을까,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많을까?
사람들이 신앙이 없어도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안다. 그러나 사람 속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원 목적은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가 많을 때 이 많은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가는 목적지가 같으냐, 다르냐? 다르기 때문에 계속 가다가 자기의 목적지로 빠진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관한 소원 목적이 이루어졌다면 이 소원 목적을 계속해서 더 크게 가지면 계속해서 그 소원 목적이 이루어지느냐? 안 된다. 그러니 그런 것에 빠지지 말아라. 집이 크면 무너지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듯이 부자가 망하면 그 망함이 더 크다.
우리는 세상에 목적을 두지 말고 하루하루 이룰구원을 부지런히 이뤄가라. 오늘 최선을 다하고, 또 내일을 주면 내일 또 이뤄가는 거다. 오늘 하나님 앞에 재앙을 쌓아놓았는데 하나님께서 내일 눈을 뜨지 못 하게 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다. 그러니 허황한 꿈을 꾸지 말아라. 이게 이룰구원의 사상이다. 이룰구원은 자기의 현실에서 이루는 거다. 오늘 할 일은 안 하면서 자꾸 미래적으로 소원하고 사는 것은 어리석다. 내일은 너의 날이 아닐 수도 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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