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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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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15] 엥겔지수 = 육식허용
김민홍 2021.03.15
“육식위주 식생활과 외식비지출 증가
생명존중과 동식물 사랑의 지혜요구”
보릿고개는 배고픔이다. 동구 밖 언덕길이 아니다. 서러움과 가난의 대명사이다. 그때는 보리 팰 무렵이면 집집마다 식량이 떨어졌다. 그 순간을 넘기기가 하도 어려웠기에 보릿고개라 불렀다. 시인 황금찬은 보리 고개 밑에서 아이가 외할머니도 온 가족이 울었다고 읊었다. 배가 고파서 울고 서러워서 울었다. 보리는 생명력이 강하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후 이른 봄 파란 생명의 빛을 선사한다. 생존경쟁에서 이겨낸 곡물이다. 춘궁기 들녘의 청보리에서 농부들은 고달픔을 달래는 마음의 양식이 됐다. 아이들도 덩달아 보리밭에서 노래를 부르고 추억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살기 위해서 밥상을 찾지 않는다. 식탁을 즐기기 위해서 맛집을 기웃거린다. 먹방이 인기이고 식도락가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집밥보다 외식을 더 좋아한다. 먹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이 쓴다. 보릿고개는 이젠 전설이다. 웰빙시대 보리밥은 먼 향수를 자극할 뿐이다. 보리밥은 건강식품으로 올라섰다. 이제 보리는 다른 곡물보다 귀하고 값도 비싸다. 보리밥은 맛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다. 유기농 음식만을 찾아다닐 정도로 우리의 식생활 문화도 변했다. 육식 은 멀리하고 채식을 더 가까이 한다. 음식의 양보다는 질을 따지면서 한술 밥을 즐긴다.
노아홍수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밥상은 오직 채식이었다. 고기가 한 점 없었던 웰빙 식단이다. 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육식을 허용했다. 식생활 개선이고 밥상의 혁신이다. 홍수 이후 노아 가족들 밥상 위엔 양, 소 등 고기가 올랐다. 그제서야 단백질을 보충했고 인류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했다. 하나님은 홍수 뒤처리 과정에서 노아가족을 위로 하고 축복을 내렸다. 생육과 번성으로 온 땅을 채우라고 명령했다. 홍수를 이겨내고 육지에 첫발을 내디딘 노아가족의 불안감은 이렇게 씻어 주었다. 하나님은 노아가족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갔다. 인간들에게 동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주고 그 동물을 먹도록 허락한 것이다. 다만 그 동물의 피까지 먹지 말라 했다. 피는 생명이다. 피까지 통째로 못 먹도록 한 까닭은 생명존중에 있다. 비록 음식으로써 고기를 먹고 건강을 유지하지만, 생명은 아끼라는 명령이다. 생명은 신성하고 존귀하므로 살상은 금지했다. 이 연장선에서 살인과 자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행위가 된다. 특히 살인은 그 대가를 엄하게 다스렸다. 살인자는 죽 음으로 되갚을 정도로 엄격하게 금지했다. 살인자에 대한 사형제는 여기에서 그 논리적 근거를 찾는다. 자살도 그렇다. 하나님은 자살도 금기시했다.
동시에 하나님은 노아와 약속을 했다. 앞으로 다시는 물로 인간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여 주었다. 무지개가 뜨는 한 인류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됐다. 비가 쏟아진 후 먼 산 위에 펼쳐지는 무지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구원의 약속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면 행복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언약이 떠올라서다. 이제 인류는 적어도 홍수로 인한 궤멸은 사라졌다. 인류는 하나님의 물 심판엔 떨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약속은 그대로 실천 됐다. 노아가족은 샘과 함 그리고 야벳을 통해 온땅으로 퍼져 나갔다. 노아는 농사를 지었다. 포도밭도 일구었다. 포도주를 생산 했다.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로 만취했다. 노아는 양고기에다 자신의 밭에서 만든 포도주를 즐기는 등 식도락가가 됐던 모양이다.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실수가 찾아온다. 노아도 그랬다. 의인 노아가 큰 실수를 했다. 기름진 육식과 포도주의 알콜은 노아의 영혼을 망가뜨렸다. 노아가족의 비극이다. 산해진미와 식도락은 건강을 부추겨 주지만 영혼은 망치는 마약이나 다름없다. 성경엔 노아의 취중실수 내용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샘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감싸고 못 본채 했다. 그러나 함은 달랐다. 함은 아버지 실수를 까발리고 떠들어댔다. 술이 깬 노아는 함을 저주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하는 희한한 사건이 일어났다. 반면에 셈과 야벳에겐 축복을 듬뿍 내렸다. 함의 후손은 그 후 하나님을 멀리하고 가나안 족속의 뿌리가 된다.
우리들 선조들은 채식을 권장했다. 밥상은 거칠었다. 반찬도 세 가지 이상을 올리지 않았다. 식생활만큼은 검소했다.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자들이 됐다. 그것은 먹거리가 절대 부족했던 탓이기도 했다. 식도락을 금기시했고 미식가들이 드물었다. 살기 위해서만 먹었다. 이제 우리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집밥보다 외식을 더 좋아한다. 버는 돈에서 먹고 마시는 식탁의 몰빵 문화가 성행 중이다. 엥겔지수는 식생활을 재는 바로미터이다. 어떤 개인이 쓰는 돈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비에만 들어가는 돈의 비율을 가늠하는 지수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전체 소득 중 음식료품에 쓰는 돈의 비율이 낮아진다. 반대로 저소득층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말 독일 경제학자인 엥겔이 알아냈다. 해서 이를 엥겔법칙이라 한다. 엥겔지수는 여기서 만들어진 수치 말한다. 먹거리는 인류의 삶에서 필수품이다. 소득이 많고 적고는 따지지 않는다. 누구든지 하루 일정량은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난한 가계라 하더라도 반드시 일정금 액은 식료품비로 지출해야 하는 법이다. 엥겔지수는 소득이 높아지면 기준점인 1에서 점차 낮아진다. 보통 엥겔지수가 0.5를 넘어서면 후진국으로 친다. 반대로 0.3이하이면 선진국이다. 그 중간인 0.3서 0.5의 국가를 개발도상국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 엥겔지수엔 맹점이 있다. 먹방에서 즐기는 외식비는 음식료품비에서 제외했다. 요즘처럼 외식이 일반화됐고 먹방 시대 문화에서는 다소 맞지 않는다. 음식료품 구입비가 외식비보다 낮은 가정이 허다해서다. 이제는 엥겔지수에 외식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수용해야 될 판이다.
채식주의와 오가니 제품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육식문제만이 아니다. 동물사료와 유전자조작 제품 출시가 한몫 거들었다. 특히 과다하게 뿌려지는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도 우리들 식탁에는 빨간 신호이다. 육식과 산해진미는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하나님은 인류의 건강과 번창을 바라면서 육식을 허용했다. 그런데 인류의 수명은 해를 거듭할수록 단축되어 왔다. 인류가 저지른 비극이다. 생명존중과 동식물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J
김민홍 cnews1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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