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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성소로 자리 잡기를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떠올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게 절실하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절실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게 절실하다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절실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19의 시간을 보내며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 <성서일과>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교우들과 성서일과를 나눴습니다. 믿음의 근저가 흔들리는 듯한 시간을 보내며, 그래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나무 꼭대기에 올라 살아있는 동아줄을 기다리는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서일과>를 적어나갈 공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것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공책이 책이 된 셈입니다.
오래 전 태백의 검용소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표지판도 없었고, 길도 험했습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제법 산 중턱으로 올랐을 때, 거기 숨은 샘이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맑은 물, 검용소는 한강의 발원지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검용소와 같아서 받아들이기에 따라 생명의 발원지가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성서일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채워가야 하는 형태의 책이 드물어서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좋은 의도로 책을 만든 <꽃자리> 한종호 목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꽃자리>가 비용 걱정 없이 책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책을 나누면 좋겠다 싶어 여러 권을 주문할 경우 제게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두어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 속에 담긴 <성서일과>는 2022년 7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본문입니다. 따로 날짜를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위의 날짜에 맞춰 <성서일과>를 따르면, 더욱 제 걸음을 걷는 셈이 됩니다.
책 안에는 사족(蛇足)과 같은 날마다의 묵상이 담겨 있습니다. 오른편에 놓여야 마땅함에도 왼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배려의 마음 때문입니다. 글씨를 쓰기에는 책의 오른쪽 면이 편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지만 묵상을 할 때는 순서를 바로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서일과> 본문을 정성껏 읽고 자신이 묵상한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꼭 먼저 하시기를 권합니다. 묵상을 모두 마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앞에 놓인 묵상을 읽으시면 저도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날마다 구별된 마음으로 말씀을 마주하는 시간이, 마침내 시간의 성소(聖所)로 자리 잡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2022년 6월 17일
정릉에서, 한희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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