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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시편 8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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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처해있는 상황은 절망적인데 시인의 기도는 희망의 언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궁지에 처한 약자의 다급하고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에 터한 선견자의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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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화를 꿈꾸며 실천하는 주님의 백성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편은 레위 지파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모두 열두 편의 시를 썼습니다(50편, 73~83편).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양 봉사자로 언약궤 앞에서 제금을 켜는 연주자이자 악장이었으며(대상 15:19, 16:5) 선견자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대하 29:30). 유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그의 자손들은 성전 기공식에서 찬송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스 2:41, 3:10, 느 7:44).
아삽의 시편은 대개 원수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과 응징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시에 묘사된 정황이 역사적 실제를 다루는 것인지, 아니면 시적 표현을 위한 묘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은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위험에 빠지기일 수였다는 점입니다.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83:6~8) 바빌로니아가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유다 멸망 전의 기록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주변 나라들이 서로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겁도 없이 함부로 ‘하나님의 목장을 취하여 자기 소유’로 삼았습니다(83:12).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지만 나라 사이에는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한국와 일본 등 국경을 마주한 나라 가운데에 사이가 좋은 나라보다는 앙숙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스라엘이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연합국을 의지하다 보면 힘의 향배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 있었겠으나 낙동강 오리알처럼 고립무원의 처지이니 하나님의 개입만이 이스라엘의 희망이었습니다. 시인은 이방 동맹국의 파상적인 공격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향해 확신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83:1) 이스라엘이 처해있는 상황은 절망적인데 시인의 기도는 희망의 언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83:16) 이는 궁지에 처한 약자의 다급하고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에 터한 선견자의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승리를 눈에 본 듯한 확신으로 적들의 멸망을 예고하는 시인의 모습이 특별합니다. 신앙의 세계관이란 이런 것입니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며, 오지 않은 승리를 예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83:18)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기대하는 믿음을 유지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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