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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독
시편 8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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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없는 삶은 없지만 고난을 통하여 자기 성찰과 성숙에 이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난 당할 때 불평하는 것은 동물적 감각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기를 성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영적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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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화를 꿈꾸며 실천하는 주님의 백성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나는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착한 분이었지만 가난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만 가난한 것이 아니라 모두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늘 배가 고팠지만 그래서 밥때가 언제나 반가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가난한 것이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만일 그때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면 “가난한 애들이 노력으로 명문대 가는 폐단을 근절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어느 강남 사모님의 말씀에 분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등이 시린 기억이기도 하지만 인생에는 더없이 좋은 선생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난 없는 삶은 없지만 고난을 통하여 자기 성찰과 성숙에 이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난 당할 때 불평하는 것은 동물적 감각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기를 성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영적 감각입니다. 신앙인은 가난과 궁핍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며 작은 은총에 깃든 감사의 금맥을 찾는 혜안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여 더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더 따스한 인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과 궁핍은 하나님의 은총의 바다에 이르는 샛강입니다.
오늘 시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고라의 시편이 이어지는 가운데에 난데없이 삽입된 ‘다윗의 기도’가 의아합니다. 다윗의 기도는 시 72:19에서 끝났는데 무슨 이유로 다시 등장하는지 모르지만, 그 의문은 성경학자들의 몫으로 미루고 오늘의 시편을 음미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가난하고 궁핍하며, 경건하고 주를 의지하며, 기도하고 주를 우러러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은 고난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포악한 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여 응답하시고, 생명을 지켜주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86:6~7)
풍요의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난한 이들이 패배감에 젖지 않고 희망을 이어가기 바랍니다. 번영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작은 풍요에 정신 줄을 놓지 않는 의연함이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고난과 역경이 신앙과 인격의 좋은 학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자녀 세대와 이 땅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독을 복으로 변환하는 능력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 저의 가난 경험이 제게는 복이었습니다. 저희 자녀 세대들의 풍요가 독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부할수록 겸손하여 가난한 자의 안타까운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찬송: 449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t9PtqaEALV0
2022. 6. 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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