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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함이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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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1세대의 탁월한 신학자들을 수식하는 말로 ‘자유주의 신학과 싸운 보수주의 신학자’라거나 ‘근본주의 신학에 맞선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설명을 자랑스러워하는 풍조가 한국교회의 척박한 신앙풍토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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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진리를 붙잡고 역경을 헤쳐가는 주의 제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완고함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 가운데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대부분이 완고함 때문이며, 교회 역사 속에서 복음 전통을 잇기보다 교회 권력에 치우친 이들의 특징도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시험당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3: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하라.”(3:13)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3:15, 4:7) ‘완고하다’는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다는 뜻입니다. 개역 성경에서는 ‘강퍅하다’고 번역했는데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는 뜻입니다. 고지식하다, 고루하다와 상통합니다. 완고함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입니다(삼상 15:23)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누구라도 그 구원에서 제외된 자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완고한 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함부로 정죄하고 배제하고 이단시합니다. 자신의 신학과 신앙 지식을 논리에 근거하여 정리하고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이의 신학을 판단하고 폄훼하고 저주하는 것은 완고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절대화의 늪에 빠지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완고함을 명예와 치적으로 삼습니다. 나는 그것이 완고하다는 말에 담긴 신앙의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1세대의 탁월한 신학자들을 수식하는 말로 ‘자유주의 신학과 싸운 보수주의 신학자’라거나 ‘근본주의 신학에 맞선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설명을 자랑스러워하는 풍조가 한국교회의 척박한 신앙풍토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자일수록 남의 구원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구원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다른 이 역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총으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선과 악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믿으면서도 다른 이를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대성의 마음을 가진 이에게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4:1 새번역)
하나님, 완고함에 빠지기 쉬운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웃과 상대를 대할 때 너그러움과 긍휼의 시선을 주십시오.
찬송:347 허락하신 새 땅에
https://www.youtube.com/watch?v=aP9jMEtGnZQ
2022. 7. 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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