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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5: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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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2021. 7. 6. 교회설립 14주년 기념 주일예배 설교) |
성경 : 고전15:9-10
제목 : 하나님의 은혜
찬송 : 383(433), 310(410), 305(405), 302(408)
고전15: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늘 주일은 우리 들풀쉼터교회 설립 14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14년 전 저는 교회에 대한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내 삶의 전부와 같았던 교회에 계속해서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였습니다.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교회의 행태에 대한 존재 이유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가 생각하던 교회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저 같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자랑할 것 없는 어린 저에게 한 줄기 빛이었고, 내가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갈 소망이었습니다.
저는 바울사도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1:15)라는 말과 같이 완전하지 않은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교회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 가는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교회가 되도록 힘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무엇을 구별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마저도, 죄인 중에 괴수 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누가 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그 사랑을 이루신 주님께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 조금이라도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힘을 다하려고 할 뿐입니다.
저는 교회도 이와 같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만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한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랑은 말뿐이고 형식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자기들만의 왜곡 된 사랑이었습니다. 내편 네 편이 있는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린 교회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합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려고 하고, 모든 교회가 눈에 보이는 성전을 화려하게 건축하려고합니다. 성전 건축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 또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고,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조금만 목사의 뜻을 거스르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찾는 것은 세상의 양식이 아닌 하나님의 양식, 복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계17:22절에‘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말씀하십니다. 사55:1절에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얻는 구원과 하늘 양식은 값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3:13절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5:19절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말씀합니다.
그럼에도 하늘 양식인 하나님의 복음을 헌금으로 사고팔려는 무지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사는 대가(代價)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요할 수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눅21:1-4절에 부자들과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십자가 사랑은 뒷전이고, 세상 적이고 물질 우선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천국에 가는 꿈 이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진리 되신 주님의 복음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눅4:16-19절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성경 사61:1-3절 말씀을 인용하여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온 갈릴리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마4:23, 마9:35)을 고쳐 주셨으며,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마11:5)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나라에 올라 가시기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하시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제일 된 목적이고, 억압 받는 사람을 자유하게하고, 눈 먼 사람을 보게 하며, 영과 육이 병든 이들이 치유함을 받아 깨끗함을 얻어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 보다는 진리가, 가난하고 살아가기 힘이 들지만, 탐욕을 부리며 살아가기 보다는 서로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섬기는 교회, 미움보다는 주님께서 사랑 받은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나누는 이웃들이 되고, 이 세상을 주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이끌어갈 진실하고 참 된 후대들을 양성하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20-30대 젊은 나이에는 교회 주일학교에 힘을 다했고, 40-50대 장년에는 말씀에 바로 선, 교회를 위해 힘썼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변명 같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이 막힌 답답함, 그래서 장로가 되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장로가 되었다면, 교회에서 싸움 닭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 교회를 왜 나가야하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목회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지, 내 스스로 판단 한 것인지, 지금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울사도처럼 다메섹에서 주님께서 말씀 하셨다 거나, 고후12:7절 말씀 같이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가, 주님 앞에 완전 할 수는 없지만, 주님 앞에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께 최소한 진실한 목사가 되기 위해 힘쓰는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가 목회를 생각하면서 마음에 다짐한 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는 진실한 주의 종이 되자. 두 번째,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하나님만 바라는 목사가 되자, 세 번째, 후대들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교회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목회가 이제 교회 설립 14주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 같으면, 교인 수만 해도 몇 백 명은 되어야 자랑이라도 할 터인데, 우리 교회는 그런 자랑은 해 본 적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고, 성도님들에게 약속한 복지관도, 우리 후대들을 위한 장학금도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교회 임대료나 급여 및 일반적인 경비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고 나누며 섬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이었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하신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세상 욕심 부리지 않고, 우리 성도님들이 항상 강건하여,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후임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잃지 않고 하나님 허락하시는 시간 까지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으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가 힘들 때 불러보곤 하는 복음찬양 ‘하나님의 은혜’찬양 시 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 나 주저함 없이 / 그 땅을 밟음도 /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은혜’(恩惠; grace)의 사전적 의미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하나님의 은총, 고마움’을 나타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푸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은총·자비·인자·인애 등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는 예수님 말씀과 같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모든 선한 역사를 이루시는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마지막 호흡이 다할 때까지, 우리를 붙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공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것임에도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공기가 미세먼지로 오염이 되면, 더 이상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은 무엇 하나도 없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에 감사가 넘치기 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쌓여갑니다. 이럴 때 일수록 주님께 기도하고 서로 사랑해야하는데, 자신의 건강과 삶을 위해서 힘쓰다보니, 주님께 감사하고 형제와 이웃을 돌아보는 데는 더욱 인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주님과 멀어지고, 우리가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와 주님의 은혜는 잊혀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함이 없는 인생은 불평과 불만과 의심만 가득한 삭막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송경민 시인의 ‘은혜’라는 복음 찬양입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에 노을, 봄에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시인의 시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임을 늘 감사하며 사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받았다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도 무엇인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웃과의 좋은 관계가 유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사람, 그래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게 될 때, 좋은 이웃이 되는 것과 같이,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에 당연한 것처럼 받기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은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충격으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예배도 대면 예배는 교인 수의 제한을 받았고, 전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교회는 큰 위기상황이고, 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들풀쉼터 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심을 믿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모이고 큰 교회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위기에 쳐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가 더욱 강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믿습니다.
우리 들풀쉼터교회가 지나온 14년은 코로나 보다 더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 모든 시간과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평생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 성도님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코로나 위기에도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이 은혜라는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하심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 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꿈꾸며 살아야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고, 꿈이 없는 백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주님 기뻐하시는 꿈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행2: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젊은이들은 내일에 대한 소망을, 노인들도 남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나님의 선한 꿈을 품고 살아가야합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인 나이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새로운 꿈에 도전하므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행20: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백 하였고, 히10:38절에‘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물러서지 않으며,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 일지라도 그 믿음으로 태산을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이해인 시인의 ‘감사하는 마음’에 나오는 글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 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삶의 비결이랄까, 요즘 들어 노력하는 것 중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첫째, 무엇을 달라는 청원 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더 많이 하려 합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둘째, 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장으로 열리는 느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는 것도,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보는 것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얼마나 큼 감동인지 모릅니다.
셋째,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씁니다.
부탁받은 일들을 깜박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다른 이의 신발을 내 것으로 착각해 한동안 신고 다니던, 나를 오히려 웃음으로 이해해 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웁니다.
넷째,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에는, 흥분하기보다 ‘모든 것은 다 지나 간다’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 얼른 마음을 바꾸면 어둡던 마음에도 밝고 넓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우리 들풀쉼터교회 14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꿈과 선한 역사를 이루며,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은혜 안에 강건하며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 교회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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