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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길을 걷는 사람들
히브리서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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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은 자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종교의식이나 전통에 따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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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진리를 붙잡고 역경을 헤쳐가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청동기시대 무렵부터 인류 공동체에 계급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농업혁명 이후 채집과 사냥이라는 단순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면서, 강이나 해변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군사가 필요하였고 여러 이해관계의 충돌을 적당히 조율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역할자가 필요했습니다. 피지배자는 지배자에게 복종하고,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국가 공동체는 그렇게 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동체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때 인류는 세속사회를 탈출하여 고립적이고 엄숙한 공동체를 꾸립니다. 쿰란공동체가 그런 경우입니다. 아니면 현실 사회에서 개인적인 쾌락주의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아테네의 에피쿠로스학파가 그런 예입니다. 어디에도 구원은 존재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히브리서의 일차 독자들이 처한 상황이 그랬습니다. 유대 정치공동체는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지켜줄 힘이 없었습니다. 구원이 애타게 그리운 시점이지만 유대 종교가 행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동물 제사가 과연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습니다. 이런 때에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해석하는 문서가 있었으니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10:19~20 새번역)
그리스도인이란 살길에 들어선 자들입니다. 영적 안목으로 사람들을 보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또는 살길을 걷는 자와 죽을 길을 걷는 자가 있을 뿐입니다. 살길을 걷는 자의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규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새번역) 전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 서로를 경쟁자와 적으로 인식하던 때가 있었지만 살길을 걸으면서부터는 피차 격려자요 응원자요 한길 가는 길벗이 된 것입니다. 살길을 걷는 순간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 얻은 자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종교의식이나 전통에 따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서로를 긍휼한 마음으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삶을 살아낼 능력을 주십시오.
찬송 : 363 내가 깊은 곳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OY5sTX_r7Q
2022. 7. 17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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