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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욜로 시대의 믿음
히브리서 11: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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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이런 시대 가운데 서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과 수고와 아픔은 잊힌 말이 되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에 교회도 행복한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현실의 행복보다 미래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관입니다. 믿음은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초월의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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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진리를 붙잡고 역경을 헤쳐가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욜로(YOLO)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없이 즐기라(You Only Live Once)’는 신조어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현재만 생각하고 즐겁게 살라는 논리는 현대 사회의 거센 조류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막연히 기대하지 말고, 이상적 삶의 꿈을 접으라는 말로 들립니다. 세계 경제 7위의 나라이면서도 행복지수는 이에 따르지 못하니 젊은이들에게 이런 사조가 유행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의 현상만은 아닙니다. 역사에서 언제나 있는 일이었습니다. 가까이에는 군부독재 시절, 오지 않을 민주화를 위해 괜한 힘 낭비하지 말고 굴욕스럽더라도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지혜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기다려도 오지 않는 독립을 애타 하지 말고 친일하며 적당하게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처세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꿈과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민주화와 해방이 오지 않았다면 그 말은 맞는 말이 될 뻔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와 지중해와 오리엔트가 헬라제국 아래 놓이면서 철학의 고향인 아테네는 쾌락주의로 방향을 선회하였습니다. 현세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일면 긍정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적 방관자의 자세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이런 시대 가운데 서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과 수고와 아픔은 잊힌 말이 되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에 교회도 행복한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현실의 행복보다 미래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관입니다. 믿음은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초월의 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11:36~37 새번역)
나는 행복에 발목이 묶여 믿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목사입니다. 설교는 세파에 시달린 교인을 위로하는 수준에 머물기 일쑤인데, 그것도 잘못합니다. 더 큰 이상과 꿈을 말할 수 없습니다. 고통과 역경을 헤쳐나가자고 설득할 자신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대하며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럽습니다. 나는 못난 목사입니다.
하나님, 욜로의 유혹을 벗어날 믿음을 먼저 제게 주십시오. 바른 믿음을 가르칠 담력 주시고, 현실 너머 초월의 세계를 향한 안목을 주십시오.
찬송:336 환란과 핍박 중에도
https://www.youtube.com/watch?v=56Pi6dduQIw
2022. 7. 22 금
댓글 '1'
김봉진 목사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32절)
사사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던 나라들과 싸워 이겼고, 기드온과 바락,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믿음으로 나아갔고, 믿음으로 다니엘과 삼손과 다윗은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믿음으로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의 세력을 멸하고 풀무불 속에서 머리털 하나조차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다윗과 엘리야와 엘리사는 대적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생활을 견뎌냈고, 믿음으로 흠 많고 연약한 사사들과 소외된 막내이자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이 내리신 능력과 용맹으로 대적의 진을 격파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합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35절)
믿음이 우리에게 세속적인 성공이나 안전, 안락함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헛되지 않은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39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40절)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전에 살았기에 증거를 받았으나 더 좋은 언약과 더 좋은 소망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제사로 인한 성취의 때를 사는 우리는 그 약속의 실체를 알고 있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온전한 순종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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