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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인간, 신학적 인간
시편 8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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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학파는 이성이야말로 슬픔과 고난의 의미를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숙취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할 때 철학적 인간이 됩니다. 이유 없이 당하는 고통 앞에서 그 이유를 성찰하고 묵상할 때 우리는 신앙적 인간이 됩니다.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기도하며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은 그 고난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으시므로 인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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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구원의 기쁨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덧거친 세상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평화와 공의를 추구하는 하늘 백성 가운데에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고대 그리스철학의 에피쿠로스학파는 육체에 고통이 없고, 영혼에 불안이 없는 평정 상태를 삶의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이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무엇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아타락시아에 이르기 위하여서 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 이후에 대한 염려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치를 멀리하고, 소유는 최소화하며, 신뢰할 친구를 사귀고, 고통은 있지만 길지 않으니 인내하며, 덕행을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이성을 갖추라고 합니다. 사람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학적 사유와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성이야말로 구원의 지름길인 셈입니다.
오늘 시편은 매우 우울합니다. 시편에서 가장 어두운 시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시를 ‘영혼의 겨울 풍경’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표제어 <고라 자손의 찬송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 르안놋에 맞춘 노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고통의 노래가 어떤 배경에서 씌였는지 그 저작 시기와 배경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편에서는 시와 노래에 묵상과 교훈의 기능이 더해진 형태를 ‘마스길’이라고 합니다. ‘마할랏 르안놋’은 슬픈 곡조를 뜻하는 음악 용어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편을 ‘고통스럽고 슬프기는 하지만 교훈을 가진 고라 자손의 노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88:14)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슬픔을 피하려 합니다. 그렇다고 즐거움과 건강이 늘 행복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계속되는 햇빛은 대지를 사막화하고 바닷물은 갈증을 더 촉발합니다. 피하고 싶은 고통이 때로는 그것이 감사와 찬송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말기 암 환자가 쓴 병상 일기는 고통 중에 있는 환우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길은 처음 걸어간 발자국이 반복될 때 또렷해집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이성이야말로 슬픔과 고난의 의미를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숙취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할 때 철학적 인간이 됩니다. 이유 없이 당하는 고통 앞에서 그 이유를 성찰하고 묵상할 때 우리는 신앙적 인간이 됩니다.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기도하며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은 그 고난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으시므로 인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 고난과 역경의 심연에서도 묵상하며 성찰하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끌어주십시오.
찬송: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https://www.youtube.com/watch?v=FghQYw8kVb4
2022. 7. 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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