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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93 추천 수 0 2022.08.07 13: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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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54-5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54-59: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58-59: 이 말씀을 영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앙 사상적 정신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상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을 해 보자면 어떻게 죄를 지었던 간에 내가 죄를 지어서 고소를 당하게 되면 피해자가 나를 데리고 법관에게 가기 전에 화해를 하는 게 유익하다. 화해를 안 하고 있다가 결국 재판장에까지 가서 무거운 형벌을 받아 옥살이를 하고 나온다면 일생은 다 지나가게 되고, 가족들은 산산이 흩어지고, 재산도 다 없어진다. 지혜롭지 못해서 허무한 인생으로 마치게 된다.

 

만일 예수 믿는 사람이 이방인과 싸우는 게 아니라 믿는 사람과 싸워서 세상 법관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에 무슨 칠을 해 놓는 격이냐? 그러느라고 자기 일생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믿는 사람으로서의 인격의 수치감, 그 부끄러움.

 

요즘 유명하다는 목사님들이 세상법정 앞에 서는 일이 많은데 믿는 사람이 그렇게 됐으니 이단자들에게 손가락질할 새가 있느냐? 예수 믿는 이치를 모르면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된다. 못 배웠다고 하면 못 배워서 그러려니하겠는데 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인격자로 도덕성을 가진 자로 자유자로 산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 자기인데 이것을 인식을 하고 사는 건지?

 

계시적으로 우리 인간은 신불신간에 지음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입김으로 살도록 지어졌고, 일반 자연혜택과 특수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면서도 이것을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 기준에서 보여지는 세상 물질성적 위주로 들어가 있다면 자기가 현재까지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모르는 거다.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 말속에는 세상과 육신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자기의 신앙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보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인간은 신불신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데, 처음 인간은 하나님께서 구두로 말씀하신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 명령에 불순종이 되어서 타락한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떠난 타락된 인간이 되기는 했지만 죽기 전까지 타락된 양심으로 선악을 저울질하면서 사는 것이다. 언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자기에게 전해질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후에는 구원의 예수님을 믿으면서 말씀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영능의 실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이뤄가는 것이니 이것이 자기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학교에 들어갔으면 공부의 실력을 쌓듯이 예수학교에 들어왔으면 예수님을 많이 알아야 한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말씀으로 통한 구원도리 구원이치 구원의 실력을 알아야 사람이 꼬리가 안 되고 머리가 된다. 모른 채 배짱가지고 머리가 되는 게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모든 이단자들을 판단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앞에 누가 있더라도 가르칠 수 있는 영계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거짓 종의 행세를 하면서 영계 지도자라? 영성이라? 그런 걸 영성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 전에는 영성 영성하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근간에 영성 영성하는 목사가 많다. 이건 교파초월로 들어가 있다. 영성이 뭐냐? 진리가 없는 영성? 성경은 특별계시다. 그런데 성경을 역사적 액면적 표면적으로만 말하면 그건 은밀계시를 모르는 거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말을 하게 되면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놓는다.

 

제사장들은 양 잡아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요구하는 걸 은밀적으로 100% 다 지켰다. 말하자면 죽을 각오를 하고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지공법에 만족을 드리는 삶이라는 의미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사셨다. 예수님께서 죄가 있어서 날마다 죽겠느냐?

 

우리는 진리생명의 말씀을 영접하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기준으로 세우고 타락되고 불완전한 자기 양심의 기준은, 세상지식을 기준으로 하는 신앙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신앙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이 참 많다. 무슨 말이냐? 예수 믿는 것을 이방인들이 신을 믿는 것처럼 기독교인도 그런 식으로 신앙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대상이 예수라는 것만 생각을 하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자기의 목적이 그 분의 목적과 단일성이냐하는 이건 모른다. 내 쪽에서 내가 요구하는 조건대로 이뤄달라는 식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다. 이건 이방신관과 똑같다. 예수를 이방신처럼 믿고 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진리지식으로 말씀지식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들어가는 건 없다. 성경구절이나 자꾸 외우려고 하지 외우려고 하는 자기 속의 신앙의 질은 세상 판이다. 40일 금식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그 사람의 양심은 소원 목적성은 세상 판이다. 세상의 질이다. 우리는 이걸 따져야 한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따져야 한다.

 

밭에 씨를 심으려면 흙을 갈아엎어야 한다. 속을 갈아엎어야 한다. 예수 믿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신앙양심을 갈아엎어야 한다. 신앙한다고 하는 나의 양심이 내 주관성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객관성으로 된 하나님의 마음처럼 들어가 있는 내 양심인지? 이게 다르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거짓과 이단자들만 손가락질하지 말아라. 이단은 아니지만 정통교회에 다니면서도 거짓적인 신앙자가 많은데, 이 거짓은 그 속성이 이단과 같다. 그래서 거짓은 이단과 손을 잘 잡는다. 그래서 예수 믿는 교회에서 이단자가 나오는 것이다. 절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들이 세상에 속한 거짓된 복음이 많다. 이건 저주받는 다른 복음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간단히 말하면 거짓 신앙이란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물질의 소원 목적성이 잔뜩 들어있는 것을 말한다.

 

이걸 조금 더 나눈다면 기독교인이면서 종교성적으로 들어있는 것도 거짓 신앙에 속한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자가 자기 속에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을 잔뜩 가지고 있는데 이게 뭘로 둘러 씌워져 있느냐 하면 예수라는 이름으로 둘러 씌워져 있다.

 

거짓 종이 뭐냐? 예수이름으로 세상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자가 거짓 종이다. ‘예수이름으로 복 받아라하면 그 질은 세상성인데, 사람이 이 목적을 가지고 살면 인격 면에서 그 사람은 죽는 거다. 하나님의 심판에 떨어지는 거다. 이게 세상 넓은 길이요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속성이다. 그런데 이런 걸 예수이름으로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 거짓 종이다.

 

말세 된 오늘날 교인들 속의 속성이 맨 세상판이다. 그러니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타락성적인 성격과 성질이 고쳐지지를 않는다. 예수는 믿기는 믿는데 성격과 성질이 고쳐지지를 않는다. 그것이 진리본질이 들어가서 고쳐져야 그걸 성화라고 하는 건데 그건 없이 단순히 술이나 담배를 끊으면 성화로 아는 기독자들이 많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어떤 계기로 술이나 담배를 끊는 일이 많다. 이렇게 해서 끊는 건 성화가 되어서 끊는 것과는 질이 다른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옛사람의 생각과 성령님의 생각이 질이 다르다는 이걸 모른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자꾸 구별하고 구별하고 분별하고 분별해서 진리본질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이 변화가 돼야 자기가 정화되고 고쳐지고 하겠는데 이게 없다면 뭐냐? 내 속에 하나님의 의사성이 없다면 예수 믿는 효력이 어디서 나오는 거냐?

 

:에도 보면, 또 시:에도 하나님 영광 받으시옵소서하는 게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 영광이 뭐냐? 세상 속화된 교회에서는 눈에 보여지는 일을 크게 많이 해 놓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을 보면 구원받은 자신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닮아진 이게 누구 덕이냐? 누구의 역사로 된 거냐? 하나님의 역사로 됐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찬송을 하게 되는 것이니, 자기가 하나님을 닮은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다. 이게 무슨 말이냐?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니 그렇게 된 게 하나님께 영광이다. 이걸 아는 자가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물질성적으로 커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영광한다면 이건 불 속에 든 부자와 같은 거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에 누가 영광이냐? 거지가 영광이냐, 부자가 영광이냐?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속에 들어있다. 그러니 거지가 영광이 맞느냐?

 

그런데 세상 속화된 교회에서는 부자가 거지에게 동정을 안 해서, 구제를 안 해서 지옥에 갔다고 한다. 이건 벌써 예수 믿는 이치도 틀렸고 교리적으로도 틀린 것이다. 인간 제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거다. 부자가 아브라함을 보고 뭐라고 불렀느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러니까 부자가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인데, 그래도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이냐?

 

거지가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다는 것은 거지가 누구의 후손이라는 뜻이냐?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니까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형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느냐? 뭘 말해주려고 그걸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냐?

 

또한 세상 속한 교회에서는 부자처럼 불속에 안 들어가려면 교회의 헌금을 세상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자고 한다. 이게 육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 이방 불신자들이 교회를 향해서 세상의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교회에서 좀 도와주면 안 되겠습니까한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천국생각이냐, 땅의 생각이냐? 땅이 생각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교회에서 헌금을 세상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고 하는 생각이나, 안 믿는 사람이 교회헌금으로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하는 생각이나 다 같이 육의 생각이다.

 

그러면 이 말이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 말자는 말이냐? 부모형제나 이웃이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일반이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그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반에 속하는 거다.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가 넘어져 있으면 내 자식이기 때문에 일으켜 세우는 거냐, 어른이라면 당연히 세우는 거냐? 세우는 건 기본상식이다. 신앙이 아니라 기본상식이다. 당연한 거다. 그런데 왜 거기에 신앙을 붙이느냐? 이렇게 되면 성경해석의 사고방식이 불신자들이나 이방 종교인들과 똑같아져 버린다. 성경이 그런 거냐?

 

그냥 보면 번듯한 사람들인데 신앙적으로 들어가서 이치적으로 보면 사람이 괴물처럼 돼 있는 사람이 많다. :에서 이걸 다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자기 엄마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면 아버지가 자기를 때렸다면 심술궂게 그린다. 자기를 그리라고 하면 더 예쁘게 그리려고 한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그린다면 어떻게 그려놓으실까? 입이 클 런지, 눈이 클 런지, 혀가 늘어져 있게 그릴 런지, 이빨을 사자처럼 그릴 런지, 미련한 곰단지처럼 그릴 런지? 자기의 실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수 닮은 자기의 실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성질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성분적으로나 볼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이 말씀을 도적질하는 목사들이 있다. 설교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유명하다고 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여기저기서 모아서 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한 건당 얼마씩 받고 설교를 팔아먹는 목사가 있다. 내 설교도 인터넷으로 받아서 거기에서 팔아먹고 있다. 정말로 할 짓도 없는 강도 같은 목사다.

 

이방 불신세상은 다른 사람에게 해꼬지를 안 하면 자기가 의인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 쉬운 예를 들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해코자 안 하고 있으면 자기가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착하다고 하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면 사회에서 상을 주고 기념패를 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온전으로 이루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지식의 기준은 버리고 타락된 자기 양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할지라도 자기는 여전히 그대로 죄를 짓고 있는 선악과 따먹은 죄인이라고 한다. 이걸 고치지 못하면 못 고친 채로 그대로 계속 살게 되는 거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이걸 잘 모른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의 성격 성질을 못 고치고, 자기 양심도 비뚤어져 있고, 지식도 비뚤어져 있는데 그냥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 구하면 신앙이라고 생각을 한다. 바탕의 질이 신앙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들을 한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여전히 옛사람 부패성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안 좋은 사건이 붙으면 쉽게 말해서 귀신들인 짓이 나오는 거다. 자기 성격대로 안 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자빠지기도 하고 경기를 한다. 이건 못 고쳤다는 증거다. 귀신은 인간 자기의 성격 성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리이치의 말씀은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자기가 밥 먹고 무난하게 사니까 자기 속에 귀신의 성격과 성질이 가득 들어있는데도 그걸 잘 못 느낀다.

 

이방인들은 일에 들어있고 사업에 들어가 있는 거지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너다. 기독교는 사람에게 들어가 있는 거다. 그런데 세상 속화된 교인들은 자기는 제외해 놓고 세상 돈 부요 물질 이런 쪽으로 자꾸 생각을 한다. 이건 예수 믿는 게 아니다. 네 소원을 이뤄달라고 예수님을 종으로 부려먹는 거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따라가고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 따라가다가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게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원하시는 사람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나를 만들기 전에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렇게 들어가 있다. 그래야 내 존귀가치가 있는 거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소원으로 믿는다면 이건 예수 식으로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식으로 믿는 거다. 이건 자기를 또 다시 죄인으로 만드는 격이다.

 

죄인이라고 할 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이방세상은 그렇다. 이건 과거사이다. 과거적으로 죄를 지은 것은 세상 법이 와서 잡아간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뭐냐? 안 믿는 사람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그래야만이 죄냐? 그래야만이 죄라고 한다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치고받고 싸웠느냐?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그들이 왜 죄인이 됐느냐? 생명과는 안 먹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불순종이 죄다. 행동 죄 이전에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네가 보는 기준을 세워서 나가는 것이 죄다.

 

생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먹는 거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서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지키고 다스리게 된다. 네 환경을 다스리고 네 마음을 다 다스리고, 다스림이 들어갈 텐데 눈에 보이는 면에 기준을 세웠으니 이건 하나님의 기준과 틀렸다. 그러니 너는 죄인이다. 이게 말씀 불순종이요, 말씀 불순종으로 들어가면 죄인이다.

 

더 쉬운 예로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을 까먹으면 자기 스스로 죄인으로 여겨지느냐, 의인으로 여겨지느냐, 그냥 보통이냐? 죄인으로 여겨진다. 자기의 양심이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죄란 뭐냐? 과거적으로 지었던 죄가 지금도 연속적으로 되고 있다면 그건 죄인이다. 그런데 과거처럼 사람을 상해하는 죄는 안 짓는다고 해도 현재에 말씀 불순종으로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교회에서는 차원을 올려야 한다. 눈에 보이는 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그 사람의 차원은 그만큼 낮은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못 깨닫는다.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를 안 따먹고 있다면, 영의 생각으로 살고 있지 않다면 이건 죄인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매 주마다 교회에서 듣는 영적인 말씀에서 자기 실상이 민감하게 돌아가야 한다.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지 말아라. 세상 속화된 사람들처럼 부자 부자그런 식으로 살지 말아라. 그런 식의 소원을 안 해도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부자로 살 수 있다. 안 믿는 사람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내가 남을 상해했다면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에게 상해를 입은 자가 나를 고소를 한다. 이런 거는 우리가 주 해석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런 거는 차원이 낮은 것이기 때문에 말하고 말고가 없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자동적으로 내가 잘못했습니다하며 사례를 한다든지 하는 건 자동적이다. 그건 간사가 아니라 자동적이다. 세상에서 자동적으로 될 일을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남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나를 고소하는 자가 있다는 말인데, 즉 내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고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경은 세상 법정 앞을 얘기하는 거냐, 하나님 앞에서의 얘기를 하는 거냐? 하나님 앞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죄를 지었는데 현재 이룰구원으로 잘 가고 있다면 그건 이미 죄가 사해진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학교에서 과거에는 늘 0점이고, 그래서 날마다 청소나 하고 얻어맞고 했는데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칠적마다 100점을 맞는다면, 100점을 계속 맞고 있는데 선생이 과거에 0점 맞은 걸 가지고 때리느냐? 그런 선생이 있느냐? 칭찬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과거와 똑같이 현재적으로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면 미움을 받고 계속 얻어맞는 것이다.

 

죄를 지은 나를 고소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고소하는 거냐? 율법이냐? 마귀냐? 아니면 내 속에서 죄를 지은 그 놈이냐? 믿는 우리가 자기라고 할 때 세상에서 편하게 먹고 마시고 하려는 옛사람 자기가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새사람 자기가 있다. 이건 존재적이 아닌 한 사람 속에 들어있는 성분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 둘이 있는데, 아울러 자기의 주격인 현재적 자기가 있다. 이게 이해가 되느냐? 그래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는 건 누가 하는 말이냐? 옛사람이 하는 말이냐, 새사람이 하는 말이냐? 새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걸 잘 생각을 하라.

 

누가 나를 고소하느냐? 안 믿는 사람 같으면 나에게 얻어맞은 사람이 나를 고소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가 나를 고소할까? 쉽게 생각을 해서 이 성경을 보면서 자기의 양심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아무렇지도 않느냐? 율법은 뭐하는 거냐?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한다. 또 다른 말로는 몽학선생이라고 한다. 죄를 깨닫게 해야 예수가 찾아진다. 말씀을 보면 아이고, 나는 죽었구나그렇게 되는데, 살려면 예수께로 가진다. 신앙의 질이 그렇다.

 

성경을 보면 구약과 신약이 있는데, 성경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역사학적으로만 따지려고 한다. 말세를 말할 때도 역사학적으로 따지려고 한다. 그건 못 쓴다. 모르는 것보다야 낮지만 여기에는 구원의 이치를 모른다.

 

구약은 누가 온다고 가르치는 것이냐? 메시아가 온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약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오신 예수를 가르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우리를 위한 계시의 눈을 가지고 보면 성경 전부는 예수를 가르친다. 예수는 구원이다. 그러면 뭐가 구원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 무장이 되면 너는 구원이다. 그 무장은 그리스도성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예수로 구원이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되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로 말미암아 된 너의 실상을 바로 구원이라고 하는 거다. 예수 닮은 것은 구원이라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구약 성경을 보면서 자기는 구원을 찾아야 하고, 찾았다면 그 사람은 예수를 만난 사람이다. 예수를 못 만나면 구원이 안 된다.

 

성경해석상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천국을 침노한다고 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왜 요한의 때까지냐? 역사적으로는 예수님이 요한을 당신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보냈다. 이 요한이 누구를 소개했느냐? 예수님을 소개했다. 이걸 사상적 계시적으로 보면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성경(세례요한 역할)을 봐야 한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을 안 보고 있다면 뭔가 잘못됐다. 성경을 안 보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성령이 뭔지 아느냐? 보혜사 성령은 성경을 깨닫게 한다. 성경에 기록돼 있는 걸 왜 둘러엎느냐?

 

예수를 믿으려면 성경을 보고, 그 다음에 요한을 만나게 된다. 이 요한이 어디에 살았느냐? 요단 동편 광야에서 살았다. 요한을 만났다면 그 삶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예수를 만나게 된다. 이게 세례요한을 통해 계시적으로 보여주는 신앙사상이다. 예수는 그렇게 믿게 되는 거다. 성경도 안 보고, 세상정신을 잔뜩 가지고 있고, 선지자도 못 만났는데 어떻게 예수가 만나지느냐?

 

마찬가지로 율법이 죄를 지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자리로 데리고 간다. 내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성경)에게로 가는데, 거기에서 율법과 계명은 법관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성경을 보면서 내가 죄를 시인을 하던지, 부정을 하든지 해야 한다.

 

가는 동안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 인생이 가는 동안.’ 자기 인생이 얼마나 흐를지 아무도 모른다. 흐르는 그 세월 속에서 죄인으로 그대로 산다면 시간과 날짜는 계속 지나가는 것이니 죄인 내가 판결을 받고 옥에 갇힐 날이 자꾸 가까워지는 거다. 이건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다.

 

그렇게 시일이 갈 때 하루라도 빨리 지혜롭게 화해를 해야 한다. ‘화해라는 말은 옥살이를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리를 받아들이고 주님의 의사단일성으로 회개를 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의사단일에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정죄가 없어지고 죄가 나를 끌고 가지도 못한다.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자기는 일반 죄를 안 지었으니 영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것처럼 교만하고 있다가 갈 때까지 가면 결국은 정죄를 받고 관속에게 붙여지는 거다.

 

관속은 하나님의 명령에 수행자들인데, 이 일에 영계와 물질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동원이 된다. 이 관속에게 잡히면 당장 붙잡아다가 옥에 가두게 되는데, 옥에 가두어지면 자유차단 활동차단이 된다. 무슨 병으로 무슨 사건으로 오든지 오면 너는 가두어진다.

 

쉬운 예를 들면 자기 몸이 오싹하면 감기가 온다는 신호다. 그대로 가만 두면 감기를 앓게 되고 병원에 돈을 갖다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누가 손해냐?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사람이 안 들어먹는다. 자기에게 고통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안 들어먹는다. 눈으로 보이고 빤한 건데도 그걸 시인을 안 한다. 건강할 때는 몸의 작은 이상을 우습게 생각을 하지만 자기가 당해놓으면 그만큼 늦은 거다. 그 병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모른다. 덤덤하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잘못을 시인을 안 하면 호리라도 꼼짝없이 당하게 돼 있다. 피해가지를 않는다. 그러니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자기 신앙양심을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이 늘 하나님께 맞추려는 게 있어야 한다. 꼭 얻어맞아야 신앙이 들어가는 거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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