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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적 노동관
레위기 23: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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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곧 자기 구원의 한 길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빈곤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힘이 있고 부한 자들이 약자와 노예에게 노동을 권합니다. ‘일하라. 더 열심히 일하라’고 채근합니다. 때로는 폭력을 동원하여 강제 노역에 이르기도 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관 역시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즐기라’고 유혹합니다. 본문의 처음 독자 히브리민족은 얼마 전까지 파라오적 노동관에 익숙한 자였습니다. 죽도록 일하지만 구원은 불가능했습니다. 파라오적 노동관에 의하면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의 노예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노동자는 천시받고 근로기준법은 무시당합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차등 대접받는 일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 파라오들은 조건을 무시하고 일하기를 독촉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가 불량식품을 먹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런 자가 반지하 주택에서 물난리를 만나 숨진 이들을 애도하는 것은 정치 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쌓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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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고단하고 긴 순례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속죄는 구약과 신약의 핵심 주제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와 신약의 십자가가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 역시 구속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은 대제사장이 한 해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는 날입니다. 다른 어느 날보다 거룩한 날입니다. 이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엄중합니다. “이날은 속죄일 곧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속죄예식을 올리는 날이므로, 이날 하루 동안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날에 고행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게 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이날에 어떤 일이라도 하면, 내가 그를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23:28~30) 노동을 금하는 말씀, 속죄의 날에 누군가를 선민 공동체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일을 한다’는 하나의 이유로 이스라엘 무리에서 단절된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인류에게 노동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노동은 곧 자기 구원의 한 길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자기와 가족의 생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빈곤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힘이 있고 부한 자들이 약자와 노예에게 노동을 권합니다. ‘일하라. 더 열심히 일하라’고 채근합니다. 때로는 폭력을 동원하여 강제 노역에 이르기도 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관 역시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즐기라’고 유혹합니다. 본문의 처음 독자 히브리민족은 얼마 전까지 파라오적 노동관에 익숙한 자였습니다. 죽도록 일하지만 구원은 불가능했습니다. 파라오적 노동관에 의하면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의 노예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노동자는 천시받고 근로기준법은 무시당합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차등 대접받는 일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 파라오들은 조건을 무시하고 일하기를 독촉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가 불량식품을 먹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런 자가 반지하 주택에서 물난리를 만나 숨진 이들을 애도하는 것은 정치 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쌓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노동을 통한 구원을 꿈굽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일을 하지 말라”는 언급은 오직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물론 성경에도 근면하기를 권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대속죄일에 아무 일 하지 못하게 할까요? 한마디로 ‘구원은 오직 은총의 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이십니다. 구원의 날에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거부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은총의 날에 구원에서 단절되는 뼈아픈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파라오적 노동관을 가진 자들이 노동자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저들의 무지와 무식을 용서하지 말아 주십시오. 파라오처럼 벌하여 주십시오.
찬송 : 214 나 주의 도움받고자
https://www.youtube.com/watch?v=IigOKQjNyfg
2022. 8. 12 금
댓글 '1'
김봉진 목사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27절)
속죄일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자기 죄를 슬퍼하며 참회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해마다 '속죄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 주시고, 정결하게 새로 출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를 아파하는 사람만이 속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고 죄를 멀리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죄와 용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속죄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며, 나를 부인하고 그 은혜에 겸손하게 화답하는 믿음으로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통해 속죄의 은혜를 받은 나는 '죄'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속죄를 빌미로 도리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있진 않습니까?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34절)
1년 중 가장 풍성한 때인 가을 추수가 끝나는 기간에 씨를 심을 수조차 없는 광야에서의 열악한 생존 수단이었던 초막을 짓고 생활하게 하십니다.
가나안에서도 백성들을 지탱하는 건 젖과 꿀이 흐르는 환경이 아닌, 광야에서 부족함 없이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나를 보살피시며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금도 내 삶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고 작은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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