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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99 추천 수 0 2022.08.28 10: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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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4-1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4-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 일은 혼인잔치 집에서 있었던 일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아 가신 것이기 때문에 혼인집 신랑신부가 주격이고, 예수님은 주격을 위해 동원이 된 것처럼 보인다. 혼인집 식구들은 우리를 깨닫게 해 주는 하나의 계시기관으로 쓰임을 받는 자들이다. 이렇게 보게 되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면에서 예수님은 주격이요 주격체가 된다. 당신이 초청을 받아 가신 것은 우리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주격이다.

 

 

세상은 가정이던 사회던 주격이 구원을 가진 사람이다. 왜냐? 하나님께서 진리를 가진 성도를 위해 가정을 돌리고, 사회를 돌리고, 국가를 돌리고, 세계를 돌리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걸 못 보면 안 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물질적 부요나 무기 등을 가지고 세계 최강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붙잡고 역사하시는지를 봐야 한다.

 

 

애굽의 7년 풍년과 7년 흉년 때 하나님께서 누구를 붙잡고 역사를 했느냐? 요셉이다. 그렇다면 요셉이 태어났을 때는 요셉이 애굽 땅에 없었으나 알고 보면 애굽에 7년 풍년과 7년 흉년 전까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 애굽을 돌리고 있었던 거냐? 요셉을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애굽을 돌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자기가 진리로 자라고 있을 때 장차 나의 그곳에서의 삶을 위해 나도 모르는 곳에서 그곳의 사람을 키우는 게 있는 거다.

 

 

이걸 잘 이해를 못하겠으면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각국 선수들이 1등을 하려고 각 곳에서 연습을 하는데, 이제 때가 되어서 시합을 통해 어느 나라가 1등을 했다면 이건 말하자면 월드컵 경기가 1등을 한 이 나라의 선수들을 위해 준비되고 기다리고 있었던 셈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믿는 자기의 장래를 위해 다른 어떤 곳에 어떤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준비하는 게 있는 거다. 믿는 사람이 이걸 의식하지 못하면 믿음의 사람이 안 된다. 우리는 이런 걸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과학이 고도로 발전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굶지 않고 산다고 해서 믿는 자기도 거기에 휩쓸려서 무덤덤하게 살면 안 되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준비냐? 지금 신앙 면에서 세계적으로 비진리가 만연하고 있으니 이 비진리와 대항을 하기 위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로서는 안 믿는 사람은 싸울 상대가 아니고 어두움의 세력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어둠의 세력들이란 표면적으로 보면 이질적으로 교회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들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로마 황제 밑에서, 헤롯 왕 밑에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들의 권력에 빌붙어서 누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도 이런 현상이 된다. 이게 다 소돔 고모라와 때와 노아홍수 때와 같은 거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보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다. ‘여자여.’ 이 말을 이방인들이 들을 때 어떻게 들릴까? 좋게 들릴까, 나쁘게 들릴까? 기독교인들이 들을 때는 어떻게 들리느냐? ‘여자여라고 한 것을 어떤 분은 최고의 존경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뒤에 나오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이 말은 주님의 때가 있는 건데 어머니는 뭘 그러십니까?’ 라는 거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첫 번째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물질적인 기쁨을 계속 연속시켜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거다. 말하자면 주님의 때는 술이 떨어진 것과 상관이 없고, 다른 사람이 결혼하는 것과 상관이 없이 오신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거다. 당신의 때는 인간 너희들의 생각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독단적이고 독권적이다.

 

 

믿는 우리는 주님의 그 때를 보기 위해 항상 준비를 하고 있으면 주님이 알아서 데려가기도 하고, 들어 쓰기도 하고, 이리 저리 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꾼을 내보내려면 말씀을 100% 깨달을 수는 없는 거지만 어느 정도 정확성을 가진 사람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을 보면 날개도 없이 막 날려고 하는 자가 많다. 그런다고 해서 날아가 지느냐?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때는 예수님 당신이 정하신다는 거다. 인간이 정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세상의 기쁨과 행복이 다 떨어져야 예수 당신이 역사를 하신다는 거다. 술이 다 떨어져서 재미가 없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청춘남녀가 혼인식을 하면서 날마다 오늘과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이 기쁨이 다 떨어지고 망가져야 예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는 거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쁨과 행복을 연속시켜 주려고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다. ‘나는 죽었다라고 하며 자기 부정이 될 때, 자기 부인이 될 때 주님이 오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혼인잔치에 가심은 얻어먹으러 가신 것도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연장시켜 주려고 가신 것도 아니고, 그 기쁨이 다 끝나면 참 기쁨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려고 가신 거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친은 이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물질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연속시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모친의 말에 대해 예수님을 잉태시킨 그 믿음은 어디로 갔느냐?’ 라고 하면서 믿음이 타락되었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한 번 믿음이 좋았으면 이 사람은 계속 믿음이 좋고, 한 번 믿음이 안 좋았으면 계속 안 좋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는 거다.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부터 자기의 믿음이 항상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느냐?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한 것은 어머니가 물질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연속시켜 달라고 했으니 이런 믿음은 세상 이방인들이 구하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마지막 시대의 모든 기독자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공자에게 가서 자식이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했는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겠느냐? 막 돼 먹은 자식이라고 할 거다. 영의 세계를 모르면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의 말인즉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을 하라고 했다. 한 마디로 주님 앞에서는 순종뿐이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순종을 구분해야 한다. 세상 육적인 명령에 순종을 하면 자기의 영이 죽는다. 성장을 못 한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 가던지 교훈이 육에 관한 건지, 영에 관한 건지를 알아서 바른 순종을 해야 한다.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 되고 만사형통 되고라고 하는 건 마: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을 건 말과 같은 거다. 거짓 종이나 이단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지식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훈에 있어서 진리본질을 모르면 이질도 모르게 된다. 이러면 거짓 종도 못 찾고, 이단자도 못 찾는다.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이런 수준에 머물도록 가르치면 안 된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진리는 살아서 역사를 하시는데, 문제는 자기가 말씀을 영접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말씀이 자기 속에서 역사를 하거나, 안 하거나 하게 된다. 에덴동산 밖에서 피 있는 예배와, 피 없는 예배에 따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와, 안 받으시는 예배가 나눠졌듯이 특히 예배의 정신에서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지고, 안 되어지고가 나눠진다. 그래서 교회 인도자는 성도들이 자기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이 돌 항아리는 얼굴도 손도 발도 깨끗하게 씻으라고 항상 같은 장소에 두는 거다. 유대인의 집에는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곳에 의례히 항아리가 놓여 있다.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그런데 이 항아리에 물이 없이 비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종들을 보고 이 항아리의 아구까지 차도록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종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물을 가득 채웠다. 아침에 한 통 붓고 쉬었다가 저녁에 한 통 붓고, 덥다고 쉬었다가 저녁이 되어서 한 통 붓고 한 게 아니라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한 번에 가득 채웠다. 이게 순종이다.

 

 

우리의 믿음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된 자타의 구원의 일에는 토를 달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면 안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웬지 자기의 자존심을 누르는 것 같으냐? 이 자존심을 살려놓으면 그 자존심이 너를 죽인다. 말씀에 순종성이 알량한 네 자존심보다 훨씬 더 높다. 말씀에 순종은 미래적으로 너의 영원한 존귀성이 들어 있는 순종이다. 말씀에 의해 채워라. 말씀의 이치로써, 순종으로써 아구까지 충만히 채워라. 말씀의 이치로서 아구까지 충만히 채워지지 않으면 변화된 맛은, 즉 기쁨을 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가득 채우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 ‘이 정도면 됐어라고 하게 되면 항상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 아흔 아홉에서 100이 될 때까지 하나를 더 채우지 않으면 항상 아흔 아홉이다. 100점에서 한 문제를 틀려서 99점일 때 , 하나만 더 맞으면 될 걸이라고 하는 건 모자라고 아쉽다는 거다. 말씀 앞에서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완전히 알아야 하겠는데 항상 모라자면 마음에 기쁨이 있겠느냐?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쉽고, 또 지나고 나면 또 아쉽다. 항상 모자란다. 가득 채우지 않으면 항상 모자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8-11: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항아리의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니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새롭게 맛보는 좋은 포도주인데 어디서 났느냐?’ 하고 물었다. 물을 가지고 간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을 알고 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서 사람마다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했다.

 

 

연회장도 신랑도 어떻게 해서 물이 포도주가 되었는지를 몰랐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이 물을 연회장에 갖다 준 하인들만 알고 있다. 순종자는 알고 있다. 이것을 보는 우리는 알고 있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 자기가 말씀으로 변화된 게 없으면 모르고 있는 거다.

 

 

항아리에 깨끗한 물을 채웠듯이 자기 속에 세상 것은 조금도 섞지 말고 지극히 거룩하고 정결한 말씀을 가득 채워라. 변화될 것으로 가득 채워라. 순종으로 채워라. 이질의 것을 채워봐야 변화되지 않는다. 이제는 겉만 씻지 말고 영적인 면에서 변화된 새사람의 맛이 나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결례가 되어야 한다.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인본주의의 맛은 한계가 있고 오래 못 간다는 거고,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다는 것은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은 마치 큰 바위 밑에서 다함이 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영적 신령한 것으로 늘 기쁘고 즐겁다는 뜻이다. 자기 속에서 신령한 것으로 늘 기쁘고 즐겁고 만족하다는 거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처음 표적이란 순서적으로 처음으로 표적을 행했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예수 믿고 처음으로 변화된 새사람의 맛을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 믿고, 따르고, 살아 있는 말씀을 가득 채우고, 이 말씀이 자체화 인격화 되어서 언행심사로 나오는 게 처음 표적이라는 말이다.

 

 

말씀으로 변화되어 나온 언행심사가 처음 표적인데, 자기가 이 맛을 봐야 남에게도 이 맛을 보일 수 있다. 예수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맨날 세상타령을 하면 이 맛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자기에게도 처음 표적이 나왔느냐?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연회장이 포도주를 맛을 보고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말을 했는데, 믿는 우리도 변화된 포도주의 맛이 나고 있느냐? 연관 관계성적으로 이런 맛을 봤느냐? 어떻게 보면 바보 같고, 어떻게 보면 천재 같고,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이게 처음 표적이다. 이렇게 되는 게 하나님께 영광된 사람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으냐?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바꿔진 데서 나오는 게 영광이다. 하나님은 이걸 보고 너는 내 영광이라고 하신다. 자기가 예수 믿은 후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가치판단 평가가 나온 적이 있느냐? 이게 나와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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