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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데살로니가 후서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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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반공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은 전투적 교회의 지도자들이 ‘통일이 곧 온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불과 수년 전 남과 북의 화해 분위기가 극적으로 조성되었을 때에는 볼멘소리를 하며 평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더니 증오와 대결이 일상화되는 이 시점에 뜬금없이 통일을 외치니 믿음 없는 목사로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입니다. 지금 교회가 할 일은 고난받는 북한 동포들과 함께 ‘우리 하나님’을 부르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누구라도 혼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독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도 꼭 전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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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여 그 가치와 질서를 오롯이 따르는 주님의 백성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는 전서를 쓴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록한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 형편이 전보다 더 위태로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와 교회를 흔드는 외부로부터 박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염려의 마음으로 다시 펜을 들어 걱정과 위로와 권면의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세파에 시달리고 원수 앞에 노출된 믿음의 사람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바울과 그 일행의 마음이 애잔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의 박해가 심한 상태여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안위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간직한 그 인내와 믿음을 두고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살후 1:4 새번역) 핍박은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전혀 다른 이방인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동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유대인의 동포애는 그 결속력이 매우 강하지만 종교적 신념이 다를 때는 돌변합니다. 종교적 신념은 민족적 연대감보다 강합니다. 종교란 갈등을 극복하고 일치와 화해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법인데 도리어 차별하고 배척하고 급기야 박해에 앞장선다니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연실색 할 일들이 종교 주변에서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 역시 동족의 미움과 배척을 받은 일이 다반사이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살후 1:1)라 부릅니다. 고난에 직면한 성도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보응을 기도하였습니다(살후 1:7~9).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북한 동포가 생각납니다. 요즘 반공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은 전투적 교회의 지도자들이 ‘통일이 곧 온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불과 수년 전 남과 북의 화해 분위기가 극적으로 조성되었을 때에는 볼멘소리를 하며 평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더니 증오와 대결이 일상화되는 이 시점에 뜬금없이 통일을 외치니 믿음 없는 목사로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입니다. 지금 교회가 할 일은 고난받는 북한 동포들과 함께 ‘우리 하나님’을 부르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누구라도 혼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독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도 꼭 전해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 맹목적 믿음이 총칼을 든 원수의 광기보다 무섭습니다. 이 땅에서 저들의 뜻이 수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찬송 : 393 오 신실하신 주 https://www.youtube.com/watch?v=04iKidQqTMw
2022. 8. 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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