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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04 추천 수 0 2022.09.04 20:25:38
.........
성경본문 : 요2:11-2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11-22: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 영광을 나타내셨는데, 여기서의 영광이란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 변화, 기쁨 변화.

 

혼인잔치에서 신랑 신부는 혼인 때의 기쁨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세상사람들도 세상 것으로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세상 속회된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건 참 행복이 아니라서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항상 바뀌고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주님이 사람을 변화시켜서 되어지는 기쁨은 어떤 사건 환경 속에서건, 내리막길이건 오르막길이건 다 이기고 올라가는 기쁨이다.

 

세상조건으로 인한 기쁨은 몸 밖에서 되는 거고, 사람의 마음이 변화가 되어서 오는 기쁨은 사람의 속에서 되는 거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가 되면 모든 사건 환경을 이용 활용하며 자타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재미가 있게 된다. 세상사람들은 이 기쁨을 생각조차 못하는 거고,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이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다. 고통스럽다고 할 때 물질적인 조건 때문에 오는 고통보다는 몰라서, 어리석어서, 깨닫지 못해서 구원을 이뤄가지 못하는 것에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 행복성을 찾다가는 큰일 난다.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를 몸 파는 여자로만 보면 안 된다. 표현은 그렇지만 신앙사상 면에서 영원한 참 의지자를 찾기 위한 애탐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통해 참 예배란 장소적 건물적인 게 아니라 이 때라’, 즉 주님을 만나는 게 참 예배라고 하는 예배의 정의를 알려주셨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배의 정의를 딱 알아차린 거다.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예수님으로 통해 사람이 바뀐 게 영광인데, 10절에서 연회장이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한 것처럼 물질 이해타산에서 오는 기쁨으로 살던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들어간 하늘의 기쁨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을 때 맛있는 사람, 영광스런 사람이 되는 거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자들은 이걸 믿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꿔진 게 하나님의 영광이다. 사람이 바뀌면 모든 속성이 주님의 사람으로 나온다. 참 귀하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게 구원이다. 이 구원을 따라가면, 즉 하나님의 본질적 말씀을 인격적으로 따라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믿고 따라가더냐? 전부는 물질적 이해타산에 두고 사람을 따라간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엇을 보고, 즉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더냐? 우리교인들은 무엇을 보고 예수를 따르느냐?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그 후에, 즉 그 영광을 본 후에 예수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서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않았다. 여러 날 계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면 당신의 복음을 받을 런지, 안 받을 런지도 모르고 내려간 거냐? 당신의 제자들이 가자고 하니까 따라간 거냐? 그리고 왜 여러 날 있지 않고 올라간 거냐? 가버나움은 정든 어부들의 고향인데 왜 이곳에 여러 날 계시지 않은 거냐? 여러 날 있지 않는 마음이 있는 건데, 그 곳 사람들이 천국복음을 받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복음에 관심이 없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는 거다. 가버나움에서 바로 떠나고 안 떠나는 것은 주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건데, 바로 떠나신 것은 복음을 전할 때 안 받으면 거기에서 여러 날 있지 말라는 거다.

 

예수 믿는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여러 해 후에 부모 형제가 보고 싶어서 친정집에 갔을 때 친정집에서 제사를 지내면 심기가 불편해서 친정집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격이 되어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주격이 되어야 그곳에서 여러 날 있는 거다. 우리 집에는 형제들이 잘 안 오는데, 이 형제들은 다 안 믿는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면 앉기만 하면 예수 믿으라고 하고, ‘성경에 어쩌고 저쩌고하기 때문에 귀가 얼마나 따갑겠느냐? 그래서 안 오는 거다. 만일 내가 형제들 집에 간다고 하면 미리 도망을 가거나 오지 말라는 형제도 있을 거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우리의 구원에 관한 일을 위해 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셔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내려가는 신앙자에게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면도 있는 거다. 인정정실로 내려갈 때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반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셔서는 고차원적으로 신비로운 것을 자세히 보여주셨다.

 

지도를 놓고 보면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에 있지만 예루살렘은 사해바다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하는 것은 고차원적이고 숨겨진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는 거고, 우리의 깨달음이 올라갈수록 숨은 계시를 깨닫게 해 주신다는 거다. 사람이 변화되면 이제는 숨은 것을 보여주시는구나.

 

:에서 사도요한에게 처음에는 주님의 기준을 보여주시고, 그 다음에 일곱 교회를 보여주시고, 그 다음에 하늘 문을 열어서 영적인 면이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고, 모든 교회의 배후에 영적인 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돌아가는지를 보여주셨다. 이걸 통해서 지금의 우리는 사람들의 활동의 배후에 어떤 영이 들어서 움직이고 활동을 하는 건지? 미혹의 영인지, 세상의 영인지, 성령님인지?’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14-17: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께서 왜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느냐? 올라가셔서 무엇을 보여주시느냐?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셔서 무엇을 발견했느냐?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할 짐승을 예루살렘까지 끌고 오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오다가 짐승이 다치기라도 하면 제물로 드릴 수 없다. 제사장들이 이런 교인들을 위해 제물로 드릴 짐승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길러서 먼 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는데, 교인들의 편리를 봐준다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예수님께서도 이걸 모르심은 아닌데 문제는 장사를 하는 자들의 마음중심이 문제다. 즉 교인들의 편리를 봐준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그들의 마음중심은 물질 이해타산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노끈으로 채찍으로 만들어서 성전에서 그들의 상을 둘러엎고 그들을 좇아내셨다. 이렇게 하심은 성전에서 되는 일은 다 성역인데, 거룩한 역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거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호를, 즉 목사 장로 권사 권찰 집사 이런 성호를 팔고 사는 일이 많다. 목사도 물질 이해타산으로 직분을 주고,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교인 속에도 물질 이해타산이 들어 있다. 교회가 온통 이런 위주로 돌아가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사람을 죽이는 일도 하게 된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채찍을 만들어서 짐승들을 쫓아내고, 돈을 쏟고, 상을 둘러엎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 이것을 다 가져가라라고 하셨다. 성전 안에서는 이런 게 다 필요가 없다는 거다. 즉 그들의 그릇된 사고방식과 어리석음은 다 버리라는 거다. 신앙이 정결케 되는 이치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거다.

 

말씀으로 자기의 심모를 거룩하고 정결케 하면 겉도 깨끗케 되고 모든 언행심사가 고상하게 나간다. 그런데 세상은 물질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속을 깨끗케 하는 것이 없이 썩어서 뭉그러진 상태다. 그리고 썩은 이게 언행심사를 통해 겉으로 나오니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통이냐? 그리고 둘러엎는다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교회의 심판을 말한다. 장차 예루살렘의 심판의 원인을 여기에서 미리 보여주는 거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사람이 장사를 하는 거지 집이 장사를 하느냐? 그럼에도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부모형제, 처와 자식, 그리고 훗날에 태어날 후손들,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의 후손들, 즉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신앙이 변질이 없는 후손들 전부를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거다. ‘이라고 할 때는 대대로 무엇이 흘러 내려가는 의미가 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집은 자자손손으로 무엇이 흘러가고 있는지 생각해 봐라.

 

소돔 고모라성이나 노아홍수의 현상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아벨은 죽고, 가인과 셋이 있었는데, 가인의 후손들이 얼마나 많이 퍼졌느냐? 이 가인의 후손들의 주격적 세력이 셋의 후손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신을 다 잡아먹었다. 지금도 목사나 장로나 집사의 가정이고 간에 자녀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자녀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정신 사상이 커지고 있지는 않은지? 예수를 믿는다면 이걸 잘 봐라. 그래서 자녀들을 함부로 시집 장가를 보내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시집이나 장가를 못 갔으며 못 갔지 가인의 후손들과는 안 간다라는 정신이 들어 있어야 한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아버지의 집이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성품화로 내려가는 후손의 집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집은 천지 창조주, 만능의 능력자, 우리 구원의 주, 내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과 교인들이 이 정신이 있느냐?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물질 이해타산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거다. 이런 세상 소원성을 가지는 정신으로 가르치지 말고, 살지 말라는 거다.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하시는 일을 보고 시69:9의 말씀을 기억한 거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성경을 기억하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왜냐? 구약은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모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란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사모성을 말함인데, 곧 성전 안을 깨끗이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게 성역, 즉 거룩한 역사다. 다시 말하면 성도를 정결케 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증거가 무엇이냐? 몸 된 성전을 깨끗케 하는 게 그 증거다. 세상 속화된 교인들은 항상 깜짝 놀랄만한 일을 바란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구별과 분별이 없이 이적 기사나 바라고, 무조건적 사역적 물질적 충성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온전의 본질로, 진리본질로 얼마나 실상화 시켜 나가느냐?’ 하는 거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전인데 성전 안에서 물질 이해타산으로 짐승을 팔 듯이 내 안에 세상적인 이해타산이 들어 있다면 이건 짐승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기의 이해타산 평가성이 돈에 물질에 있는 건지,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심에 있는 건지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물질을 어느 쪽에 많이 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전과 신탄진과 여주로 강의를 다닐 때 공부하러 오시는 목사님 중에 물질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차비에 쓰라고 얼마씩 줬는데, 그 분들이 지금은 그 때보다 형편이 나아졌으면 교회를 생각해야 하는데 자기 집의 일부터 챙긴다면 그게 무슨 목사냐? 믿음이 없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인도자가 이렇게 돌아가면 그 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돌아갈까?

 

예수 믿으면서 자신을 얼마나 하나님의 온전의 본질로 거룩으로 실상화 시켰느냐? 자기 몸을 짐승처럼 만들지 말아라. 즉 자기의 마음 속에 자꾸 물질 이해타산이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너를 짐승 취급을 하신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을 깨끗케 하신 것은 제사장들 속에 물질 이해타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 속에 이런 게 들어 있기 때문에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게 된 거다. 이렇게 되면 그 안의 것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성역이 있게 된다. 거룩한 역사가 있게 된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늘 자기를 살펴야 한다.

 

18-22: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묻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들이 스스로 예수님께 대답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하신 일을 보고 자신들의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하는 대신 예수님을 향해 미운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높은 직분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지금도 성령님께서 나를 위해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일을 하시는데 자기에게 무슨 일로 다가올 런지?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미달이지, 자라지 못했지, 이질이 많지, 그러니 깨닫는 수밖에 없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들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 듣겠느냐? 성전을 헐라는 것은 예수 당신의 육체를 말함이요, 삼일 동안에 일으킨다 함은 삼일 후에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들었으나 그 뜻을 전혀 몰랐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때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몰랐는데 한참 지나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후에야 성경대로 된 것을 알았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하시니까 유대인들은 스룹바벨 성전을 헤롯이 46년간 리모델링을 한 그 성전을 말씀하는 것으로 알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물질적인 개념으로 들은 거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나, 모형계시나 상징계시로, 또는 비유나 비사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구원을 위한 사역을 하실 것을 말을 했는데도 유대인들은 막상 이 메시아가 자신들을 구원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으나 믿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를 믿는 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느냐?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구원을 위해 하신 일을 보면 예수가 메시아이심이 더욱 더 확신이 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죽은 지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성경을 보면서도 어떻게 되어서 부활이 된 건지 부활의 본질을 모르게 되고, 이렇게 되면 더 좋은 부활을 못 보는 거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느냐?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사신 당신의 몸이다. 우리를 당신처럼 귀하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당신의 피로 사신 거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법에 만족을 드린 삶을 사신 것은 사망에 거하는 죽은 나를 영 중생으로 구원해서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으로 살리기 위함이다.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실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 속에 들어 있는 더 좋은 부활성을 알아야 현재에서 이룰구원을 적극적으로 이뤄갈 수 있다. 그러니까 부활한 그 주님이 지금의 나에게도 찾아와서 나를 죽은 지식에서 일으키시는 일을 하시니 이 인도를 따라 세상과 육신에 속한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지식으로 살아갈 때 이룰구원 면에서 더 좋은 부활을 이루고 가게 되는 거다. 즉 영능의 실력자요 영적인 존귀 영광자가 되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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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5 누가복음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2:58-13:5  김경형목사  2022-08-14 71
17554 요한복음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요1:47-51  김경형목사  2022-08-14 71
17553 마태복음 (계시보기)먼저는 하나님의 온전이다. 마5:48  김경형목사  2022-08-14 39
17552 고린도후 향기로운 그리스도인 고후2;12-17  전원준목사  2022-08-11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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