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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3: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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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3장 10절-17절: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2절-13절: 여자가 영광을 돌린 것이 무엇이냐? 예배당을 지은 것이냐? 사업이 잘 돼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냐? 여자가 병에서 나은 것.
안 믿는 사람이 본문을 글자적으로 보면 여자가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이 영광으로 안다. 그런데 이게 지금 성령으로 기록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신으로 기록이 된 것이다. 사도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신으로 기록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온전을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 것이 온전케 되는 것이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영인성장 면에 들어 있느냐, 육신의 성장 면에 들어 있느냐? 영인성장이다. 따라서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영인성장 면에서 병이 든 것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영적 면의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시는 원 목적이 일반병원에서 환자를 낫게 해 주는 것처럼 육신의 병만 고쳐주는 게 아니다. 그런 역사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이 분은 하늘의 눈을 가지고 성도가 하늘나라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영적인 면에서의 병든 것을 고쳐주시고 온전케 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안 보이는 것을 생각을 하고 깨달아야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에서 영특해지고 지혜로워지고 믿음의 사람이 된다. 육신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수를 믿으면 그 사람은 둔팅이가 돼버린다. 마귀가 성경구절을 가지고 사람들의 육신 쪽, 세상 쪽으로 꾀임을 시도하는데, 이런 사람은 이 꾀임에 안 넘어가겠느냐? 백이면 백 다 넘어간다.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세상으로 돼 있으니 이건 마귀에게 아예 노출이 돼 있는 거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허락 하에 마귀가 활동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 마귀의 역사가 사람을 어떻게 둔탁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다른 교회에서는 그렇게 예수를 믿어도 될 런지 모르지만 우리교회에서는 그건 안 된다. 세상성적으로 성경을 풀고, 세상성적으로 ‘아멘 아멘’ 할 바에야 예수 안 믿고 돈 벌고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낫다. 성경은 우리의 영능의 실력, 영인성장, 영적 능력, 영적 무장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것은 단순히 육신의 병 그 하나만 고쳐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신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듯이 예수님의 언행심사가 모두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죄 아래 사망 아래 놓여있는 영적인 병이 든 당신의 백성들의 영적인 병을 고쳐주러 오셨다.
그러면 죄가 뭐냐? 세상 사람들이 보는 죄는 행동으로 나타난 뭘 저질렀으면, 사람을 해코자 했으면 죄라. 이런 죄를 지으면 법이 와서 잡아간다. 기독교는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이 되니, 의심을 하니, 거역을 하니 이게 죄라. 말씀 거역 죄. 그 다음에 모든 언행심사는 거기에 따라 다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께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을 고쳐주러 오셨다고 했는데, 죄라고 할 때 지식도 선악과 따먹은 지식을 가지고 예수를 믿고 있다면 이 사람은 계속 죄인이다. 지혜도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지혜를 주격적으로 갖고 있으면 계속 죄다. 도덕성도 선악과 따먹은 그 도덕성으로 갖고 있으면 계속 죄다. 일부러 가서 사람을 두들겨 패고 해코자 안 해도 선악과 따먹은 지식을 주격으로 가지고 있으면 계속 죄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은 다 하나님 앞에 죄로 지적이 된다.
예수 믿으면서 영인성장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생명과, 생명수, 영의 양식을 안 먹은 증거이기 때문에 계속 죄다. 예수 믿으면서 자라지 않는 것이 죄다. 학생이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의 실력이 안 오른다는 것은 실력적인 의미에서 죄다. 선생님의 노력과 시간을 다 빨아먹은 것이다. 가정에서도 일반적으로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은 죄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무슨 영광스런 일들이 있겠느냐? 쫓겨나고 미움 받고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다면 심판 받고, 사람노릇 못하고, 세상 어디로 가던 사람 속에서 못 산다.
죄 아래 놓였으면 사망이다. 죽는 거다. 그러면 뭐가 사망이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게 있어야 생명이고 영생인데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 무엇이던 전부는 사망이고 심판이고 죄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냥 교회에 다니고, 한 두 시간 예배시간 지키고 하는 걸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영원히 행복이고, 영원이 기쁨이고, 영원이 존귀영광이다. 사람이 그렇게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게 아닌 죄 아래 세상 아래 놓여져서 세상이라는 땅만 소원 목적적으로 쳐다보니 모든 것이 꼬부라진다. 허리가 꼬부라지는 것처럼 모든 것이 꼬부라진다.
스스로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를 하늘에 소망을 두고 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도록 펴 주신 분이 누구냐? 예수님이시다. 땅만 쳐다보고 ㄱ자로 꺾여서 다니는 그 여자를 소원 목적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게 펴줬다.
그런데 여자가 뭐가 들려서 그렇게 됐느냐? 귀신이 들려서 꼬부라졌다. 그러니까 그 성격 성질이 땅에 대한 소원 목적, 땅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쳐다보니 귀신이 안 들릴 리가 있느냐?
일반적으로 자기의 성격도 성질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인격화로 잘 만들어야 그 때 그 때에 따라 사람이 하는 모든 사고방식, 하는 일이 시원시원하다. 그러지를 못하고 지식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미련하면 거짓 종들의 이용물이 된다. 성격 성질이 고약하면 귀신들리기 알맞다.
이 여자에게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위로 쳐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게 구원이요 영광이다. 땅만 쳐다보는 그 눈을 위로 쳐다보게 해 주니 영광이다. 이제 이 여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로써 새로운 삶은 얻은 것이다. 세상 일반적인 삶에서 천국을 소망하고 구원을 이뤄갈 수 있으니 보는 세계가 달라졌다. 지식도 하늘의 지식, 지혜도 하늘의 지혜, 도덕성도 하늘의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 삶의 시야가 바뀐다. 그러니 여자는 이제 정상적으로 살 수가 있다.
예수 믿으면서 소원 목적성이 세상 것으로 돼 있으면 그 사람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해져 있다. 이건 신앙 믿음 면에 병이 든 것이다. 이거 고쳐야 한다. 세상 일반적으로도 보면 날마다 ‘돈 안 주냐? 얼마나 버느냐? 이래서 어떻게 살겠느냐?’ 하는 건 어디로 쳐다보는 거냐? 땅만 쳐다보는 거다. 이렇게 되면 감정폭발만 되면 미쳐버린다. 미치면 정신없는 짓을 하게 된다.
여자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이 구원인지 체험이 된 것이다. 그 마음속에서 이 감화 감동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구원 얻은 걸 알겠느냐? 예수 믿어 천국 가는 건 예수님 당신의 주권섭리로 되는 것이고, 예수 믿어가면서 자기가 고쳐지는 것. 병원의 의사도 모르는 자기의 영적 상태가, 자기의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향해져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것이 바꾸어진 것. 이게 자기 속에서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세상 소원 목적을 가지고 금식하고 철야를 하고 별 짓을 다 해도 그건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인간 자기가 자기 마음을 더 잘 아느냐? 인간은 자기를 잘 몰라도 인간을 지으신 그 분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신다. 네가 하나님 기준에서 비뚤어져 있는 것을 아느냐? 어떻게 비뚤어져 있는지, 얼마만큼 비뚤어져 있는지 잘 아느냐? 숨 쉬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숨을 쉬는 거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교만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과 육의 상태를 너무나도 잘 아신다.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각종 병자들을 고치심을 보고 이제 우리도 그 각종 병자들의 영적 정신적 도덕성의 상태를 발견하여 우리가 앓고 있는 그 면을 계속 고쳐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를 않고 일반적으로 무난하면 자기가 병든 줄을 모를 것이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볼 때도 이런 정신은 고쳐야 할 테데’ 하는 게 있느냐? 있다. 그거 고쳐달라고 하라. 이건 이룰구원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들어가는 거다. 말 한 마디 했다고 해서 당장 고쳐준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가치 없이 느낄 것 같다. 자기 마음속에서 그만큼 애탐성 소원성이 돼야 주님의 고쳐주심이 고맙고 감사한 줄을 안다. 이 구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 안 고쳐진다.
여자는 고쳐졌다. 굽어진 허리가 펴지고, 하늘을 보게 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됐다. 그러면 무엇이 영광이냐? 사람이 고쳐져야 영광이다. 영적인 면에서 고쳐져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육신의 병을 고쳤다고 해서 하나님을 바로 설길 수 있느냐? 못 섬긴다. 생각부터가 계속 육신에 속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몸만 나으면 육신이 병들어서 하지 못한 것을 계속 하려고 한다. 그래서 못 섬긴다. 병이 들어서 병원에 있을 때는 성경을 좀 보지만 병원 밖으로 나오면 성경이 안 봐진다. 그게 증거다. 그러니까 성경을 많이 보라고 하나님께서 또 병원에 앉혀놔야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고쳐져야 영광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안 고쳐지면 영광이라고 하지를 않는다. 아무리 예배당을 짓고 세상이 놀라도록 무슨 종교적 업적을 크게 이뤄놔도 그건 영광이라고 하지를 않는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영광이라고 한다. 세상에 속한 교회들도 그런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믿고 삽시다’ 하면 ‘땅을 보고 살아야 먹을 것이 나오지’ 하며 살아온 것이 18년이다. 어찌 보면 이건 적은 세월이다. 18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예수님 믿음시다’ 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내 주먹을 믿고 산다’ 라고 한다. 그 주먹은 안 썩느냐?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할 때 ‘예수님 믿읍시다’ 하면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아야지’ 하는 게 땅만 보고 살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 예수 믿으면서도 땅만 보고 산다. 사람이 고쳐져야 할 텐데 땅의 것이 이뤄져야 영광이라고 한다.
무엇이 영광이냐? 땅만 보던 눈이 허리를 펴서 하늘을 보게 되니 영광이다. 세상만 보던 눈이 하나님을 보게 되었으니 영광이다. 자기를 지으신 분을 보게 되었으니 영광이다. 하다못해 일반적으로 봐도 자식이 허리를 굽혀서 땅만 보고 다니면 부모는 안 보인다. 부모가 보이려면 인간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인간교육을 못 받으면 그 자식은 땅만 본다. 땅만 본다는 것은 돈, 물질로만 따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섬겨지겠느냐? 못 섬긴다. 부모 역시 소원 목적이 땅만 보고 살았으면 자식을 못 알아본다. 그런 병이 다 고쳐지려면 주님 앞에 나오는 것밖에 없다.
땅만 보던 성격 성질이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성격과 성질로 바꿔졌으니 이게 영광이다. 땅에 소원 목적을 두게 되면 사람이 꼬부라진다. 성격도 꼬부라지고 성질도 꼬부라진다. 원리가 그렇다. 사단 마귀의 거짓된 종들과 이단자들은 사람을 모두 꼬부라지게 만든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밖에 없다.
14절-17절: 회당장이 왜 분을 내느냐? 안식일 날 예수님께서 병을 고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와서 고침을 받으라는 것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냐? 예수님이다. 그런데 누구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신데 그 주인을 내버려두고 회당장이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 주인이신 예수님 당신이 우리를 위한 구원설정에 따라 오시든지 가시든지 하시는 거다.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이 어릴 때 어머니 마리아가 성전에 데리고 간 일이 있는데, 그 후로 보면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면서 안식일에 대제사장들이 하던 양 잡고 소 잡고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안식일인데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성전 안에서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양 잡고 소 잡고 예배의식을 하는데 예수님은 거기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율법대로 한다고 하는데 주인이 없다. 주인이 없는 집에서 뭘 하느냐? 목사님들이 심방을 가도 주인은 없고 그 자리에 손님들만 앉아있다면 뭐하는 거냐? 절대로 그런 짓 하지 말아라.
성전 안에 주님은 안 계신다. 밖에 계신다. 그러니까 그런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기 때문에 그 예배를 안 받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밖으로 다니시면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100% 다 행하고 계신다.
이 말을 듣고 그러니 나도 교회에 안 나오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겠다? 예배당 안에서 말씀을 듣는 것에 소홀하면서 밖으로 돌면서 예배가 잘 되겠느냐? 예수님을 주러 다니시는 거고 우리는 받아야 한다.
회당장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주인을 몰라보면서 안식일을 무엇을 하는 날로 알고 있을까? 양 잡아 하나님께 제사하는 날, 문자대로 율법을 준수하는 날, 오락을 금하는 날,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치고 지키는 날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 오늘날 교인들은 주일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 지키는 날, 교회에 가서 식순대로 예배하는 날, 설교의 내용은 세상 일반 도덕성이면서. 또 주일날 교회에 안 나온 교인들 찾아보기, 미뤄진 집안 일 하는 날, 식구끼리 또는 친구끼리 야외에 나가고 놀러가는 날, 별 일이 없으면 낮잠 자고 하는 날 정도로 알고 있지 않느냐? 세상 이방인들은 공일날, 미뤘던 집안일을 하는 날, 낚시 가고 들로 산으로 산보 가는 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천국복음을 강론하시고 각종 병자들을 고치셨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맞춰진 우리의 온전에 목적을 둔 구원의 일이다. 세상 속화된 교인들이나 일반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사역을 전혀 모른다. 일반적인 소원대로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지지를 못한다. 예수 믿으면서 살아생전에 속사람이 고쳐지지 못한다면 언제 고쳐질까?
우리가 성경 깨달음을 받으면 자기의 병적 상태, 자기의 약점 생태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면에 고침을 받아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받지 못하면 성령으로 고침을 받지 못한다. 고침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들겠느냐? 자기의 성격과 성질을 못 고치면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못 든다. 자기 주관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드느냐? 못 든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을 때 ‘네 신발을 벗어라’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자 하는 그 성격 성질 고쳐라. 안 된다. 그것 가지고 안 되는 거다. 자기 고집, 자기 주관, 자기 계획을 가지고 예수 잘 믿어진 사람이 있느냐? 그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많이 알아주느냐? 못 믿는다. 원리가 믿음이 들어가지지를 않는 거다. 자기 속이 병목에 물이 꽉 찬 것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은 안 들어간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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