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엡2:10 |
---|---|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것에 대해, 성경에 대해, 천국에 대해,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느니만큼 남에게 뒤떨어지고, 남에게 이용당하고, 속에 고집이 들어있고, 속임수와 악성이 들어있다. 이건 타락성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이 자기를 모른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비판을 잘하고 흉도 잘 보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비판할 때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잘난 맛으로 세상을 사는 거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생각을 하고, 이해타산과 가치판단과 평가를 하는 존재이면서 왜 자기가 실력이 없고, 못나고, 못 살고, 고통 가운데 살고, 힘없고, 나약하고, 이기지 못하는 자신임을 알지 못할까? 왜 솔직하게 자기의 부족을 인정을 못 할까? 그러면서도 남을 지배하려고 하고, 남 위에 올라서려고 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 거냐? 먹고 마시고 잘 입고 돈 잘 쓰는 데 있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서 살면서 왜 싫다고 싸우고 헤어지느냐? 돈 있고, 집 있고, 차 있고, 마음대로 놀러 다니면서 왜 마찰과 대립이 생기는 거냐? 인간이면서 이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죽게 되고, 죽으면서도 죽는 이유를 모른다. 미련한 사람은 공이에 넣고 찧어도 자기의 미련을 모른다.
인간은 순위적 위치적으로 귀중성과 중요성이 하나님 다음의 존재요, 인간의 다음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존재가 왜 하나님은 내버리고 돈 밑에, 만물 밑에, 재산 밑에, 집 밑에 들어가서 사느냐? 인간이 자기 머리 위에 돈과 물질을 두고 살면 사회에서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왜 생기느냐? 무엇보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 사람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가룟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먹었다. 그러니까 가룟유다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돈을 더 좋아한 거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의 이 정신을 고쳐주시려고 여러 번 말씀했는데도 가룟유다는 고치지 못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자는 세상을, 물질을 더 좋아하는 자요, 마귀니라. 돈을 좋아하는 자는 사람을 버리게 되어있고, 팔아먹게 되어있고, 죽이게 되어있다. 이건 마귀 짓이다. 마귀 짓을 하니 마귀다. 그런데 자기는 마귀 짓을 하는 건지, 사단 짓을 하는 건지, 도둑놈 짓을 하는 건지, 사기꾼 짓을 하는 건지 모른다.
오늘날 맨날 ‘축복 축복’ 하며 더러운 귀신을 받고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교인이 많다. 하나님의 신은 거룩한 신인데 자기의 성격 성질도 못 고치고, 속에 더러운 것이 잔뜩 들어있는데 이런 자기 속에 들어간 게 하나님의 신이겠느냐? 이치는 빤한 건데 이것조차 모르니 귀신 들린 사람이로구나. 귀신이 들렸으니 말의 앞뒤가 안 맞고, 말에 정립이 없고, 정신에 정립이 없구나.
인간은 하나님 다음의 존재이니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도덕성이나 지혜지식적인 면이 하나님 다음이 되어야 하는데 성경을 종교적인 역사만 알고 있다면 이게 신앙이냐? 성경의 역사는 안 믿는 사람도 많이 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했다. 모든 시험과 유혹과 미혹과 죽음을 이겨야 온전자가 되는 거지 이런 것을 이기지 못하는 존재는 온전자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을 다 이기고 흠과 티가 없이 하나님의 온전으로 된 분이니 우리가 이분의 속성과 성품을 입으면 우리도 입은 그만큼 온전자가 된다.
세상에는 절대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고 해도 절대 정확하고 정직하고 아름답고 완전한 자는 없다.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다 변질이 된다. 자기가 이런 것을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자기도 허물투성이이고 잘못투성이인 것을 알 수 있는 건데 왜 자기의 잘못을 못 고치느냐? 못 고친 상태에서 절대 정확한 것을 알지 못하면 서로 원망이요 서로 남 탓일 수밖에 없는 거다. ‘너 때문이다’라고 하며 책임을 전가한 게 에덴동산에서부터 생겼다.
인간은 생명과를 먹어야지 선악과, 즉 자기의 주관성을 먹으면 정령 죽는다. 네 주관성에서 나오는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은 선악과이니 이것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치 말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자기 주관으로 세상의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취한다. 이러면 자기의 영은 자라지 못한다.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이방 우상종교를 믿건 안 믿건, 아무 신을 믿건 안 믿건 세상 것에 욕심을 내고, 여기에 등 기대고, 부러워하고, 경외심을 갖고, 여기에 마음을 두는 것은 이것에게 굴복하고 절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도 이런 정신으로 살면 이 사람의 영은 성장이 안 된다. 성경은 이것을 영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성경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라고 하는데, 예수 믿고 성경을 깨닫고 보니 자기가 죽었던 자라는 것을 아는 거지 지금까지 예수를 믿지 않거나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정신으로 사는 자는 자기의 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모른다. 영이 살았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자기의 미래를 결정 지을 하나님의 생명의 이치를 좋아할 텐데 썩고 불탈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정신이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 이런 사람은 늘 변하는 세상을 잡고 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사람을 믿다가는 큰 손해를 본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는데, 무슨 지식이 없는 거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사업이 망한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망한다는 거다. 우리는 영의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업이 흥하고 부자로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망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격과 성품이 망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사람이 망하는 것을 모른다면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거냐? 영의 눈이 밝은 거냐? ‘세상 축복 축복’ 하는 사람은 영의 눈이 감긴 채 육신의 눈으로 사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야 성공한 거다. 이런 사람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거다. 세상에 악인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불태워버린다.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을 돌아다녀 봐라.’ 세상이 얼마나 타락이 되었으면 이런 말을 할까? 세상과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타락된 거다. 이러면 짐승처럼 살다가 죽게 된다. 미래가 없다.
인간은 영육 결합체인데, 영이 있다는 것은 이 영이 영의 나라인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전제가 된다. 육신은 이 세상에서 끝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과 육신 사이의 기관이 하나 있으니 이성이다. 자유성을 가진 이 이성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세상을 이기게 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이 풀무 불을 칠 배나 뜨겁게 해서 이 불 속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시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비유와 비사로서 다 지나가는 거다. 성경에 있는 모든 역사나 존재도 시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 중에 살아있는 신앙 믿음을 가진 분을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 후손들이 자기의 신앙을 찬양할까? 자기 후손들이 ‘우리 조상 중에 믿음이 좋은 조상이 있었다’라고 말을 하겠느냐? 아브라함의 경우에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후손이 받을 징벌이 멈춘 일이 있는데 오늘날 부모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믿음이 있느냐?
우리가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를 인간으로 지은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게 하라. 자기를 인간으로 지은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부른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것을 안 가르쳐줘서, 자기가 성경을 연구하지 않아서 교인들 대부분이 이것을 모르고 있다.
어느 나라나 어느 학교에서나, 또는 우상을 섬기거나 도를 닦는 사람이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가르쳐 주느냐? 성경만이 이것을 가르쳐 준다.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른 채 자기 주관성으로 예수를 믿게 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찾아오는 예수를, 그 영감성을, 그 성령의 역사를 죽이게 된다. 그러면서 바로 믿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 법이 없이 죽는 사람이 있고, 법의 심판을 받고 죽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서는 다른 동물의 식량으로 주기 위해 닭이나 쥐를 키우기도 한다. 성경에 보니 독수리의 밥으로 주기 위해 키움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게 비유이지만 자기는 누구의 먹이로 길림을 받느냐? 자기가 아가페 사랑에 먹히면 자기는 사랑의 존재가 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