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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참패
사무엘 하 9:1~13
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이 있기를 빕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옛정을 생각하여 새로 왕이 된 나하스의 아들 하몬을 위로하며 선대하고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사실 나하스는 이스라엘에게 우호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 시절에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치러왔을 때, 야베스 사람들이 굴욕을 감수하며 화친을 요구하자 나하스는 “내가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조리 빼겠다.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는 조건에서만 너희와 조약을 맺겠다”(삼상 11:2 새번역)며 이스라엘을 조롱한 당사자입니다. 이에 분노한 사울은 겨릿소 두 마리를 12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어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사울은 나하스와의 전쟁에서 크게 이겨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등극하였습니다.
하지만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처럼 훗날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다윗은 나하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다윗은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삼하 10:2)며 정중히 외교 사절을 보내어 조문을 하고, 새로 암몬의 왕이 된 나하스의 아들 하눈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자 하였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갚아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시절 자신을 도와준 나하스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키워주고 대성하도록 기회를 준 은인의 등에 칼을 꽂는 비열하고 배은망덕한 못된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원수를 은혜로 갚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연인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조문외교에 담고자 하였던 다윗의 진정성은 암몬 대신들의 오판(삼하 10:3~4)으로 결국 전쟁으로 비화 되었습니다. 진정성을 읽는 능력이 없는 대신으로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요즘 대통령의 영국 여왕 조문과 굴욕스러운 대일 회담으로 국민감정이 매우 불편합니다. 미국 대통령과 서서 48초 대화한 것을 엄청난 외교 성과로 나팔 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습니다. 게다가 쌍소리를 해놓고도 부인하는 꼴이 가관도 아닙니다. 지도자 보기가 참 딱합니다. 지혜로운 참모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나물에 그 밥 같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외교도 그렇습니다. 저마다 국익 우선이라는 목적이 있어 이해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그런 중에도 신뢰는 쌓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정성입니다. 성과에 급급하면 누구든 실패합니다.
하나님, 우리 지도자에게 지도자다운 품격과 철학이 깃들기를 빕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배워서라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찬송 :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2022. 10. 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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